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석
1. 개요
건석은 후한 영제 때 권력을 휘두른 환관 집단인 십상시 중 한 명이다. 영제의 총애를 받았으며, 서원팔교위의 상군교위로 근위군을 통솔했다. 영제가 소제 유변의 경솔함을 우려하여 헌제 유협을 옹립하려 하자 이를 돕는 유언을 받았다. 영제 사후 유협을 옹립하려 하진을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원소의 군사를 피해 도주하다 곽승에게 살해당했다. 조조가 낙양 북부위를 할 당시 그의 숙부가 금령을 어겨 조조에게 처벌받기도 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십상시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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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건석 |
|---|---|
| 원어 이름 | 蹇碩 |
| 직위 | 상군교위 |
| 임기 시작 | 188년 |
| 임기 종료 | 189년 5월 경 |
| 군주 | 후한 영제 |
| 사망일 | 189년 5월 경 |
| 직업 | 환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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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환관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
한나라의 환관 -
조등
조등은 후한의 환관으로 안제부터 환제까지 다섯 황제를 섬기며 고위 관직을 역임했고, 순제의 신임을 얻어 환제 옹립에 기여했으며, 청렴하고 아량 있는 성품과 인재 발탁 능력으로 당대인들의 존경을 받았고, 사후 증손자 조비에 의해 고황제로 추존되어 묘소가 보호받고 있다. -
189년 사망 -
후한 영제
후한 영제는 환제 뒤를 이어 13세에 즉위한 후한의 제12대 황제로, 재위 기간 동안 환관들의 발호와 매관매직, 황건적의 난 등으로 후한 멸망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붕어 후에는 황위 계승 싸움으로 후한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
189년 사망 -
허황옥
허황옥은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시조모로 알려진 인물이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아유타국 공주 출신으로 수로왕과 혼인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십상시 중의 한 사람이다. 후한 영제 때 국정을 어지럽히던 간신 집단 십상시의 한 명으로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189년 황제 영제가 승하하게 되자 후계 문제를 몰래 상의해 진류왕 유협을 황제 자리에 앉히기 위해 대장군 하진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으나 사마 반은에 의해 사전에 발각당했고 하진의 부하 사예교위 원소와 전군교위 조조가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난입해 하진의 조카 유변을 황제로 세웠다.
이에 원소의 군사를 피해 도주하던 건석은 결국 동료 십상시던 곽승에게 살해당했다.
영제의 총애를 받았다. 서원팔교위가 설치되었을 때, 환관이면서도 신체가 튼튼하다는 이유로 상군교위에 임명되어 그 수장으로서 근위군을 통솔했다. 황문이었던 견석은, 영제가 유변(소제)의 경솔한 성격을 꺼려 왕미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협(헌제)을 옹립하려 하자, 이를 보좌하라는 유언을 받았다. 영제 사후, 견석은 이에 응하여 유협을 옹립하려 했고, 방해가 되는 하진을 주살하려 했으나, 오히려 하진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또한, 과거 조조가 낙양의 북부위를 하고 있었을 때, 견석의 숙부가 금령을 어기고 야간 외출을 하여 조조에게 체포되어 곤장으로 맞아 죽는 일이 있었다.
2.1. 초기 활동
영제의 총애를 받았다. 서원팔교위가 설치되었을 때, 환관이면서도 신체가 튼튼하다는 이유로 상군교위에 임명되어 그 수장으로서 근위군을 통솔했다. 황문이었던 견석은, 영제가 유변(소제)의 경솔한 성격을 꺼려 왕미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협(헌제)을 옹립하려 하자, 이를 보좌하라는 유언을 받았다. 영제 사후, 견석은 이에 응하여 유협을 옹립하려 했고, 방해가 되는 하진을 주살하려 했으나, 오히려 하진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과거 조조가 낙양의 북부위를 하고 있었을 때, 견석의 숙부가 금령을 어기고 야간 외출을 하여 조조에게 체포되어 곤장으로 맞아 죽는 일이 있었다.
2.2. 권력 투쟁과 최후
건석은 십상시 중 한 사람으로, 후한 영제 때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서원팔교위가 설치되었을 때 환관이면서도 신체가 튼튼하다는 이유로 상군교위에 임명되어 근위군을 통솔했다.
189년 영제가 승하하자 후계 문제를 논의하여 진류왕 유협을 황제로 세우기 위해 대장군 하진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으나, 사마 반은에 의해 사전에 발각되었다. 하진의 부하 사예교위 원소와 전군교위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난입해 하진의 조카 유변을 황제로 세웠다.
영제가 유변의 경솔한 성격을 꺼려 유협을 옹립하려 하자, 건석은 이를 보좌하라는 유언을 받았다. 영제 사후, 건석은 유협을 옹립하려 했고, 방해가 되는 하진을 주살하려 했으나, 오히려 하진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원소의 군사를 피해 도주하던 건석은 결국 동료 십상시였던 곽승에게 살해당했다. 과거 조조가 낙양의 북부위를 하고 있었을 때, 건석의 숙부가 금령을 어기고 야간 외출을 하여 조조에게 체포되어 곤장을 맞고 사망했다.
2.3. 조조와의 악연
영제의 총애를 받았다. 서원팔교위가 설치되었을 때, 환관이면서도 신체가 튼튼하다는 이유로 상군교위에 임명되어 그 수장으로서 근위군을 통솔했다. 황문이었던 견석은, 영제가 유변(소제)의 경솔한 성격을 꺼려 왕미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협(헌제)을 옹립하려 하자, 이를 보좌하라는 유언을 받았다. 영제 사후, 견석은 이에 응하여 유협을 옹립하려 했고, 방해가 되는 하진을 주살하려 했으나, 오히려 하진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과거 조조가 낙양의 북부위를 하고 있었을 때, 견석의 숙부가 금령을 어기고 야간 외출을 하여 조조에게 체포되어 곤장으로 맞아 죽는 일이 있었다.
3. 평가
3.1. 부정적 평가
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소설 『삼국지연의』를 소재로 한 작품에서는 종종 십상시의 필두처럼 그려진다.
5.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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