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돈의문은 1396년(태조 5년)에 완공된 한양도성의 서쪽 문이다. 풍수지리적 문제로 폐쇄와 재건을 반복하다가 1711년(숙종 37년)에 재건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재건되기도 했다. 1915년 일제강점기, 경성전차 궤도 복선화 공사를 이유로 강제 철거되었다. 이후 서울특별시가 복원을 추진했으나 예산 문제 등으로 지연되어, 2019년 증강현실(AR)로 복원되었다. 현재 돈의문 터는 중구 정동에 위치하며, 국립고궁박물관에 현판이 소장되어 있고, 문화재 훼손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으로서 문화유산 보존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돈의문
개요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1904년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촬영한 돈의문. "...일본군이 서울로 진입하고 있다..."
다른 이름서대문 (西大門)
충정문 (忠正門)
위치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상세 정보
종류성문
건축 양식정면 3칸, 측면 2칸
창건1396년 (태조 5년)
재건1711년 (숙종 37년)
철거1915년
명칭
한국어돈의문 (敦義門)
로마자 표기Donuimun
한자敦義門
일본어돈기몬 (敦義門)
세이다이몬 (西大門)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의 성문 - 소의문
    소의문은 조선 시대 한성부의 서소문으로, 1396년에 세워져 소덕문으로 불리다가 영조 때 소의문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14년 철거되어 현재는 표석만 남아 있다.
  • 한양도성 - 흥인지문
    흥인지문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동쪽 대문으로, 1398년에 처음 건립되어 1869년에 중건되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호이자 도성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고, 풍수지리적 이유로 이름 지어졌으며, 현재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다.
  • 한양도성 - 숭례문
    숭례문은 1398년에 완공된 조선 시대 서울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며,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으나 방화 사건으로 훼손되어 복구되었고, 다양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 분류 값 없이 쓰인 위키공용분류 - 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분류 값 없이 쓰인 위키공용분류 - 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2. 역사

1396년(태조 5년)에 처음 지어진 돈의문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거나 1915년 일제강점기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 철거되는 등 여러 차례 훼손과 재건을 거듭했다.

돈의문은 서울 성곽의 서쪽 문으로, '의리를 굳게 지키는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숙정문(북대문)과 함께 조선 시대 수도 한양(서울)을 둘러싼 성곽의 4대문 중 하나였다.

1904년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가 촬영한 사진을 비롯하여 돈의문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남아있는데, 이 사진들에는 돈의문을 통과하는 "미국식 전기 트램웨이" 궤도가 담겨 있기도 하다.

돈의문은 서대문구에 있었기 때문에 '서대문'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지만, 현재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중구 관할 지역에 속한다. 현재 경향신문사 앞 정동사거리에는 '돈의문 터' 표지석이 남아있다.

2.1. 조선 시대

1396년(태조 5년) 9월, 한양도성의 다른 성문들과 함께 돈의문이 완공되었다. 축성 당시 돈의문은 사직동 고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413년(태종 13년), 풍수학자 최양선이 돈의문의 위치가 경복궁의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돈의문을 닫고 서전문(西箭門)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다. 처음에는 이숙번의 집 앞에 있는 옛 길을 따라 세우고자 하였으나, 이숙번의 건의로 상왕 정종의 인덕궁 앞 소동(小洞)에 설치되었다.

1422년(세종 4년) 2월, 서전문을 폐쇄하고 돈의문을 다시 열었다. 이때 기존의 돈의문과 서전문을 모두 철거하고 현재의 신문로 언덕 위에 새로 건설하였다. 1711년(숙종 37년)에는 문과 누각이 낡아 재건되었다. 한편, 돈의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711년에 재건되었다.

2.2. 일제강점기

1915년 3월, 조선총독부는 경성전차 궤도를 복선화한다는 구실로 돈의문을 강제로 철거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하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훼손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흥인지문처럼 문을 우회하는 대신 철거를 결정한 것은, 일제가 우리 문화재를 얼마나 경시했는지를 보여준다.

돈의문 철거는 경매를 통해 진행되었는데, 친일파 염덕기(廉德基)가 205.5에 목재를 낙찰받았다. 이 과정에서 귀중한 부속물들은 총독부가 관리하게 되었는데, 이는 일제가 우리 문화재를 수탈하고 파괴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그해 6월에 돈의문은 완전히 철거되었다. 이처럼 일제는 한일 병합 이후, 궤도 복선화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돈의문을 해체, 철거했다.

2.3. 해방 이후

2009년 서울특별시는 인근 서대문 고가차도를 철거하고 2013년까지 돈의문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특별시청은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지도를 활용하고 조사 및 발굴을 진행하여 돈의문을 복원하려 했다. 그러나 예산, 보상, 교통 문제 등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복원은 2022년까지 중장기 과제로 미뤄졌고, 결국 2016년에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8년 12월 6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우미건설, 문화재청, 서울시, 제일기획이 돈의문의 증강현실(AR) 복원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후 실물 복원 대신 가상 현실(VR) 기술을 사용한 디지털 복원이 실시되었고, 2019년 8월에 증강현실 복원이 완료되어 공개되었다.

현재 돈의문 터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앞 정동사거리에 있으며, '돈의문 터'라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3. 건축적 특징

돌축대 한가운데에 무지개문을 크게 내고, 축대 위에는 단층 우진각지붕집 형태의 초루(譙樓)를 세우고 둘레에는 낮은 담을 설치하였다. 둘레의 담장은 한양도성과 연결되었다.

4. 명칭

돈의문이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의리의 문"을 의미한다. 돈의문은 서울 성곽의 네 개의 큰 문(사대문) 중 하나였다.

5. 유물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돈의문 현판이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물이다.

6. 사진 자료

--
--
--
--

돈의문은 1915년 일제강점기에 훼손되기 전, 다양한 시기에 사진으로 촬영되었다. 특히 1904년 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촬영한 사진이 유명하다. 이 사진들 중 일부는 돈의문을 통과하는 "미국식 전기 트램웨이"의 궤도를 보여준다.

7. 현대적 의의

숭례문, 숙정문, 흥인지문과 함께 조선 시대 서울의 4대문 중 하나였다. 높이와 폭은 모두 12m였다.

1915년 일제강점기에 궤도 복선화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철거되어 4대문 중 유일하게 현존하지 않는 문이 되었다. 실물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편액뿐이다. 돈의문 아래로는 서울 전차가 지나갔지만, 한일 병합 이후 철거되었다.

2013년 복원 예정이었으나, 막대한 비용 문제로 2016년 계획이 백지화되었다. 이후 서울시는 실물 복원 대신 VR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복원을 하여 2019년에 공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