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부
1. 개요
거칠부는 신라의 관리로, 젊은 시절 승려가 되어 고구려에서 혜량의 강론을 들었다. 신라로 돌아와 벼슬길에 올라 대아찬이 되었고, 진흥왕의 명으로 《국사》 편찬에 참여하여 파진찬으로 승진했다.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침공하여 영토를 확장했으며, 고구려 승려 혜량을 신라로 데려와 신라 최초의 승통이 되도록 했다. 상대등으로 승진했으며, 78세에 사망했다.
| 원래 이름 | 거칠부(居柒夫) |
|---|---|
| 작위 | 신라의 상대등 |
| 재임 기간 | 576년 ~ 579년 |
| 군주 | 신라 진지왕 |
| 군주 칭호 | 국왕 |
| 국적 | 신라 |
| 저작 | 《국사》 |
| 별호 | 황종(荒宗)불교 승려 법명도 황종(荒宗), 구지포례(久遲布禮)일본서기(日本書紀) 권17 남대적천황(男大迹天皇) 계체천황(繼體天皇). 신라왕과 백제왕을 소집하였으나 사신을 보냄. 신라가 4개 촌을 공략 (529년 4월), 구례이사지우내사마리(久禮爾師知于奈師磨里), 거칠부지(居七夫智)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 (561년), 거비부지(居朼夫智)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마운령신라진흥왕순수비(磨雲嶺新羅眞興王巡守碑) (561년) |
| 출생일 | 미상 |
| 출생지 | 미상 |
| 사망일 | 579년 (78세) |
| 사망지 | 미상 |
| 종교 | 불교 |
| 배우자 | 말보(末宝) |
|---|---|
| 아버지 | 물력(勿力) |
| 자녀 | 장녀 : 윤옥(允玉) 차녀 : 윤궁(允宮) 장남 : 윤황(允荒) |
| 친인척 | 잉숙(할아버지) 구리지(손자) 문노(사위) |
| 복무 | 신라군 |
|---|---|
| 참전 | 고구려-신라 전쟁 |
-
파진찬 -
죽지
신라의 장군이자 관료인 죽지는 김유신 휘하에서 백제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진덕여왕 때 집사부의 중시를 지냈으며, 문무왕 때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여 각간의 관등을 받았고 효소왕 때 낭도 득오가 그를 기리는 노래를 지었다. -
일길찬 -
충상
충상은 7세기 백제 장수로,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과 함께 싸우다 신라에 투항하여 신라 귀족이 되었고, 백제부흥군 정벌에도 참여했다. -
일길찬 -
상영 (백제)
상영은 백제의 장군으로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과 함께 신라군에 맞서 싸우다 패배 후 충상 등과 신라에 투항하여 일길찬 벼슬을 받고 신라 귀족이 되었다. -
579년 사망 -
진지왕
진지왕은 신라의 25대 왕으로, 진흥왕의 아들이며, 재위 기간 동안 백제와의 충돌, 진나라와의 외교 관계가 있었으나, 정사 문란으로 폐위되었고 야사가 전해진다. -
579년 사망 -
교황 베네딕토 1세
교황 베네딕토 1세는 575년부터 579년까지 재임했으며, 랑고바르드족의 침략으로 어려움을 겪고 동로마 제국에 구원병을 요청했으며 기근 속에서 선종했다.
2. 생애
거칠부는 신라 진흥왕과 진지왕 대에 활약한 고위 관료이자 장군이다. 젊어서 승려가 되어 고구려에서 혜량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신라로 돌아와 벼슬을 시작하여 대아찬이 되었다. 진흥왕 6년(545년)에는 왕명을 받들어 《국사》를 편찬하는 데 참여하여 파진찬으로 승진했다.
진흥왕 12년(551년)에는 백제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 죽령 이북과 고현(高峴) 이내의 10개 군을 점령하는 군사적 공을 세웠다. 이때 고구려 승려 혜량을 신라로 데려와 승통으로 삼아 신라 불교 발전에 기여했다.
진지왕 원년(576년)에는 상대등에 올랐으며, 7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2.2. 국사 편찬과 관직 진출
거칠부는 젊은 시절 승려가 되어 사방을 돌아다니다 고구려에 가 혜량의 강론을 들었다. 이후 신라로 돌아와 벼슬길에 올라 대아찬이 되었다. 545년 7월(진흥왕 6년) 왕명을 받아 선비들과 함께 《국사》를 편찬하고 공을 인정받아 파진찬으로 승진했다. 551년(진흥왕 12년) 백제와 연합하여 8명의 장군과 함께 고구려를 침공해 죽령 이북,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빼앗았고, 고구려 승려 혜량과 함께 신라로 돌아와 혜량이 최초의 승통이 되게 했다. 576년(진지왕 원년) 상대등으로 승진했고 78세로 죽었다.
2.3. 군사 활동과 영토 확장
551년(진흥왕 12년), 거칠부는 백제와 연합하여 8명의 장군과 함께 고구려를 침공, 죽령 이북과 고현(高峴) 이내의 10개 군을 빼앗았다. 이 때 고구려 승려 혜량을 신라로 데려와 최초의 승통으로 삼았다.
2.4. 혜량 귀화와 불교 발전
거칠부는 젊은 시절 승려가 되어 사방을 돌아다니다 고구려에 가 혜량의 강론을 들었다. 이후 신라로 돌아와 벼슬길에 올라 대아찬이 되었다. 551년(진흥왕 12년) 백제와 연합하여 8명의 장군과 함께 고구려를 침공해 죽령 이북,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빼앗았고, 고구려 승려 혜량과 함께 신라로 돌아와 혜량을 최초의 승통이 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