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청궁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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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건청궁은 경복궁 후원에 있던 고종의 침소이다. 장안당, 곤녕합, 복수당, 관문각, 향원정, 집옥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안당은 고종의 침전이자 사랑채로 사용되었으며, 곤녕합은 명성황후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 관문각은 고종의 서재이자 외국인을 접견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나 부실 공사로 헐렸다. 향원정은 경복궁 후원에 있는 누각으로,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인 취향교와 함께 아름다움을 더한다. 집옥재는 고종이 개인 서재 겸 전용 도서실로 사용하던 건물로, 중국식 양식으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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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 (경복궁)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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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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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
상태 | 사용 중 |
완공 | 1873년 |
개장 | 2007년 (복원) |
파괴 | 1909년 |
용도 | 어진 보관 및 거처지 |
소유주 | 대한민국 정부 |
2. 장안당
'''장안당'''(長安堂)은 고종의 침전이자 사랑채로, '오랫동안 평안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27칸, 측면 3칸, 7량 건물이다. 장안당에 딸린 북행각은 1887년 미국의 에디슨 전기 회사가 발전기를 설치해 한국 최초로 전깃불을 밝힌 곳으로 유명하다.[6][7] 을미사변 당시 고종은 이곳에 감금되었다고 전해진다.[8]
'''복수당'''(福綏堂)은 별채에 해당되는 건물이다. 궁인들의 거소로 추정된다.
관문각(觀文閣)은 고종의 서재로, 원래 전통적인 목조건물 관문당이었다. 1891년에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의 설계로 개축되었다. 경복궁 안의 유일한 서양식 건물로, 2층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문각은 양관이라 불리며 주로 외국인을 접견하기 위한 장소로 쓰였다.[3][12] 다만 공사 과정에서 관리들의 비리와 부실 공사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13] 결국 부실공사로 1901년 헐리게 되면서[14] 그 존재 자체에 대해 알려지지 않아 경복궁 복원 계획에서 제외되었고, 이후 건청궁 복원 사업이 진행될 때도 복원되지 못하고 현재 터만 복원되었다.[15] 1992년 1월 관문각의 존재가 사진첩 등을 통해 확인되었다.[16]
'''집옥재'''(集玉齋)는 고종이 개인 서재 겸 전용 도서실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신무문 동쪽에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이다. 처마 서까래 위에 덧서까래를 달아 꾸민 겹처마에 건물 측면 좌우 끝에 박공을 달아 벽면 상부가 삼각형으로 된 맞배집으로, 도리가 7개로 된 지붕틀을 쓴 칠량 구조이다. 경복궁의 다른 전각들과 달리 중국식 양식으로 지어졌다.[1]
[1]
뉴스
〈명성황후 시해당한 건청궁 복원돼〉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2007-10-18
3. 곤녕합
'''곤녕합'''(坤寧閤)은 명성황후의 침전으로 민가의 안채에 해당된다. 곤녕합 내부에는 문화재청이 의뢰해 무형문화재 장인들이 궁중 유물 기준에 따라 복원한 자개 침대 등 궁중 생활 용품 3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9] 장안당과는 복도각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곤녕(坤寧)은 '땅이 편안하다'는 뜻으로 왕비의 덕성을 표현하는 것이며,[10] 자금성의 곤녕궁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11] 곤녕합의 남쪽 누각인 옥호루(玉壺樓)는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옥호루의 명칭은 옥호루(玉壺樓)가 아닌 옥곤루(玉壼樓)라는 주장도 있다.병 호 대궐 안 길 곤
4. 복수당
5. 관문각
6. 향원정
'''향원정'''(香遠亭)은 경복궁 후원에 있는 누각이다. 2층 규모의 익공식(翼工式) 기와지붕으로, 정육각형 평면에 장대석(長臺石)으로 단을 쌓고 짧은 육모 돌기둥을 세웠다. 1층과 2층은 하나의 나무 기둥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기둥 사이에는 4분합(四分閤) 문이 있다. 특히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향원정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1867년에서 1873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은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면서 연못 한가운데 인공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뜻의 향원정(香遠亭)이라 이름 붙였다. 향원지를 건너는 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교(醉香橋)이다.
취향교는 조선시대 연못에 놓인 목교 중 가장 긴 다리이다. 현재는 남쪽에서 나무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가지만, 원래 취향교는 북쪽에 있어 건청궁 쪽에서 건널 수 있었다. 1953년에 이 다리를 남쪽에 다시 지었다. 향원지의 물은 지하수와 열상진원샘에서 나오며, 이 물은 경회루의 연지로 흘러가도록 설계되었다.
7. 집옥재
참조
[2]
뉴스
건청궁, 비극의 역사도 복원되야 한다.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2007-10-19
[3]
뉴스
건청궁은 조선 근대화의 산실
http://news.naver.co[...]
연합뉴스
2007-10-19
[4]
뉴스
복원 건청궁에 입궐한 감나무 '고종시'
http://news.naver.co[...]
노컷뉴스
2007-10-18
[5]
뉴스
경복궁 건청궁, 100억 들인 부실 복원
http://news.kbs.co.k[...]
KBS
2011-11-16
[6]
간행물
문화재청 50년사
문화재청
[7]
뉴스
명성황후 시해된 비극의 현장 건청궁 98년만에 복원
http://news.naver.co[...]
국민일보
2007-10-18
[8]
뉴스
119년 전, 건청궁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http://news.naver.co[...]
중앙일보
2014-04-29
[9]
뉴스
건청궁의 슬픈 과거 아시나요?
http://news.naver.co[...]
정책브리핑
2010-08-20
[10]
뉴스
명성황후 비극 현장 건청궁 복원(종합)
http://news.naver.co[...]
연합뉴스
2007-10-18
[11]
뉴스
몰락한 왕조 슬픔 안고 한세기만에 돌아오다
http://news.naver.co[...]
한겨레
2007-10-18
[12]
뉴스
100여년 전 구한 말 건축의 중심, 세레진 사바찐①
http://news.naver.co[...]
조선비즈
2013-12-14
[13]
뉴스
을미사변 목격한 이국(異國) 땅의 건축가 사바찐②
http://news.naver.co[...]
조선비즈
2013-12-21
[14]
뉴스
을미사변 비극 100여년 만에 열려
http://news.naver.co[...]
한국일보
2007-10-18
[15]
뉴스
명성황후 시해 장소 건청궁, 역사공간으로 재탄생
http://news.naver.co[...]
세계일보
2007-10-18
[16]
뉴스
국내최초의 宮苑內 洋館 觀文閣모습 첫공개
http://news.naver.co[...]
연합뉴스
199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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