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호
1. 개요
강재호는 일제강점기에 만주국 군인으로 복무한 인물이다. 1905년 대구에서 태어나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를 졸업하고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간도특설대 창설에 참여하여 항일 무장 세력 토벌에 가담했으며,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광복 후 대한민국 군인으로 복무했으나, 만주국군 및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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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공업대학 동문 -
박창암
박창암은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대한민국 군인, 언론인, 사학자로 활동하며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으나 반혁명 사건으로 투옥된 후, 월간 <자유>를 창간하여 재야 사학계와 교류하며 한국 고대사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
하얼빈 공업대학 동문 -
류궈중
류궈중은 흑룡강성 출신으로 여러 성의 주요 직책을 거쳐 국무원 부총리가 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며, 농업, 보건, 빈곤 퇴치 등의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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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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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한 사람 -
현진건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의 사실주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을 받기도 했다. -
병사한 사람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2. 생애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 제4기생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 선배이다. 1932년 만주국 육군 하사로 임관하였고, 1934년 만주국 육군 중사로 진급하였다. 1936년 11월 28일 만주국군 소위로 재임관하여 국경감시대에 배속되면서 만주국군 장교로 복무했다. 1939년 3월 간도특설대 창설 요원으로 참여하여 치안숙정 등의 명목하에 일어난 간도특설대의 수많은 인명 살상에 가담했으며, 1940년 3월 16일 만주국군 보병 중위로 임관되었다. 1943년 9월 15일 항일 무장 세력 토벌에 협력한 공로로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5위 경운장(景雲章)을 받았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군인으로 복무했으나, 허약한 체질로 인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병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만주국군 및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군 부문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2. 만주국군 복무
1936년 11월 28일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하여 훈춘 국경 감시대 지휘관으로 배속되었다. 1938년 9월, 간도특설대 창설에 참여했다. 1939년 10월, 중위로 진급하여 목단강성 관구 사령부에서 근무하며, 육군군관학교 제2기 입학 시험 감독관으로 활동했다. 이 무렵, 박정희의 군관학교 입학을 후원했다. (박정희는 나이 초과 및 기혼자라는 제한이 있었으나, 백선엽과 관동군의 아리카와 대좌 등의 후원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1940년 8월 10일, 혼고 마사야스(本郷公康)로 창씨개명했다. 1942년부터 1943년 2월까지 광명 중학교 배속 장교로 근무했다. 이후 상위(대위)로 진급하여 간도특설대 제2연대 연대장으로 활동했다. 간도특설대 복무 중 항일 무장 세력 토벌에 협력한 공로로 1943년 9월 15일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5위 경운장을, 이후 훈6위 경운장을 받았다.
2.3. 해방 이후
광복 이후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군인으로 복무했다. 그러나 방원철에 따르면, 질병 때문에 군에 입대하지 못했고, 1960~1970년대에 사망했다고 한다. 허약한 체질로 인해 군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3. 친일 행적 논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군 부문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만주국군 및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이 그 이유이다. 특히 1939년 3월 간도특설대 창설 요원으로 참여하여 치안숙정(治安肅正) 등의 명목으로 자행된 수많은 인명 살상에 가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1943년 9월 15일에는 항일 무장 세력 토벌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5위 경운장(景雲章)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