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토쿠 (난초)
1. 개요
겐토쿠는 1370년 8월 16일부터 1372년까지 사용된 일본의 연호이다. 쇼헤이 25년 7월 24일에 개원되었으며, 장경 천황의 즉위에 따른 것이었다. 겐토쿠 시대에는 와다 마사타케의 가와치 동조성 공격, 니조 요리요리 집에서의 '남조 삼백번 가합' 개최, 명나라에 사신 파견 등의 사건이 있었다. 겐토쿠 3년에는 분추로 개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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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보쿠초 시대 -
남조 (일본)
남조는 14세기 일본 남북조 시대에 고다이고 천황이 세운 천황가의 분파로,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세운 북조와 대립하다가 1392년 종결되었으며, 메이지 시대에 정통으로 인정받았다. -
난보쿠초 시대 -
태평기
《태평기》는 14세기 무로마치 막부 관련 지식인들이 편찬한 군담소설로, 남북조 시대를 배경으로 겐무 신정, 남북조 분열, 무장들의 활약상을 유교적 대의명분론과 불교적 인과응보론에 기반하여 극적으로 묘사하며 역사적, 문학적, 사상적 영향력을 지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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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에 설치되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하며, 제주와 전주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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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
일본의 연호 -
다이쇼 시대
다이쇼 시대는 1912년부터 1926년까지 일본의 연호로,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국제 연맹 이사국 진출, 국내 사회 변화, 민주주의 사상 발전 등을 특징으로 하며, 1920년대 후반 세계 경제 불황의 영향을 받았다. -
일본의 연호 -
쇼와 시대
쇼와 시대는 1926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일본의 연호로, 히로히토 천황의 치세 동안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 태평양 전쟁, 패전 후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겪었으며, 쇼와 천황의 사망으로 헤이세이 시대로 전환되었다.
2. 개원(改元)
* 쇼헤이 25년 7월 24일(율리우스력 1370년 8월 16일) 고코곤 천황의 양위로 고엔유 천황이 즉위함에 따라 개원하였다.
* 겐토쿠 3년 4월(율리우스력 1372년) 분추로 개원되었다.
3. 출전
『문선(文選)』
4. 겐토쿠 시대의 주요 사건
4.1. 1370년 (겐토쿠 원년)
* 11월 - 와다 마사타케가 가와치 동조성의 쿠스노키 마사요시를 여러 차례 공격하였다.
4.2. 1371년 (겐토쿠 2년)
* 2월 - 니조 요리요리 집에서 『삼백번 가합』이 개최되었다.
* 5월 8일 - 호소카와 요리모토가 남조 공격을 위해 대군을 이끌고 가와치로 출진하였다.
* 8월 13일 - 남조가 시조 타카토시·와다 마사타케를 파견하여 쿠스노키 마사요시를 공격하게 하였다.
* 10월 14일 - 정서부의 사자 소라이 등이 명나라에 도착하여 카이랴 친왕이 일본 국왕에 책봉되었다(명나라 홍무 4년).
* 12월 19일 - 규슈 탐제 이마가와 사다요시가 스오에서 부젠 모지에 도착하여 아카사카에 진을 쳤다.
4.3. 1372년 (겐토쿠 3년)
* 2월 13일 - 키쿠치 무네마사가 히젠 에보시야마에서 이마가와 나카아키를 기습 공격했으나 패했다.
* 3월 - 이세 국사 키타바타케씨가 같은 국 수호 니키 요시나가를 무찌르고 아사아케군 일대를 점령했다.
5. 남북조 시대 개요
1911년 3월 3일 메이지 시대 황실칙령에 따라, 이 시대의 정통 군주는 고다이고 천황의 직계 후손으로, 고무라카미 천황을 통해 계승된 것으로 규정되었다. 그의 南朝일본어는 나라현 근처 요시노에 있는 망명지에 설립되었다.
에도 시대 말까지, 아시카가 막부의 지원을 받은 군사적으로 우세한 척황은, 일본의 삼종신기를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잘못하여 황실 연대기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불법적인 北朝일본어는 아시카가 다카우지에 의해 교토에 설립되었다.
| 연도 | 사건 |
|---|---|
| 1370년 (겐토쿠 원년) | 와다 마사타케가 가와치 동조성의 쿠스노키 마사요시를 여러 차례 공격. |
| 1371년 (겐토쿠 2년) | 니조 요리요리 집에서 『삼백번 가합』 개최. |
| 호소카와 요리모토가 남조 공격을 위해 대군을 이끌고 가와치로 출진. | |
| 남조가 시조 타카토시, 와다 마사타케를 파견하여 쿠스노키 마사요시를 공격. | |
| 정서부의 사자 소라이 등이 명나라에 도착하여 카이랴 친왕이 일본 국왕에 책봉(명나라 홍무 4년). | |
| 1372년 (겐토쿠 3년) | 키쿠치 무네마사가 히젠 에보시야마에서 이마가와 나카아키를 기습 공격하나 패퇴. |
| 이세 국사 키타바타케씨가 같은 국 수호 니키 요시나가를 무찌르고 아사아케군 일대를 점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