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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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화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년)에 처음 건립된 국립교육기관으로,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을 교육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여러 차례 이전을 거쳐 영조 7년(1731년) 현재 위치에 자리 잡았으며,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제사와 교육을 담당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현재는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경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내·외삼문 등이 있으며, 건물들은 근래에 중수 또는 신축되었다.

강화향교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명칭강화향교
한자 표기江華鄕校
위치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9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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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향교
상세 정보
지정 종류유형문화재
지정 번호34
지정일1995년 11월 14일
시대조선시대
소유인천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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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강화향교는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세웠던 국립교육기관이다. 여러 차례 이전과 복원을 거쳤으며, 현재 남아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이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근래에 중수 또는 신축된 것이다.

2.1. 건립 및 이전

고려 인종 5년(1127년)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국립교육기관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고종 19년(1232년) 강화읍 갑곶리(먹절)로 이전하였다가, 고종 46년(1259) 서도면 볼음도로 이전하였다. 조선 인조 2년(1642년)에는 유수 심일이 송악산 기슭으로 이전하였으며, 인조 7년(1629)에 유수 이인놀이 위패를 모시고 명륜당을 세워 학궁이라 칭했다. 현종 14년(1673) 유수 민시중이 남산골로 이전하였으나 영조 7년(1731) 유수 유척기가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2.2. 기능 변화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제사와 교육 기능을 담당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교육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다. 현대에는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3. 건축

고려 인종 5년(1127년)에 처음 지어진 강화향교는 여러 차례 위치를 옮기고 다시 지어졌다. 조선 고종 19년(1232년) 강화읍 갑곶리(먹절)로 옮겼다가, 고종 46년(1259) 서도면 볼음도로 옮겨졌다. 인조 2년(1642년)에는 유수 심일이 송악산 기슭으로 옮겼으며, 인조 7년(1629) 유수 이인놀이 위패를 모시고 명륜당을 세우면서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갖추어 학궁이라 불렸다. 현종 14년(1673) 유수 민시중이 남산골로 옮겼으나, 영조 7년(1731) 유수 유척기가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3.1. 건물 구성

강화향교는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세웠던 국립교육기관으로, 고려 인종 5년(1127년)에 처음 세워졌다. 그 후 여러 차례 위치를 옮기고 복원하였으며, 현재 위치는 영조 7년(1731년) 유수 유척기가 옮긴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다음과 같다.

* 제사 공간: 대성전, 동무, 서무
* 교육 공간: 명륜당
* 기타: 내삼문, 외삼문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제사와 교육 기능을 담당했으나, 현재는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경내에는 중국의 5성과 한국 18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학(강화)하던 명륜당 및 내·외삼문 등이 있고, 동·서무는 터만 남아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근래에 중수 또는 신축된 것이다.

3.2. 건축 양식

고려 인종 5년(1127년)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국립교육기관으로 세워졌다. 그 뒤 여러 차례 옮기고 복원하였는데, 지금 있는 위치는 조선 영조 7년(1731년) 유수 유척기가 옮긴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담당했으나, 현재는 교육기능은 사라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 있다.

경내에는 중국의 5성과 한국 18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강학(講學)하던 명륜당 및 내·외삼문 등이 있고, 동·서무는 터만 남아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근래에 중수 또는 신축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