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노 다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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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사노 다이스케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해설가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에서 활동하다가 2005년 드래프트에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8순위로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006년 데뷔하여 내야수로 활약했으며, 2009년에는 21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2012년 은퇴 후에는 라쿠텐 구단의 친선 대사, 2군 타격 코치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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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노 다이스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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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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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76년 12월 4일 |
출생지 | 미야자키현 노베오카시 |
신장 | 170 |
체중 | 78 |
선수 정보 | |
수비 위치 | 내야수, 외야수 |
투구 | 우 |
타석 | 좌 |
프로 입단 연도 | 2005년 |
드래프트 순위 |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 8순위 |
첫 출장 | 2006년 3월 26일 |
최종 출장 | 2012년 9월 27일 |
통산 타율 | .285 |
통산 안타 | 220 |
통산 타점 | 82 |
선수 경력 | |
선수 | 노베오카 가쿠엔 고등학교 NTT 도쿄 NTT 규슈 혼다 구마모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6 - 2012) |
코치 경력 | |
코치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4 - 2016) 니가타 알비렉스 BC (2017 - 2018) |
2. 프로 입단 전
노베오카가쿠엔 고등학교 시절 3번 타자 겸 유격수로 활약하며 1994년 미야자키현 대회 결승전에서 후쿠모리 가즈오가 소속된 미야코노조 고등학교를 꺾고 고시엔 대회에 진출했다. 그러나 첫 경기인 도쿄 농업대학 제2 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4대 12로 패했다.[1]
고등학교 졸업 후 1995년 NTT 도쿄에 입단했다. 1999년 NTT 도쿄가 NTT동일본으로 통합되면서 NTT 규슈 경식 야구부로 이적하여 제70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이후 소속팀이 기업팀으로서의 활동을 종료하고, 팀 이름도 'NTT 서일본 규슈 야구 클럽'(후에 'NTT 그룹 규슈 야구 클럽'으로 개칭)으로 변경되었다. 2001년 팀이 해체되면서 혼다 구마모토로 이적했다.
2002년 규슈 지역 예선에서 사카모토 다모쓰와 함께 3번·유격수로 팀을 이끌며 제73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3년 제74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하여 8강 진출에 기여했다. 2004년과 2005년 소속 팀이 도시 대항 야구 대회 출전에 실패했지만, JR 규슈 보강 선수로 대회에 출전, 3루수를 맡았다. JR 규슈는 매년 8강과 4강에 진출했다. 2003년부터 4회 연속 전일본 대표팀에 발탁되어 사회인 야구를 대표하는 내야수가 되었고, 전일본 대표팀에서는 2루수로 출전했다.
2005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 8순위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했다. 29세의 늦은 나이였지만, 고등학교 선배 구로키 도모히로와 상의 후 프로 입단을 결심했다.[1]
2. 1. 일본 프로 야구 선수 시절
2005년 드래프트 8순위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 29세로, 프로 선수로는 늦은 나이였지만 가족의 지지와 선배 구로키 도모히로의 조언으로 프로 입단을 결심했다.2006년 3월 26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전 (삿포로 돔)에 "8번・2루수"로 첫 출전하여 첫 안타인 2루타를 기록했다.
2007년 개막전 세이부 라이온즈 전 (굿윌 돔)에서 "2번・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니시구치 후미야로부터 프로 첫 홈런을 쏘아 올렸다. 7월에는 이케야마 타카히로로부터 조언을 받아 허리를 낮춘 타격 연습을 했다[3].8월 10일 지바 롯데 마린스 전 (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에서 프로 첫 사요나라 안타를 기록했으며, 9월에는 15일, 21일, 24일, 27일, 29일, 30일 연속으로 맹타상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기여하는 결정적인 타점을 여러 번 기록하여 라쿠텐의 최하위 탈출(단독 4위)의 주역 중 한 명이 되었다.
2008년 오픈전에서 타율 .333(팀 톱)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3번・3루수"로 2년 연속 개막 선발 출전을 했지만, 개막 후 타율이 1할대에 그치며 부진하여 2군으로 강등되었다.
