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옹주
1. 개요
경순옹주는 조선 성종과 숙용 심씨의 장녀로, 이름은 옥환이다. 의성위 남치원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남편 남치원은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으나 중종 대에 물의를 일으켜 작록을 빼앗기고 유배되었다. 경순옹주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아들 남기가 1546년 정흥종의 옥사에 연루되어 참형당하면서 제사가 중단되고, 자손들은 선원록에서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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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2년 출생 -
견성군
견성군 이돈은 조선 성종의 아들로 연산군 시대에 횡포와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나 중종반정 이후 공신이 되었고, 이후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사사된 후 신원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다. -
1482년 출생 -
봉안군
봉안군은 조선 성종의 서6남으로, 연산군에 의해 사사되었으며, 의춘군부인 평양 조씨를 배우자로 두고 흥원군을 아들로 두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조선의 공주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조선의 공주 -
영온옹주
영온옹주는 조선 순조와 숙의 박씨의 외동딸이자 효명세자의 이복 여동생으로, 11세에 옹주로 책봉되었으나 병약하여 13세에 요절하였으며 효명세자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2. 생애
성종과 후궁 숙용 심씨 사이의 장녀로 태어나 의성위(宜城尉) 남치원(南致元)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남편 남치원은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으나 중종 대에 문제를 일으켜 유배되기도 했다. 경순옹주 본인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자세한 생애는 알기 어렵다. 사망 시기 역시 불분명하나, 아들 남기(南沂)가 1546년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될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들의 죽음 이후 가문은 몰락하여 왕실 족보인 선원록에서도 삭제되었다.
2.1. 출생과 혼인
1482년(성종 13년) 성종과 후궁 숙용 심씨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옥환(玉環)이다.
거창부원군 신승선의 외손자이자 연산군의 왕비인 폐비 신씨의 조카인 의성위(宜城尉) 남치원(南致元)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남편 남치원은 풍류와 음주가무를 즐겼으며, 임숭재와 함께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중종 대에 이르러 여러 문제를 일으켰는데, 특히 헌부에서 내보낸 궁녀를 첩으로 삼은 일이 문제가 되었다. 이에 헌부가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자 작위와 녹봉을 박탈당하고 가까운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대신들이 더 강한 처벌을 주장했으나 중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순옹주 본인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아들 남기(南沂)가 1546년(명종 1년) 정흥종의 옥사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는데, 당시 기록에 남기가 경순옹주의 제사를 지내왔다는 내용이 있어 1546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 남기가 처형되면서 경순옹주의 제사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졌고, 남기와 그의 자손들은 왕실 족보인 선원록에서 이름이 삭제되었다.
2.2. 남편 남치원의 비행
남편인 의성위 남치원(南致元)은 풍류와 음주가무를 즐겼으며, 임숭재와 더불어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다. 이후 중종 대에 이르러 여러 방면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특히 헌부에서 내보낸 궁녀를 첩으로 삼는 사건을 일으켜 큰 물의를 빚었다. 이 일로 헌부가 강력하게 처벌할 것을 주장하자, 결국 남치원은 작록을 빼앗기고 가까운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여러 대신들이 남치원을 더욱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중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3. 아들 남기의 죽음과 가문의 몰락
경순옹주가 언제 사망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아들 남기(南沂)가 1546년(명종 1년) 정흥종의 옥사에 연루되어 참형에 처해졌는데, 당시 남기가 경순옹주의 제사를 지내왔다는 기록이 있어 1546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 남기가 참형을 당하면서 경순옹주의 제사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또한 남기와 그의 자손들은 왕실 족보인 선원록에서 이름이 삭제되는 비운을 맞았다.
3. 가족 관계
* 부왕 : 성종(成宗, 1457 ~ 1494)
* 생모 : 숙용 심씨(淑容 沈氏, 1465 ~ 1515)
여동생 : 숙혜옹주 벽환(淑惠翁主 碧環, 1486 ~ 1525)
남동생 : 이성군 관(利城君 慣, 1489 ~ 1552)
남동생 : 영산군 전(寧山君 恮, 1490 ~ 1538)
* 시아버지 : 남경(南憬)
* 시어머니 : 거창 신씨(居昌 愼氏, 1467 ~ ?) - 신승선의 차녀이자 연산군의 왕비 폐비 신씨의 언니
남편 : 의성위(宜城尉) 남치원(南致元)
* 아들 : 남기(南沂, 1502 ~ 1546)
* 며느리 : 전주 이씨(全州 李氏)
손자 : 남상문(南尙文, 1520 ~ 1602)
손자 : 남상질(南尙質, 1522 ~ ?)
손녀 : 남인복(南仁福, 1529 ~ ?)
손자 : 남상직(南尙直, 1532 ~ ?)
* 며느리(측실) : 이름 미상
서손자 : 남상경(南尙敬)
* 며느리(측실) : 이름 미상
서손녀 : 남의비(南義非, 1550 ~ ?)
* 딸 : 의령 남씨(宜寧 南氏)
* 사위 : 덕평군 이항(李沆, 1506 ~ 1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