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우편국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경성우편국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착공되어 1915년 완공된 건물로, 남대문로와 충무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했다. 영국풍으로 설계되었으며,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에 돔 형태의 지붕을 갖춘 벽돌 건물이었다. 한국의 통신 및 금융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한국 경제와 정치적 착취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해방 후 서울중앙우체국으로 사용되다 한국 전쟁 중 파괴되었고, 이후 철거되어 1957년, 1980년대에 각각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우체국 - 포스타 (기업)
포스타는 페로 제도의 우편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영 기업으로, 1870년 최초의 우체국 설립 후 1976년 덴마크 우체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포스트베르크 푀로야'로 출범, 2009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1975년부터 자체 우표를 발행하는 등 페로 제도의 통신 발전에 기여해왔다. - 우체국 - 중앙우체국 (더블린)
더블린 중앙우체국은 프랜시스 존스턴이 설계하여 1818년에 완공된 건물로, 1916년 부활절 봉기 당시 봉기 지도부의 본부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아일랜드 민족주의의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있다. - 서울 중구의 건축물 -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화폐를 주제로 한 박물관으로, 과거 일본 제일은행 경성지점으로 건립되어 조선은행과 한국은행 본점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절충주의 양식의 건축물로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 서울 중구의 건축물 - 이화여자고등학교
1886년 메리 F. 스크랜튼 여사가 설립하고 고종 황제가 교명을 하사한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인 이화여자고등학교는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로서, 일제강점기 민족 교육의 중심지이자 유관순 열사,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등 저명한 인사를 배출하였다. - 한국의 없어진 건축물 - 조선극장
조선극장은 일제강점기 경성부에 개관하여 연극, 영화 상영 등 조선인들의 문화 향유 및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폐관되었다. - 한국의 없어진 건축물 - 경성신사
경성신사는 일제강점기 서울에 세워진 일본 신사로, 남산대신궁으로 시작하여 경성신사로 개칭되었고 국폐소사로 격상되었으나, 일본 패전 후 폐지되어 현재는 숭의여자대학교가 위치하며, 식민지 지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경성우편국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 | |
위치 국가 | 대한민국, 대일본제국 |
좌표 | 37.5615, 126.9820 |
착공일 | 1913년 10월 23일 |
완공일 | 1915년 9월 15일 |
개업일 | 1915년 10월 1일 |
철거일 | 1957년 |
바닥 면적 | 4400 제곱미터 |
층수 | 4 |
개요 | |
![]() | |
![]() | |
명칭 |
2. 역사적 배경
조선은 최초의 근대 우편 시스템을 개발했다.[1] 1883년 최초의 조선 사절단 미국 방문에 참여했던 홍계훈은 귀국 후 한국의 우편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는 1884년 갑신정변에 휘말렸고,[2] 이로 인해 한국의 우편 시스템 도입이 수년간 지연되었다. 우편 시스템은 결국 갑오개혁 이후에 시행되었다.[1]
1905년 일본이 한국을 간접 통치하에 두자, 한국 우체국 시스템은 일본에 흡수되었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공식적으로 병합했을 때, 일본은 우편 시스템을 재편하고 한국 전역에 우체국 건물과 전신 인프라를 건설했다.[1] 경성우편국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건설되었으며, 그러한 건물 중 가장 크고 눈에 띄는 건물이였다.[1]
2. 1. 조선 시대 우편 제도
조선은 최초의 근대 우편 시스템을 개발했다.[1] 1883년 최초의 조선 사절단 미국 방문에 참여했던 홍계훈은 귀국 후 한국의 우편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는 1884년 갑신정변에 휘말렸고,[2] 이로 인해 한국의 우편 시스템 도입이 수년간 지연되었다. 우편 시스템은 결국 갑오개혁 이후에 시행되었다.[1]1905년 일본이 한국을 간접 통치하에 두자, 한국 우체국 시스템은 일본에 흡수되었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공식적으로 병합했을 때, 일본은 우편 시스템을 재편하고 한국 전역에 우체국 건물과 전신 인프라를 건설했다.[1] 경성우편국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건설되었으며, 그러한 건물 중 가장 크고 눈에 띄는 건물이였다.[1]
2. 2. 일제강점기
1905년 일본이 한국을 간접 통치하에 두자, 한국 우체국 시스템은 일본에 흡수되었다.[1]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공식적으로 병합했을 때, 일본은 우편 시스템을 재편하고 한국 전역에 우체국 건물과 전신 인프라를 건설했다.[1] 경성우체국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건설되었으며, 그러한 건물 중 가장 크고 눈에 띄는 건물이였다.[1]3. 건립과 운영
3. 1. 건립
3. 2. 위치 및 주변 환경
3. 3. 운영 및 역할
4. 해방 이후와 철거
경성우편국은 해방 이후 서울중앙우체국이 이 건물을 인계받았다.[6]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한국 전쟁 중 폭격으로 건물 지붕이 손상되었다.[4]
결국 파손된 건물은 철거되었고, 1957년에 3층짜리 단순한 콘크리트 건물로 대체되었다.[6] 그 건물은 다시 1980년대에 교체되었다.[6]
4. 1. 서울중앙우체국
4. 2. 한국전쟁과 철거
경성우편국은 1913년 10월 23일에 착공되어 1915년 9월 15일에 완공되었다.[3][4][1] 조선총독부 설립 기념일인 10월 1일에 운영을 시작했다.[3] 설계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국풍으로 알려져 있다.[4]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벽돌 건물로, 중앙에 큰 돔이 있었고 창문 위에는 아치형 구조가 있었다.[4][1] 남대문로와 충무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했으며, 조선은행과 미쓰코시 백화점(신세계백화점)이 근처에 있었다.[3][5]이 건물은 한국에서 통신과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매일경제신문》은 이 건물이 한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착취의 도구로 기능했다고 보도했다.[1]
1945년 한국 해방 이후에는 서울중앙우체국이 이 건물을 인계받았다.[6]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한국 전쟁 중 폭격으로 건물 지붕이 손상되었다.[4]
손상된 건물은 결국 철거되었고, 1957년에 3층짜리 단순한 콘크리트 건물로 대체되었다.[6] 그 건물은 다시 1980년대에 교체되었다.[6]
5. 비판적 시각
참조
[1]
웹사이트
영화 ‘놈놈놈’의 모티브가 된 사건···조선은행의 만주진출에서 비롯됐다 [사-연]
https://www.mk.co.kr[...]
2024-02-05
[2]
논문
The Korean Special Mission to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n 1883
https://www.jstor.or[...]
1969
[3]
웹사이트
경성우편국 전경
https://museum.seoul[...]
2024-02-04
[4]
웹사이트
경성우편국 채화엽서 '빛바랜 웅장함'
https://www.cctoday.[...]
2024-02-05
[5]
웹사이트
[반세기, 기록의 기억] (83) 서울중앙우체국 앞 육교
https://m.khan.co.kr[...]
2024-02-05
[6]
웹사이트
경성우편국 터
https://smarttour.ju[...]
2024-02-04
[7]
웹인용
한국금융사박물관
http://www.shinhanmu[...]
null
null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