2009년 오픈전 때 오른쪽 종아리 근육 파열로 인해 등록 말소되어, 개막 1군 진입에 실패했다. 4월 12일 세이부 전에서 1군에 복귀하여 "6번・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4안타를 기록하는 활약을 보였다. 5월 25일에 규정 타석을 채우고 타율 .402로 수위 타자로 올라섰다. 7월에는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외야수 부문 3위에 빛나며 첫 올스타 출전을 했다.
2010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앤디 필립스의 영입과 나카무라 노리히로의 부활로 인해 준 레귤러로 개막을 맞이했다.
2011년, 신규 입단한 이와무라 아키노리가 3루에 고정되고, 1루수 레귤러 후보인 루이스의 수비 난이라는 사정도 감안하여, 선수 기용의 바리에이션을 늘리고 싶어하는 감독 호시노 센이치의 방침에 따라 캠프부터 1루 수비 연습을 시작했다.
2012년 9월 1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서 1군 공식전 첫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11월 4일에 전력 외 통보를 받았고,[4] 같은 달 22일에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5]
확실성이 떨어지기 쉬운 오른발을 크게 들어 올리는 폼에도 불구하고, 천부적인 반사 신경과 타격 기술로 안타를 쳐낸다.[13] 1루 도달 시간 4.08초를 기록하는 발도 갖추고 있다.[14] 내야 수비에 각별한 고집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3루수로서 3루 선상의 타구를 반신으로 포구하려 할 경우, 왼쪽 눈으로 공을 보게 되어 공을 잡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공을 오른쪽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몸을 최대한 타구와 정면으로 향하게 한다. 또한, 손바닥에 직접 전해지는 감촉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글러브 아래에는 장갑을 착용하지 않았다.[15]
2. 1. 1. 2006년 (라쿠텐)
다카스 요스케가 부상으로 출전이 늦어진 사이, 개막 2경기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삿포로 돔)에 8번·2루수로 첫 출전하여 첫 안타를 기록했다.[1] 이후 니시무라 와타루, 시오카와 다쓰야와 유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1군과 2군을 오가며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1군에서는 4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10, 0홈런, 2타점을 기록하며 아쉬운 성적을 남겼지만, 이스턴 리그에서는 41경기에서 타율 .348, 4홈런, 6도루를 기록했다.2. 1. 2. 2007년 (라쿠텐)
개막전인 세이부 라이온스전(굿윌 돔)에서 2번·3루수로 선발 출전해 니시구치 후미야로부터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때려냈다.[2] 전반기에는 본인도 “떨어지는 곳까지 떨어졌다”라고 말할 정도의 타격 부진에 시달리면서 와타나베 나오토의 등장으로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는 등 대타로 출전하는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대타로서 뚜렷한 결과를 남기면서 호세 페르난데스의 부진으로 인해 교류전에서는 3루수로 선발 출전하는 일이 많아졌다(다만 상대팀 선발 투수가 좌완일 경우에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는 일이 많았다). 7월, 이케야마 다카히로 타격 코치로부터 조언을 받아 허리를 낮게 떨어뜨린 타격 연습에 전념하여 이 연습에 공을 들였고, 체인지업 등 변화하는 볼에 대응할 수 있게 된 8월경부터 타율이 오르기 시작하였다.[3]8월 10일의 지바 롯데 (센다이)전에서는 데뷔 후 처음으로 끝내기 안타를 때려냈고, 같은 달 21일에는 역시 지바 롯데(지바)와의 경기에서 솔로 홈런을 때려냈다. 경기 종료 후, 노무라 가쓰야 감독은 “승부에 강하고 (타격에 관해서는) 천재적인 면이 있다. 구사노를 3번에”라고 발언했다. 그 후 선발 투수가 좌우완에 관계없이 3번·3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9월에는 15일·21일·24일·27일·29일·30일에 연달아 맹타상을 기록했고, 팀 승리에 기여하는 결승타를 자주 기록하면서 라쿠텐의 최하위 탈출(단독 4위)에 중심 인물이 되었다. 최종적으로는 규정 타석에 부족하면서도 타율 3할 2푼을 기록했다. 또 2개 스트라이크로부터의 타율은 양대 리그에서 1위인 타율 3할 2푼 8리를 기록했지만, 한편으로 수비면에서는 리그 5위인 14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2. 1. 3. 2008년 (라쿠텐)
