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스테르진스키
1. 개요
게오르크 스테르진스키는 독일 출신의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추기경이었다. 1936년 폴란드 올슈틴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튀링겐으로 이주했다. 1960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981년 베를린의 주교 대리 법무관이 되었고, 1989년 베를린 교구장에 임명되었으며, 1994년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1991년 추기경에 서임되었으며, 2004년 동성 결혼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2011년 76세의 나이로 선종했으며,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의 후임으로 라이너 마리아 뵐키를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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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칭 | 추기경 |
|---|---|
| 이름 | 게오르크 스테르진스키 |
| 직책 | 추기경 베를린 대교구장 |
| 소속 교단 | 로마 가톨릭교회 |
| 교구 | 베를린 |
| 임기 시작 | 1989년 9월 9일 |
| 임기 종료 | 2011년 2월 24일 |
| 이전 교구장 | 요아힘 마이스너 |
| 후임 교구장 | 라이너 뵐키 |
| 기타 직책 | 산 주세페 알아우렐리오 성당 추기경 사제 |
| 서품일 | 1960년 6월 29일 |
| 서품자 | 후고 아우프데르베크 |
| 주교 서임일 | 1989년 9월 9일 |
| 주교 서임자 | 요아힘 반케 |
| 추기경 서임일 | 1991년 6월 28일 |
| 추기경 서임자 | 요한 바오로 2세 |
| 추기경 계급 | 추기경 사제 |
| 출생일 | 1936년 2월 9일 |
| 출생지 | 동프로이센 올슈틴 보를라프키 (현재 폴란드) |
| 사망일 | 2011년 6월 30일 |
| 사망 장소 | 독일 베를린 |
| 국적 | 독일 |
| 좌우명 | Deus Semper Major (하느님은 언제나 더 위대하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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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기경 명칭 | 게오르크 스테르진스키 |
|---|---|
| 호칭 | 각하 |
| 공식 석상 호칭 | 각하 |
| 종교적 호칭 | 몬시뇰 |
| 교구 | 베를린 (명예) |
| 독일어 이름 | 게오르크 막시밀리안 스테르진스키 |
|---|---|
| 베를린 대교구장 임기 | 1989-2011 |
| 독일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 임기 | 1989–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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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추기경 -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제265대 교황으로 재임하며, 가톨릭 교리를 수호하고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보수적인 신념과 스캔들 대처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
독일의 추기경 -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독일 출신의 철학자, 신학자, 추기경으로서 스콜라 철학 비판, 독창적 형이상학, 동서 교회 통합 노력, 그리고 "지적인 무지"와 "대립의 일치" 개념을 통해 중세에서 근대로의 사상적 전환에 기여하고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
21세기 로마 가톨릭 대주교 -
염수정
염수정은 1943년 안성에서 태어나 5대째 가톨릭 신앙을 이어온 가정에서 성장하여 사제가 되었고,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대행 대주교를 거쳐 2014년 추기경으로 서임되어 생명 존중, 사회 정의, 남북 화해를 위해 활동하다 2021년 서울대교구장직에서 사임한 대한민국의 천주교 추기경이다. -
21세기 로마 가톨릭 대주교 -
존 패트릭 폴리
존 패트릭 폴리는 미국의 가톨릭 사제이자 추기경으로, 로마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에이즈 관련 발언과 여성 사제 서품 반대로 논란이 있었고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
20세기 로마 가톨릭 대주교 -
교황 바오로 6세
교황 바오로 6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무리하고 교회 개혁을 추진한 교황으로, 교황청 개혁과 전례 개혁을 단행하고 교회 일치 운동에 기여했으나, 인공 피임 금지 회칙과 교회 개혁 논란으로 복잡한 시기를 겪었으며 시복 및 시성되었다. -
20세기 로마 가톨릭 대주교 -
교황 베네딕토 15세
자코모 델라 키에사라는 본명을 가진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평화 중재 노력을 펼쳤으나 실패하였고, 전후 인도주의 활동, 외교 관계 수립, 교회법 개정, 선교 활동 강조 등 교회 발전에 기여하였다.
2. 젊은 시절
게오르크 스테르진스키는 1936년 2월 9일 당시 동프로이센 지역(현재 폴란드 영토) 올슈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었고,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가족과 함께 추방되어 튀링겐으로 이주하였다. 그의 고향 바르미아는 오늘날 폴란드의 영토이다. 그는 독일 동프로이센의 힐스베르크 군(현재 리드즈바르크바르민스키)에 있는 워락(현재 올슈틴 군의 보르와프키)에서 태어났다.
3. 사제와 주교
스테르진스키는 1960년에 사제 수품을 받았다. 15년 동안 본당 사목을 한 그는 1981년 베를린의 주교 대리 법무관이 되었다. 1989년 그는 베를린 교구장에 서임되었으며, 1994년 베를린 교구가 대교구로 승격됨에 따라 그의 지위도 주교에서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4. 추기경
스테르진스키는 1991년 6월 2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산 주세페 알아우렐리오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후 열린 2005년 콘클라베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5. 견해
게오르크 스테르진스키는 1991년 6월 2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산 주세페 알아우렐리오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되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후 열린 2005년 콘클라베에 참석하였다.
5.1. 동성 결혼에 대한 반대
2004년 11월, 스테르진스키 추기경은 동성 결혼에 대한 견해를 비판하였다. 그는 미사 중 강론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동성 혼인법에 반대하며 저항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6. 은퇴와 죽음
2011년 2월 24일, 교회법에 따라 교구장 정년인 76세가 되자 스테르진스키는 교구장 은퇴 의사를 밝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의 은퇴 요청을 수락하였다. 2011년 5월, 스테르진스키 추기경은 폐렴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였다. 2011년 8월에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재활치료소에 입원하였다. 베를린 대교구장에서 은퇴한 후, 보좌주교 마티아스 하인리히가 새로운 대교구장이 임명될 때까지 임시로 베를린 대교구를 이끌었다. 2011년 6월 30일, 스테르진스키 추기경은 아침에 선종하였다. 향년 76세였다.
스테르진스키 추기경이 선종한 후에도 후임 대교구장이 지명되지 않아 베를린 대교구장 자리는 한동안 공석이었다. 스테르진스키 추기경 선종 이틀 후인 2011년 7월 2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라이너 마리아 뵐키를 새 베를린 대교구장에 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