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남동
1. 개요
교남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법정동이다. 교남동이라는 이름은 교남파출소 앞에 있던 돌다리 남쪽 동네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서부 지역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되었다가 해방 이후 현재의 명칭으로 환원되었다. 관할 법정동으로는 교남동, 평동, 송월동, 홍파동, 교북동, 행촌동이 있으며, 경찰박물관과 평동교회가 위치해 있다.
| 이름 | 교남동 |
|---|---|
| 한글 표기 | 교남동 |
| 한자 표기 | 橋南洞 |
| 로마자 표기 | Gyo nam dong |
| 매큔-라이샤워 표기 | Kyo nam tong |
| 면적 | 0.35 km² |
| 인구 (2001년) | 9,291명 |
| 인구 (2022년 8월) | 9,944명 |
| 세대수 (2012년) | 4,423 |
| 세대수 (2022년 1월 31일) | 4,450 |
| 국가 | 대한민국 |
|---|---|
| 광역시도 | 서울특별시 |
| 시군구 | 종로구 |
| 법정동 | 교남동 평동 송월동 홍파동 교북동 행촌동 |
| 통 | 15 |
| 반 | 110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동주민센터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길 154 |
|---|---|
| 동주민센터 홈페이지 | 종로구 교남동 주민센터 |
| 유래 | 교남동 이름의 유래 |
|---|
-
서울 종로구의 행정동 -
삼청동
삼청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법정동이자 행정동으로, 이름의 유래는 삼청전 또는 산, 물, 사람의 맑음에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시대 진장방 지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는 주요 기관과 유적이 위치하고 안국역이 인근에 있다. -
서울 종로구의 행정동 -
평창동
평창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쪽에 위치한 동으로, 조선시대 평창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 고급 주택가와 문화 시설이 밀집되어 있고, 다양한 문화재와 촬영지가 있는 곳이다. -
1970년 설치 -
후암동
후암동은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위치한 법정동이자 행정동이며, 두텁바위에서 유래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삼판통으로 불리다가 1946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후암로와 소월로가 주요 도로이고, 남산도서관 등이 위치해 있다. -
1970년 설치 -
청운동
청운동은 청풍계와 백운동에서 유래된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행정 구역으로, 조선 초기에는 한성부 북부 지역이었으며, 서울청운초등학교, 청와대, 경복궁 등을 포함하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등의 기념물과 장의문이 위치해 있다. -
서울 종로구의 법정동 -
청운동
청운동은 청풍계와 백운동에서 유래된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행정 구역으로, 조선 초기에는 한성부 북부 지역이었으며, 서울청운초등학교, 청와대, 경복궁 등을 포함하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등의 기념물과 장의문이 위치해 있다. -
서울 종로구의 법정동 -
삼청동
삼청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법정동이자 행정동으로, 이름의 유래는 삼청전 또는 산, 물, 사람의 맑음에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시대 진장방 지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는 주요 기관과 유적이 위치하고 안국역이 인근에 있다.
2. 지명 유래
교남동의 동명은 지금의 교남동 100번지 북쪽, 곧 교남파출소 앞에 돌로 만든 다리가 있다고 하여 다리의 남쪽 동네를 교남동, 북쪽을 교북동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교남동 동명 유래가 되고 있는 석교는 1830년 유본예가 지은 《한경지략》에 석교, 1864년 김정호가 만든 《대동지지》에는 초교(草橋), 고종 초에 김정호가 만든 《수선전도》에는 교량 표시만 되어 있고, 1902년 로얄 아시아틱소사이어티에서 간행한 ‘서울지도’에는 ‘석교’라고 표시되어 있다. 또 다리 이름을 ‘돌다리’, ‘석다리’라고도 불렀던 것으로 보아 《수선전도》 제작 당시에는 이미 석교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석교는 교북동·천연동·교남동에 걸쳐 있어서 지금의 의주로 한가운데에 위치한 셈이 되었다. 석교가 있으므로 돌다리골 혹은 석교동이라 하였는데,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곳에는 언제나 장시가 형성되기 마련이듯 이 석교동에도 무악재 너머에 사는 사람들이 가꾼 각종 농산물을 다리께에 펼쳐 놓아 난전이 형성되곤 하였다.
3. 역사
교남동의 동명은 현재 교남동 100번지 북쪽, 교남파출소 앞에 있던 돌다리에서 유래되었다. 이 다리의 남쪽 동네를 교남동, 북쪽을 교북동이라 불렀다. 1830년 유본예가 지은 《한경지략》에는 석교, 1864년 김정호가 만든 《대동지지》에는 초교(草橋)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종 초에 김정호가 만든 《수선전도》에는 다리 표시만 되어 있고, 1902년 로얄 아시아틱소사이어티에서 간행한 ‘서울지도’에는 ‘석교’라고 표시되어 있다. 다리 이름은 ‘돌다리’, ‘석다리’라고도 불렸는데, 《수선전도》 제작 당시에는 이미 석교였던 것으로 보인다. 석교는 교북동·천연동·교남동에 걸쳐 있어 현재 의주로 한가운데에 위치하였다. 돌다리골 혹은 석교동이라고 불렸으며, 사람 통행이 잦아 석교동에는 무악재 너머 사람들이 가꾼 농산물을 파는 난전이 형성되곤 하였다.
4. 법정동
5. 주요 시설 및 문화
이 섹션에는 경찰박물관과 평동교회가 있다.
5.1. 문화
* 경찰박물관
* 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