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다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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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리 다카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 감독, 행정가로, 선수 시절에는 일본 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은퇴 후에는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아 1980년대 일본 축구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J리그 출범에 기여하여 '우라와 레즈의 아버지'로 불린다. 1992년 우라와 레즈 초대 감독을 역임했고, 2006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1년 신장암으로 사망했다.

모리 다카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모리 다카지
본명모리 다카지 (森 孝慈)
로마자 표기Mori Takaji
출생일1943년 11월 24일
출생지일본,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사망일2011년 7월 17일
사망지일본, 도쿄도 메구로구
신장173cm
포지션미드필더, 수비수
선수 경력
유소년 클럽슈도 고등학교 (1959-1961)
와세다 대학 (1962-1966)
클럽미쓰비시 중공업/미쓰비시 자동차 (1967-1977)
출장 및 득점146경기 28골
국가대표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1966-1976)
국가대표 출장 및 득점56경기 2골
수상 내역 (선수)
일본 사커 리그 우승1969년, 1973년
일본 사커 리그 준우승1970년, 1971년,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1971년, 1973년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1967년, 1968년
아시안 게임 동메달1966년 (방콕)
올림픽 동메달1968년 (멕시코 시티)
감독 경력
감독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1981-1985)
우라와 레즈 (1992-1993)
아비스파 후쿠오카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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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모리 다카지는 1943년 11월 24일 일본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정에서 태어나 슈도고등학교, 와세다 대학을 거쳐 1967년 우라와 레즈의 전신인 미쓰비시 중공업 축구부에 입단해 1977년 은퇴할 때까지 한 팀에서만 활약했다.

와세다 대학 재학 중 1964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다. 1966년 아시안 게임에서 국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1968년 하계 올림픽 동메달, 1970년 아시안 게임 4강 진출에 기여했다. 1976년까지 A매치 56경기 2골을 기록했다.

2.1. 클럽 경력

1967년 우라와 레즈의 전신인 미쓰비시 중공업 축구부에 입단하여 1977년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다. 일본 사커 리그 2회 우승(1969년, 1973년) 및 5회 준우승, 일왕배 2회 우승(1971년, 1973년) 및 2회 준우승에 기여했다. JSL 통산 146경기 28골을 기록했으며, 5번의 JSL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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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기록리그
시즌클럽리그출장
일본리그
1967미쓰비시 자동차JSL 디비전 1143
1968143
1969142
1970146
1971101
1972140
1973181
1974188
1975124
1976180
197700
합계| 28

2.2. 국가대표팀 경력

모리 다카지는 와세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4년 하계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출전 기회는 없었다. 1966년 아시안 게임에서 싱가포르를 상대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팀의 5-1 대승에 기여하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1968년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일본 축구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동메달) 획득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공로로 2018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70년 아시안 게임에도 출전하여 4강 진출에 기여했으나, 동메달 결정전에서 인도에 패했다.

1976년까지 A매치 통산 56경기 2골을 기록하고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반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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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연도출장득점
196640
196751
196840
196940
1970130
197130
197280
197311
197410
197590
197640
| 56 || 2

3. 지도자 경력

모리 다카지는 1980년 일본 A대표팀의 감독 대행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1981년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1982년 아시안 게임, 198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아시아 지역 예선, 198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 대표팀을 지휘했다.

1992년 우라와 레즈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일왕배 4강에 진출했으나, 1993년 J리그에서 부진하여 사임했다. 1998년 아비스파 후쿠오카 감독을 맡았으나 1시즌 만에 물러났다.

모리 다카지는 우라와 레즈 초대 감독으로서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따뜻한 인간미로 팬들을 매료시키고 열정적인 서포터를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3.1.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

모리 다카지는 1980년 일본 A대표팀의 감독 대행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인 1981년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1982년 아시안 게임, 1984년 하계 올림픽 축구 아시아 지역 예선, 198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1986년 아시안 게임을 지휘했다.

1986년 월드컵 예선에서 일본은 싱가포르, 북한, 홍콩을 꺾고 동아시아 지역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여 대한민국과 맞붙었으나, 합계 1-3으로 패하며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모리 다카지는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 대표팀을 이끌었지만, 팀이 2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하자 사임했다.

3.2. 클럽 감독

1992년 우라와 레즈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일왕배 4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1993년 J리그에서는 상대에게 시스템이 연구되고, 보강 실패와 부상자 속출로 인해 산토리 시리즈, 니코스 시리즈 모두 최하위를 기록하며 시즌 후 사임했다. 당시 크루이프 감독이 이끄는 FC 바르셀로나가 채택했던 3-4-3 초 공격적인 포메이션으로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1998년 아비스파 후쿠오카 감독을 맡았으나 1시즌 만에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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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소속클럽리그전컵 대회
순위경기승점승리무승부패배나비스코컵천황배
1992J우라와-5위4강
199310위36-8-28예선 리그2회전
1998후쿠오카18위34218-26예선 리그4회전

4. 행정가 경력

모리 다카지는 은퇴 후 미쓰비시 중공업 인사부에서 근무하며 일본 프로 축구 리그(J리그) 출범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우라와 레즈의 J리그 참가를 위해 노력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제너럴 매니저를 역임했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우라와 레즈의 제너럴 매니저로 재직하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06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5. 사망

모리 다카지는 2011년 7월 17일 도쿄도 메구로구에서 신우암으로 향년 6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2011년 FIFA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여자 축구 세계 최강팀이자 여자 월드컵 최다 우승팀인 미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을 3-1로 꺾고 역사상 첫 여자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날이었다.

6. 유산 및 평가

모리 다카지는 선수, 감독, 행정가로서 일본 축구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우라와 레즈의 창단과 J리그 초창기 안정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라와 레즈의 아버지'로 불린다. 일본 축구계의 프로화와 선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994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일본 vs 이라크 (도하의 비극) 경기에서 TV 도쿄 스튜디오 해설을 맡았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요코하마 마리노스제너럴 매니저를 역임했으며, 1995년 요코하마 마리노스는 연간 챔피언에 올랐다. 1998년 아비스파 후쿠오카 감독을 거쳐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아비스파 후쿠오카 프런트에서 활동했다. 2002년부터 우라와 레즈 GM으로 취임하여 이누카이 모토아키 사장, 나카무라 슈조 강화 본부장과 함께 팀 개혁을 이끌었다. 한스 오프트, 기드 부흐발트 감독, 게르트 엥겔스 수석 코치를 영입하여 팀을 강화했으며, 2005년제85회 천황배, 2006년제86회 천황배 2연패를 달성했다. 2006년 1월 31일 GM직에서 물러났다.

2006년 제3회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선정되었다. 2008년부터 요코하마 GS 풋볼 클럽 고문, 2010년 일본 축구 명성회 명예 회장을 역임했다.

2011년 7월 17일, 신우암으로 국립병원기구 도쿄 의료센터(도쿄도메구로구)에서 사망했다. 같은 날 2011 FIFA 여자 월드컵에서 일본 여자 대표팀이 미국을 꺾고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