시범 경기에서 타율 3할 3푼 3리(팀내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3번·3루수로 2년 연속 개막전에 선발 출전했다.[2] 그러나 개막 후에는 타율이 1할대에 머물 정도로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고, 한 번은 2군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여름 무렵에는 컨디션이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성적이 좋지 않아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는 일이 많았다. 8월부터 페르난도 세기뇰의 입단으로 호세 페르난데스가 3루에 배치되었고, 구사노는 대타와 수비 요원이 되었다. 이후 대타로서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었다.[2]2. 1. 4. 2009년 (라쿠텐)
시즌 초반 오른쪽 장딴지 근육 파열로 인해 개막 엔트리에 합류하지 못했다.[2] 4월 12일 세이부전에서 1군에 복귀, 6번·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4안타를 기록했다.[2] 나카무라 노리히로의 영입으로 주전 3루수 자리가 없어지자, 노무라 가쓰야 감독은 고육지책으로 구사노를 좌익수로 기용했다. 4월 19일에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좌익수 수비를 맡았고, 22일에는 좌익수로 선발 출전했다.[2]4월과 5월에는 5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며 구단 신기록인 21경기 연속 안타를 달성했다(이후 쓰치야 뎃페이가 기록 경신).[2] 교류전에서는 야마사키 다케시를 대신해 17경기에서 4번 타자로 활약했다. 시즌 도중 외야수 토드 린든의 영입으로 공격적인 타순 구성을 위해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2]
5월 25일, 규정 타석을 채우며 타율 .402로 타격 1위에 올랐다. 7월에는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외야수 부문 3위를 차지하며 생애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다.[2] 1차전에서는 좌익수, 2차전에서는 2루수와 3루수로 출전하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8월 4일 경기 중 3루 땅볼을 처리하다가 넘어져 허리 통증으로 1군에서 제외되었으나, 보름 만에 복귀했다.[2]
나카무라 노리히로가 2군으로 내려간 후에는 3루수 주전으로 고정되었고,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며 타율 .305, 54타점(개인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한편, 전반기 활약에 대한 견제로 인해 양대 리그 최다인 17개의 사구를 기록했다.[2]
2. 1. 5. 2010년 (라쿠텐)
앤디 필립스의 입단과 나카무라 노리히로의 복귀로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 멤버로 시즌을 시작했다.[2] 필립스의 부진으로 주전으로 복귀했지만, 랜디 루이스의 입단으로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2] 우치무라 겐스케와 마키다 아키히사 등 백업 선수들이 주전으로 도약하면서, 시즌 후반에는 내야와 외야를 가리지 않는 치열한 주전 경쟁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구사노는 매일 다른 포지션에서 뛰어야 했다.[2] 시즌 막판에는 오른손 등에 사구를 맞아 골절상을 입는 등 아쉬운 한 해를 보냈다.[2]2. 1. 6. 2011년 (라쿠텐)
이와무라 아키노리가 3루수로 고정되고, 1루수 주전 후보였던 랜디 루이스는 수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호시노 센이치 라쿠텐 감독은 수비를 중시하는 방침에 따라 구사노를 1루수로 기용했다.[4] 그러나 구사노는 시즌 내내 컨디션 난조를 겪으며 2007년 이후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했다.2. 1. 7. 2012년 (라쿠텐)
2012년 9월 1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서 1군 공식전 첫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4] 그러나 1군 공식전에는 24경기에 출전했을 뿐, 타율은 .241에 그쳤다. 시즌 종료 후 11월 4일에 전력 외 통보를 받았고,[4] 같은 달 22일에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5] 구단은 이 발표를 받아들여 11월 24일 팬 감사제에서 구사노의 은퇴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6] 11월 29일자로 NPB로부터 임의 은퇴 선수로 공시되었다.[7]3. 선수로서의 특징
구사노 다이스케는 빠른 발과 뛰어난 타격 기술을 가진 내야수였다. 1루 도달 시간은 4.08초를 기록했다.[14] 내야 수비에 대한 고집이 강했는데, 특히 3루 수비를 볼 때 타구와 자신의 몸을 정면으로 향하게 하여 공을 오른쪽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글러브 아래에 장갑을 착용하지 않고 손바닥의 감촉을 중요하게 여겼다.[15]
