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정강왕릉
1. 개요
경주 정강왕릉은 경주 남산 동북쪽 구릉에 있는 신라 제50대 정강왕의 무덤이다. 둥근 형태의 봉토분으로, 높이 4m, 지름 15m이며, 무덤 밑둘레에는 3단의 돌을 쌓아 보호하고 있다. 무덤 앞에는 돌 제삿상이 있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아우로, 886년에 즉위하여 1년 만에 사망했으며, 삼국사기에는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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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치 및 형태
경주 남산의 동북쪽 구릉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무덤의 외형은 흙으로 덮은 둥근 형태(봉토분)이며, 높이는 4m, 지름은 15m이다.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밑둘레에 3단으로 돌을 쌓았으며, 그 중 제일 밑단만이 밖으로 약간 나왔다. 무덤 앞에는 돌단이 있는데, 그 위에 돌로 만든 작은 제삿상이 있다.
2.1. 무덤 보호 시설
3. 구조
3.1. 헌강왕릉과의 비교
4. 역사적 기록
5. 현지 안내문
경주 남산의 동북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끝부분에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 김황)이 모셔져 있다.
봉분의 높이는 4m, 지름 15m로 둥글게 흙을 쌓은 봉토분이다. 봉분 하단에는 둘레돌을 돌렸는데, 최하단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장방형 캔돌을 2단으로 쌓았다. 바로 앞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상석이 있고, 그 앞에 다음은 정방형 화강석으로 축조한 석단이 있다.
정강왕은 헌강왕의 아우로 886년 7월에 왕위에 올랐으나, 887년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삼국사기에는 "보리사(普提寺)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