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휘옹주
1. 개요
경휘옹주는 조선 성종과 숙용 권씨의 딸로, 이름은 정복이다. 윤내에게 하가하여 1남을 낳았으며, 1525년 1월 5일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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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조선 성종의 자녀 -
견성군
견성군 이돈은 조선 성종의 아들로 연산군 시대에 횡포와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나 중종반정 이후 공신이 되었고, 이후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사사된 후 신원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다. -
조선 성종의 자녀 -
정숙옹주 (성종)
정숙옹주는 조선 성종과 숙의 홍씨의 딸로, 영평위 윤섭에게 출가하여 사후 양자를 들여 의지하며 장수하고 예법을 중시한 삶을 살았으며, 사망 후 선조가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
조선의 공주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조선의 공주 -
영온옹주
영온옹주는 조선 순조와 숙의 박씨의 외동딸이자 효명세자의 이복 여동생으로, 11세에 옹주로 책봉되었으나 병약하여 13세에 요절하였으며 효명세자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2. 생애
경휘옹주는 성종과 숙용 권씨의 딸로, 이름은 정복(貞福)이다. 강원도 강릉에 있는 《왕녀정복태실비(王女貞福胎室碑)》에는 '홍치 2년(1489년) 9월 29일 10시에 비석을 건립했다.'는 기록만 있고, 출생일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보통 태실비는 왕의 자녀들이 태어난 해나 태어난 지 2~3년 후에 세우는 관례를 따르는데, 경휘옹주는 적어도 1489년이나 그 이전에 태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숙혜옹주가 1486년에 태어난 것을 고려하면, 1486년에서 1489년 사이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사 윤승세의 아들 영원위(鈴原尉) 윤내에게 시집가서 1남을 낳았다. 실록에는 경휘옹주 관련 기록은 없고, 남편인 윤내의 기록이 있는데, 성질이 경망하여 여러 물의를 일으켜 처벌하라는 대신들의 주청과 관련된 내용이다.
1525년 1월 5일에 사망하였다.
2.1. 출생
경휘옹주의 이름은 정복(貞福)이며, 성종과 숙용 권씨의 딸로 태어났다. 강원도 강릉에 있는 《왕녀정복태실비(王女貞福胎室碑)》에 새겨진 글에는 '홍치 2년(1489년) 9월 29일 10시에 비석을 건립했다.'는 기록만 있고, 언제 태어났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보통 태실비는 왕의 자녀들이 태어난 해나 태어난 지 2~3년 후에 세우는 관례를 따르는데, 경휘옹주는 적어도 1489년에 태어났거나 그 이전에 태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위 언니인 숙혜옹주가 1486년에 태어난 것을 고려하면, 경휘옹주는 1486년에서 1489년 사이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2.2. 혼인 이후
경휘옹주는 부사 윤승세의 아들 영원위(鈴原尉) 윤내에게 시집가서 1남을 낳았다. 실록에는 경휘옹주와 관련한 기록은 없고, 남편인 영원위 윤내의 기록이 나오는데, 윤내의 성질이 경망하여 여러 가지 물의를 일으키니 처벌하라는 대신들의 주청과 관련된 기록이다.
1525년 1월 5일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