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고이치
1. 개요
구도 고이치는 일본의 축구 지도자이다.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와세다 대학교 감독을 맡았으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보좌를 역임했다. 1942년에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동아 경기 대회 등 4경기를 지휘했다. 1952년에 와세다 대학교를 다시 지도했으며, 1957년부터 와세다 대학교 감독으로 취임하여 야에가시 시게오, 가와부치 사부로 등 여러 선수를 지도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이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한 "베를린의 기적"을 이끌었다.
| 이름 | 고이치 구도 |
|---|---|
| 본명 | 고이치 구도 |
| 카타카나 표기 | 구도 고이치 |
| 알파벳 표기 | Kudo Koichi |
| 원어 이름 | 구도 고이치 |
| 원어 표기 | 工藤 孝一 |
| 출생일 | 1909년 2월 4일 |
| 출생 장소 | 일본 이와테현 이와테군 |
| 사망일 | 1971년 9월 21일 |
| 사망 장소 | 일본 도쿄도 스기나미구 |
| 포지션 | 골키퍼, 공격수 |
| 청소년 클럽1 | 제1 와세다 고등학원 |
| 청소년 클럽1 연도 | 1927-1930년 |
| 청소년 클럽2 | 와세다 대학 |
| 청소년 클럽2 연도 | 1930-1933년 |
| 감독 연도1 | 1933-1943년 |
|---|---|
| 감독 팀1 | 와세다 대학 |
| 감독 연도2 | 1942년 |
| 감독 팀2 | 일본 |
| 감독 연도3 | 1957-1966년 |
| 감독 팀3 | 와세다 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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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와세다 대학 교수 -
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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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대학 교수 -
아키라 이리에
아키라 이리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역사학자로, 외교사에 문화적 관점을 통합하여 국제 관계 연구를 확장하고 미국과 동아시아 관계, 냉전 시대 아시아 등에 대한 연구로 학계에 기여했으며, '역사의 국제화'를 주장하며 국제사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2. 선수 경력
구도 고이치는 이와테현립 모리오카 중학교(현 이와테현립 모리오카 제1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1 와세다 고등학원에 진학하여 골키퍼로 전국 고등학교 아식 축구 대회에 출전, 1929년 제6회 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2.1. 포지션 전향과 은퇴
와세다 대학 상학부에 입학하여 골키퍼로 활동하던 구도는 포워드로 전향했지만, 체격 조건의 한계로 선수 생활을 포기했다. 이후 매니저로 활동하며 베를린 올림픽 대표팀의 헤드 코치를 맡는 등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3. 지도자 경력
구도 고이치는 1933년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 감독으로 취임하여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에서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보좌를 맡아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베를린의 기적]]"이라 불리는 역사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1942년에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동아 경기 대회 등 4경기를 지휘했다.
1952년 다시 상경하여 와세다 대학을 지도했고, 1957년부터 와세다 대학 감독으로 복귀했다. 야에가시 시게오, 가와부치 사부로, 가마모토 구니시게 등 유명 선수들이 그의 지도를 받았다. 1959년 와세다 대학교 강사로 교직도 겸임했으며, 1966년 감독직에서 은퇴했다.
3.1. 와세다 대학 감독 (초기)
1933년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와세다 대학교의 감독이 되었다.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 보좌를 맡았다. 일본은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올림픽에서의 일본 첫 승리이자 강호팀을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승리였다. 훗날 일본에서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호리에 타다오, 카와모토 타이조 등 와세다 대학 출신자들이 축구 일본 대표팀에 많이 선출되어, 구도 또한 헤드 코치로 취임했다. 감독 스즈키 시게요시, 선수 겸임 코치 타케코시 시게마루와 함께, 당시 유럽의 선진적인 3백 시스템을 급하게 도입하는 등 고심 끝에 베를린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3.3. 와세다 대학 감독 (후기)
1952년 다시 상경하여 와세다 대학 축구부를 지도했고, 1957년부터 와세다 대학 감독을 맡았다. 야에가시 시게오, 가와부치 사부로, 가마모토 구니시게, 마쓰모토 이쿠오, 미야모토 마사카츠, 모리 다카지 등이 와세다 대학에서 구도의 지도를 받았다. 1959년에는 와세다 대학 강사로 교직도 맡았다. 1966년 감독직에서 은퇴했다.
3.3.1. 베를린의 기적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보좌를 맡아,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한 역전승을 이끌었다. 올림픽에서의 일본 첫 승리이자 강호팀을 상대로 거둔 이 역사적인 승리는 훗날 일본에서 "베를린의 기적"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2016년, 이 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 은퇴 이후
1943년에 도맹 통신사를 퇴직하고 이와테현으로 귀향했다. 낙농업을 운영하고, 농협 전무도 역임했다. 1944년에 태평양 전쟁으로 징집되었다가 1945년에 제대했다. 이와테에 거주하는 동안 모리오카 중학교 코치로 취임하여 야에가시 시게오 등을 지도했다. 1950년 이와테현 축구 협회 설립에 관여하여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6. 수상 및 영예
2016년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에서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둔 일본 대표팀의 일원으로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 승리는 "베를린의 기적(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리며 일본 축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