3. 1. 타격
구사노 다이스케일본어는 오른발을 크게 들어 올리는 독특한 타격 폼을 가졌지만, 뛰어난 반사 신경과 타격 기술로 안타를 생산하는 능력이 뛰어났다.3. 2. 수비 및 주루
빠른 발을 가지고 있으며, 1루 도달 시간은 4.08초를 기록했다.[14]내야 수비에 대한 고집이 강했다. 예를 들어 3루수로서 3루 선상의 타구를 잡을 때, 왼쪽 눈으로 공을 보면 잡기 어렵기 때문에, 공을 오른쪽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몸을 최대한 타구와 정면으로 향하게 했다. 또한 손바닥에 직접 전해지는 감촉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글러브 아래에는 장갑을 착용하지 않았다.[15]
4. 상세 정보
구사노 다이스케는 1995년 NTT 도쿄 경식 야구부에 입단하여 사회인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9년 NTT 도쿄가 NTT동일본으로 통합되면서 NTT 규슈 경식 야구부로 이적했고, 제70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이후 팀의 활동 종료 및 해체를 거쳐 혼다 구마모토로 이적했다. 2002년 제73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준우승, 2003년 제74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8강 진출을 이끌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JR 규슈의 보강 선수로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하여 각각 8강과 4강에 진출했다. 2003년부터 전일본 대표로 4차례 발탁되어 사회인 야구를 대표하는 내야수로 활약했다.
2006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하여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 해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전에서 첫 출전과 첫 안타를 기록했다.[1] 2007년 개막전에서 프로 첫 홈런,[2] 지바 롯데 마린스 전에서 프로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3번 타자로 자리 잡았다. 2009년 올스타전 팬 투표 외야수 부문 3위에 선정되어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같은 해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며 타율 .305, 54타점을 기록했다.
2010년 앤디 필립스와 랜디 루이스 영입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지만,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며 팀에 기여했다. 2011년 이와무라 아키노리 영입으로 1루수 연습을 시작했지만, 시즌 내내 부진했다. 2012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서 1군 공식전 첫 만루 홈런을 기록했지만, 시즌 종료 후 전력 외 통보를 받고 은퇴했다.[4][5]
주요 개인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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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군 타격 코치(2014년 ~ 2015년), 1군 타격 코치(2016년), 2군 타격 코치(2017년 ~)를 역임하고 있다.
4. 1. 출신 학교
노베오카가쿠엔 고등학교4. 2. 선수 경력
==== 사회인 시대 ====1995년 NTT 도쿄 경식 야구부(도쿄도)에 입단했다. 1999년 NTT 도쿄가 NTT동일본으로 통합되면서 NTT 규슈 경식 야구부(구마모토시)로 이적했고, 제70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이후 소속팀은 기업팀으로서의 활동을 종료했고, 팀 이름도 'NTT 서일본 규슈 야구 클럽'(이후 'NTT 그룹 규슈 야구 클럽'으로 개칭)으로 변경되었다. 2001년 소속팀이 해체되면서 혼다 구마모토로 이적했다.
2002년 제73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2003년에는 제74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하여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JR 규슈의 보강 선수로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하여 각각 8강과 4강에 진출했다. 2003년 이후 전일본 대표로 4차례 발탁되어 사회인 야구를 대표하는 내야수가 되었다.
==== 프로 야구 경력 ====
2006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전에서 8번 타자 겸 2루수로 첫 출전하여 첫 안타를 기록했다.[1] 이스턴 리그에서는 타율 .348, 4홈런, 6도루를 기록했다.
