강소천
1. 개요
강소천은 본명이 강용률이며 아호가 소천인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이다. 함경남도 고원 출생으로, 동요, 동시, 동화, 아동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1930년대에 문단에 등단하여 《아이생활》, 《신소년》 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며,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다. 월남 후 부산에서 아동문학 보급에 힘썼으며, 《새벗》, 《어린이 다이제스트》 주간, 한국아동문학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63년 문예상을 수상했으나 간경화로 사망했으며, 사후 '소천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꿈을 찍는 사진관〉, 《호박꽃 초롱》, 《꽃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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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姜小泉 |
|---|---|
| 본명 | 강용률 姜龍律 |
| 필명 | 호(號)는 소천(小泉) 아명(兒名)은 강용진(姜龍津) |
| 출생일 | 1915년 9월 16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고원군 |
| 사망일 | 1963년 5월 6일 |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학력 | 함경남도 고원보통학교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 |
| 직업 | 아동문학가 시인 소설가 대학 교수 |
| 장르 | 아동문학, 시문학, 소설 |
| 경력 | 한국아동문학연구회 회장 연세대학교 강사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서라벌예술초급대학 전임교수 |
| 배우자 | 최수정 |
| 종교 | 유교(성리학) → 개신교(예장통합)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3051100209206016&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63-05-11&officeId=00020&pageNo=6&printNo=12779&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
| 자녀 | 강남향(장녀) 강미향(차녀) 강현구(막내아들) |
| 활동 기간 | 1930년 ~ 1963년 |
| 주요 작품 | 《꿈을 찍는 사진관》 《바둑이와 편지》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시집 속의 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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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고등학교 동문 -
김동명 (시인)
김동명은 1900년 강원도 강릉 출생의 시인으로, 1923년 등단하여 일제강점기 저항 시를 쓰고 광복 후 이화여대 교수와 참의원을 역임했으며, 1968년 사망했다. -
영생고등학교 동문 -
박휘순
박휘순은 2005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여 《개그콘서트》 등 코미디 프로그램과 영화, 드라마, 예능에서 활약하며 특유의 코믹한 캐릭터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기를 얻은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 영화 배우, 뮤지컬 배우이다. -
서라벌예술대학교 교수 -
고희동
고희동은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서양화와 동양화, 독립운동, 교육, 정치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으며, 대표 작품으로 〈정자관을 쓴 자화상〉 등이 있고 종로구 원서동에 고희동 가옥이 있다. -
서라벌예술대학교 교수 -
변관식
변관식은 황해남도 옹진군 출신으로 김은호, 노수현, 이상범 등과 교류하며 전통 남종화 계통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한국화가이며, 특히 금강산을 주제로 한 웅혼하고 강인한 산수화로 유명하다. -
함경남도 출신 -
김정일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최고지도자로,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통치하며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남북 정상회담 등의 사건과 경제난, 인권 탄압 등의 문제를 겪은 인물이다. -
함경남도 출신 -
김창룡
김창룡은 일제강점기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조직 색출에 참여한 군인으로, 해방 후 대한민국 육군에서 정보 및 방첩 업무를 담당하며 숙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특무부대장으로서 인권 침해 및 사건 조작 의혹, 김구 암살 사건 연루 의혹 등 각종 논란 속에 암살당해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2. 생애
본명은 강용률(姜龍律)이고, 아명(兒名)은 강용진(姜龍津)이다. 아호는 소천(小泉)이며 함경남도 고원 출생이다.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교편 생활을 하다가 월남하였다. 1930년 동요와 동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하였고, 1939년을 전후하여 동화와 아동소설도 쓰기 시작했다. 월남 후 부산에서 아동문학 보급에 힘썼으며, 여러 대학과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63년 간경화로 사망하였고, 1965년 '소천문학상'이 제정되었다.
2.1. 학창 시절 및 교직 생활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청진여자고급중학·청진제일고급중학 등에서 교편 생활을 하다가 월남하였다.
2.2. 문단 등단 및 작품 활동
1930년 《아이생활》, 《신소년》 등에 동요 〈버드나무 열매〉 등을 발표하고,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동요 〈민들레와 울아기〉가 당선되었으며, 그 뒤 〈닭〉을 비롯한 동요·동시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1939년을 전후하여 동화와 아동소설도 쓰기 시작하여 《동아일보》에 〈돌멩이〉(1940), 〈토끼 삼형제〉, 《매일신보》에 〈전등불 이야기〉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2.3. 월남 이후 활동
월남 후 피난지 부산에서 독서 지도와 글짓기 지도를 하는 등 아동문학 보급에 힘썼다. 1952년 《새벗》, 《어린이 다이제스트》 주간을, 1962년 《아동문학》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한국보육대학,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강사, 1960년 한국아동문학연구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4. 사망 및 사후
小泉중국어은 1963년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1965년 '소천문학상'이 제정되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아름답고 무한한 동심의 세계와 착하고 고운 소년 소녀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대표작으로 〈꿈을 찍는 사진관〉, 《호박꽃 초롱》, 《꽃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