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고
1. 개요
공자 고는 진 이세황제 시대에 순사한 인물이다. 이세황제가 즉위 후 공자들과 공주들을 죽이자, 공자 고는 일가족의 멸족을 걱정하여 이세황제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선제의 은혜를 언급하며, 불충한 자는 세상에 이름을 남길 수 없다며 죽음을 택하고 역산 아래 묻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세황제는 그의 글에 기뻐하며 장례 비용을 하사했고, 사마천의 《사기》 이사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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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9년 사망 -
진승
진승은 진나라 말기에 오광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지도자로서,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겠는가'라는 말로 유명하며 진나라 멸망의 도화선이 된 최초의 농민 반란을 주도한 인물이다. -
기원전 209년 사망 -
항량
항량은 초나라 명장 항연의 아들로, 진나라 말기 진승·오광의 난 때 거병하여 조카 항우와 함께 반진 세력을 이끌었으나 정도 전투에서 장한에게 패해 전사했고, 그의 죽음은 항우의 복수와 초한쟁패의 배경이 되었다. -
중국의 자살한 사람 -
공유덕
공유덕은 명나라 말기 모문룡의 부하에서 청나라에 투항하여 공순왕에 봉해졌으며, 오교병변과 등주성 함락을 일으키고 청나라의 정복 전쟁에 참여했으나, 남명군과의 전투 중 자결한 인물이다. -
중국의 자살한 사람 -
주우정
주우정은 후량 태조 주전충의 아들로, 형의 폭정 이후 황제가 되었으나 후당과의 전쟁과 내부 반란으로 자결하며 후량을 멸망시킨 황제이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행적
기원전 209년, 시황제 사후 이세황제가 즉위하여 부소, 장려 등 공자들과 공주들, 몽의 등 측근들까지 숙청하는 공포 정치를 펼쳤다. 공자 고는 가족이 몰살될까 걱정하여 스스로 목숨을 바치겠다는 글을 올렸고, 이세황제는 기뻐하며 100을 장례 비용으로 하사했다.
2.1. 이세황제의 즉위와 공포 정치
기원전 209년, 시황제의 뒤를 이어 이세황제가 즉위하였다. 이세황제는 부소, 장려 등 공자 열두 명과 공주 열 명을 죽이고, 대신 몽의 등 측근들까지 죽였다.
공자 고는 달아나려 하였으나, 일가족이 주멸될 것을 걱정하여 글을 올렸다.
先帝㢟康時,臣入則得食,出則乘輿。御府之衣,臣得賜之,中廐之寶馬,臣得賜之。臣當從死而不能,為人子不孝,為人臣不忠。夫不忠者,當無名以立於世,臣請從死,願葬酈山之足。唯上幸哀憐之。중국어
글을 받아본 이세황제는 크게 기뻐하여 낭중령 조고에게 보여주고는 말하였다.
此其急也。중국어
夫死者豈有閒行詐哉!중국어
이세황제는 고의 글을 받아들이고, 100000전을 장례 비용으로 내려주었다.
2.2. 공자 고의 순사(殉死) 요청
기원전 209년, 진나라의 이세황제는 부소, 장려 등 공자 열두 명과 공주 열 명을 죽이고, 몽의 등 측근들까지 죽였다. 공자 고는 일가족이 몰살당할 것을 걱정하여 순사(殉死)를 자청했다.
2.2.1. 공자 고가 이세황제에게 올린 글
公子高중국어는 달아나려 하였으나, 일가족이 주멸될 것을 걱정하여 이세황제에게 글을 올렸다.
: 선제(先帝)중국어께서 건강하셨을 때, 신은 거처에 들어가 음식을 받고, 길을 나설 때는 수레를 탔습니다. 어부(御府; 황제의 소지품 창고)의 옷도 받았고, 마구간의 명마도 받았습니다. 신은 당연히 죽어야 할 것을 그러지 못했으니, 사람으로서 불효하였고, 신하로서 불충하였습니다. 불충한 자는 세상에 이름을 남길 수 없으니, 신은 따라 죽고자 합니다. 신을 역산(酈山) 아래에 묻어 주십시오. 신을 가련하게 여겨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글을 받아본 이세황제는 크게 기뻐하여 낭중령 조고에게 보여주고는 말하였다.
: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군요."
조고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 "당장 죽게 되어 주어진 시간이 없으니, 어찌 꾀를 부릴 수 있겠습니까!"
이세황제는 고의 글을 받아들이고, 100을 장례 비용으로 내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