2007년 개막전에서 2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2] 전반기에는 타격 부진을 겪었지만, 대타로 출전하며 성과를 냈다. 호세 페르난데스의 부진으로 3루수로 선발 출전하는 기회가 늘어났다. 7월에는 이케야마 타카히로의 조언을 받아 타격 연습에 매달렸고,[3] 8월부터 타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8월 10일 지바 롯데 마린스 전에서 프로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고, 이후 3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전이 정착되었다.
2008년에는 오픈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3번 타자 겸 3루수로 개막 선발 출전했지만, 부진으로 인해 2군으로 강등되었다. 여름에 컨디션을 회복했지만, 선발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페르난도 세기놀의 입단으로 대타나 수비 요원으로 출전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09년에는 오픈전에서 오른쪽 종아리 근육 파열로 개막 1군 진입에 실패했다. 4월 12일 1군 복귀 후 6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4안타를 기록했다. 나카무라 노리히로의 영입으로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좌익수 수비를 맡게 되었고, 4월 22일에는 좌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5월 25일에는 규정 타석을 채우며 타율 .402로 수위 타자에 올랐다. 7월에는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외야수 부문 3위에 선정되어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8월 4일 경기 중 부상으로 1군에서 제외되었지만, 보름 만에 재등록되었다. 나카무라 노리의 2군 강등 후에는 3루수로 고정되어,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고 타율 .305, 54타점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앤디 필립스가 영입되고 나카무라가 부활하면서 준 주전 선수로 개막을 맞이했다. 필립스의 부진으로 주전으로 복귀했지만, 랜디 루이스의 영입으로 다시 대타 요원으로 돌아갔다. 우치무라 켄스케와 마키타 아키히사 등의 부상으로 시즌 후반에는 내야와 외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포지션에서 뛰었다.
2011년에는 이와무라 아키노리가 3루수로 고정되고, 루이스의 수비 문제를 고려하여 1루수 연습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즌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 2007년 이후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했다.
2012년 9월 1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서 1군 공식전 첫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1군 공식전에는 24경기에 출전, 타율 .241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시즌 종료 후 11월 4일 전력 외 통보를 받았고,[4] 11월 22일에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5] 11월 24일 팬 감사제에서 은퇴 기념 행사가 개최되었으며,[6] 11월 29일자로 NPB에서 임의 은퇴 선수로 공시되었다.[7]
4. 2. 1. 사회인 시대
1995년 NTT 도쿄 경식 야구부(도쿄도)에 입단했다. 1999년 NTT 도쿄가 NTT동일본으로 통합되면서 NTT 규슈 경식 야구부(구마모토시)에 이적했고, 제70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이후 소속팀은 기업팀으로서의 활동을 종료했고, 팀 이름도 'NTT 서일본 규슈 야구 클럽'(이후 'NTT 그룹 규슈 야구 클럽'으로 개칭)으로 변경되었다. 2001년 소속팀이 해체되면서 혼다 구마모토로 이적했다.2002년 규슈 지역 예선에서 당시 에이스였던 사카모토 다모쓰와 함께 3번·유격수로 팀을 이끌며 제73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3년에는 제74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하여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소속팀이 도시 대항 야구 대회 출전에 실패했지만, JR 규슈의 보강 선수로 대회에 출전하여 3루수를 맡았다. JR 규슈는 각각 8강과 4강에 진출했다. 2003년 이후 전일본 대표로 4차례 발탁되어 사회인 야구를 대표하는 내야수가 되었고, 전일본에서는 2루수로 출전했다.
4. 2. 2. 프로 야구 경력
2006년 3월 26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전에서 8번 타자 겸 2루수로 첫 출전하여 첫 안타를 기록했다.[1] 이후 신인 선수들과 유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1군에서는 4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10을 기록했다. 이스턴 리그에서는 타율 .348, 4홈런, 6도루를 기록했다.2007년 개막전에서 2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2] 전반기에는 타격 부진을 겪었지만, 대타로 출전하며 성과를 냈다. 호세 페르난데스의 부진으로 3루수로 선발 출전하는 기회가 늘어났다. 7월에는 이케야마 타카히로의 조언을 받아 타격 연습에 매달렸고,[3] 8월부터 타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8월 10일 지바 롯데 마린스 전에서 프로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했고, 이후 3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전이 정착되었다.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타율 .320을 기록했다.
