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타 간이치로
1. 개요
구보타 간이치로는 일본의 외교관이다. 1902년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나 도쿄 상과대학을 중퇴하고 외무성에 들어가 프랑스, 벨기에, 소련 등에서 근무했다. 하얼빈 총영사, 사이공 총영사, 캄보디아 왕국 최고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종전 후에는 한일회담 일본 측 수석대표, 주 멕시코 특명전권대사, 주 남베트남 특명전권대사 등을 지냈다. 한일회담에서 대한제국 병합이 한국의 생활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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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구보타 간이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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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표기 | 久保田 貫一郎 |
| 로마자 표기 | Kubota Kan'ichirō |
| 출생 | 1885년 2월 2일 |
| 사망 | 1969년 11월 3일 (84세) |
| 출신지 | 일본 나가노현 |
| 직업 | 문학 연구자 비평가 시인 |
| 분야 | 일본 근대 문학 |
| 출신 학교 | 와세다대학 문학부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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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경력 | 와세다대학 교수 일본 예술원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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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분야 | 일본 근대 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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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내역 | 요미우리 문학상 (1954년) 일본 예술원상 (1956년) 문화 공로자 (196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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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사망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1977년 사망 -
송영 (극작가)
송영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극작가로, 카프 계열 연극인으로 등단하여 노동 운동 풍자 작품을 발표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 위원장을 지냈으며, 김일성 항일 무장 투쟁을 형상화한 희곡으로 알려졌으나 한설야 숙청 시기에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것으로 보아 복권된 것으로 추정된다. -
와카야마현 출신 -
가타야마 데쓰
가타야마 데쓰는 도쿄제국대학 법학을 전공하고 사회민주당, 일본 사회당 창당에 참여하여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으며, 노동성 설립과 노동기준법 제정 등 사회 개혁을 추진하다 민사당에서 활동하며 정계에서 은퇴했다. -
와카야마현 출신 -
니카이 도시히로
니카이 도시히로는 와카야마현 출신의 일본 정치인으로, 운수대신, 경제산업대신, 자민당 간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친중파로서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을 맡았고,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우호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으나, 2024년 정치자금 스캔들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
일본 제국의 외교관 -
스에마쓰 겐초
이토 히로부미의 사위인 스에마쓰 겐초는 일본 제국 의회 의원, 통신 대신, 내무 대신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러일 전쟁 시기 일본의 입장을 옹호한 외교관이었으며, 겐지 이야기를 영어로 번역하여 일본 문학을 세계에 알린 학자이다. -
일본 제국의 외교관 -
도미타 데쓰노스케
도미타 데쓰노스케는 센다이번 출신으로, 에도와 미국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이와쿠라 사절단을 수행한 외교관이자 일본은행 초대 부총재, 제2대 총재를 역임하며 중앙은행 체제 구축에 기여했으며, 귀족원 칙선의원, 도쿄부 지사, 실업가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2. 생애
1902년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나, 1924년 도쿄상과대학(히토쓰바시 대학의 전신)에 입학했다가 외교관의 길을 걷기 위해 중퇴했다. 같은 해 고등문관시험 외교과 시험에 합격하고 외무성에 들어갔다. 외무성 재외 연구원으로 프랑스, 벨기에, 소련 등지에서 근무했다. 1939년부터 종전 시까지 만주국 하얼빈 총영사, 외무성 정무국 3과장, 사이공 총영사, 캄보디아 왕국의 최고 고문을 역임했다.
종전 후 1948년 홋카이도 연락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1953년 한일회담에서 일본 측 수석대표를 맡았다. 같은 해 주 멕시코 특명전권대사, 1958년 주 남베트남 특명전권대사로 부임해 일본과 베트남 공화국 간 전쟁 피해 배상 문제 교섭의 전권위원으로 협정을 타결지었다. 1962년 일본 국제 문제 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아내는 이시이 키쿠지로 (전 외무대신)의 딸 기요코이다.
2.1. 초기 생애
1902년 와카야마현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구제 와카야마 중학교(현 와카야마현립 도인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도쿄상과대학(현 히토쓰바시 대학)에 입학했다가 외교관의 길을 걷기 위해 중퇴했다. 같은 해 고등문관시험 외교과 시험에 합격하고 외무성에 들어갔다. 외무성 재외 연구원으로 프랑스, 벨기에, 소련 등지에서 근무했다.
2.2. 외교관 경력
1924년 고등문관시험 외교과 시험에 합격하여 외무성 재외 연구원으로 프랑스에 부임했다. 이후 벨기에, 소련 등에서 근무했다. 1939년 하얼빈 총영사를 역임했다. 1942년 외무성 정무국 3과장을 역임했다. 1944년 사이공 총영사를 역임했다. 1945년 캄보디아 왕국의 최고 고문을 역임했다.
1948년 총리청 홋카이도 연락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1949년 참의원 외무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1953년 한일회담 일본 측 수석대표를 맡았으며, 같은 해 주 멕시코 특명전권대사에 임명되었다. 1954년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등 중미 6개국 공사를 겸임했다. 1958년 주 남베트남 특명전권대사를 역임하여, 일본과 베트남 공화국 간 전쟁 피해 배상 문제 교섭의 전권위원으로 협정을 타결지었다. 1962년 일본 국제 문제 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다.(1965년까지 재임)
3. 구보타 발언
1953년 한일회담에서 일본 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구보타 간이치로는 대한제국 병합이 한국의 생활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는 발언을 하여 한국 측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 발언은 '구보타 망언'으로 불리며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쳤다.
4. 가족 관계
아내는 이시이 기쿠지로(전 외무대신)의 딸 기요코이다.
5. 저서
| 제목 | 출판사 | 연도 |
|---|---|---|
| 최근 소련 국내 사정 | 사츠키회 | 1938년 |
| 멕시코 가집 | 이치로총서: 단가 신문사 | 195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