2008년에는 오픈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3번 타자 겸 3루수로 개막 선발 출전했지만, 부진으로 인해 2군으로 강등되었다. 여름에 컨디션을 회복했지만, 선발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페르난도 세기놀의 입단으로 대타나 수비 요원으로 출전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09년에는 오픈전에서 오른쪽 종아리 근육 파열로 개막 1군 진입에 실패했다. 4월 12일 1군 복귀 후 6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전하여 4안타를 기록했다. 나카무라 노리히로의 영입으로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좌익수 수비를 맡게 되었고, 4월 22일에는 좌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5월 25일에는 규정 타석을 채우며 타율 .402로 수위 타자에 올랐다. 7월에는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외야수 부문 3위에 선정되어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8월 4일 경기 중 부상으로 1군에서 제외되었지만, 보름 만에 재등록되었다. 나카무라 노리의 2군 강등 후에는 3루수로 고정되어,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우고 타율 .305, 54타점을 기록했다.
2010년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앤디 필립스가 영입되고 나카무라가 부활하면서 준 주전 선수로 개막을 맞이했다. 필립스의 부진으로 주전으로 복귀했지만, 랜디 루이스의 영입으로 다시 대타 요원으로 돌아갔다. 우치무라 켄스케와 마키타 아키히사 등의 부상으로 시즌 후반에는 내야와 외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포지션에서 뛰었다.
2011년에는 이와무라 아키노리가 3루수로 고정되고, 루이스의 수비 문제를 고려하여 1루수 연습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즌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아 2007년 이후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했다.
2012년 9월 13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에서 1군 공식전 첫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1군 공식전에는 24경기에 출전, 타율 .241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시즌 종료 후 11월 4일 전력 외 통보를 받았고,[4] 11월 22일에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5] 11월 24일 팬 감사제에서 은퇴 기념 행사가 개최되었으며,[6] 11월 29일자로 NPB에서 임의 은퇴 선수로 공시되었다.[7]
4. 3. 개인 기록
구사노 다이스케의 주요 개인 기록은 다음과 같다.==== 첫 기록 ====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2006년 3월 26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차전(삿포로 돔)
- 첫 안타: 상동
- 첫 타점: 2006년 6월 16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3차전(도쿄 돔)
- 첫 홈런: 2007년 3월 24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1차전(굿윌 돔)
- 첫 도루: 2007년 7월 3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0차전(이와테현영 야구장)
==== 기타 기록 ====
2009년 올스타전에 팬 투표에서 외야수 부문 3위로 첫 출전했다.[1] 가와이 유다이에게서 첫 안타를 기록했고 1차전에서는 좌익수, 2차전에서는 2루수와 3루수를 맡았다.[1]
4. 3. 1. 첫 기록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2006년 3월 26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2차전(삿포로 돔)
- 첫 안타: 상동
- 첫 타점: 2006년 6월 16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3차전(도쿄 돔)
- 첫 홈런: 2007년 3월 24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1차전(굿윌 돔)
- 첫 도루: 2007년 7월 3일, 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0차전(이와테현영 야구장)
4. 3. 2. 기타 기록
2009년 올스타전에 팬 투표에서 외야수 부문 3위로 첫 출전했다.[1] 가와이 유다이에게서 첫 안타를 기록했고 1차전에서는 좌익수, 2차전에서는 2루수와 3루수를 맡았다.[1]4. 4. 등번호
4. 5. 대표 경력
- 제35회 IBAF 월드컵 일본 대표
- 제23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
- 제36회 IBAF 월드컵 일본 대표
참조
[1]
뉴스
羽ばたけイーグルス
河北新報
2006-01-14
[2]
방송
NHK総合 土曜スポーツタイム「逆境に強い男」
2007-12-15
[3]
방송
スカイA sports 楽天わしづかみ#4「草野大輔選手 今シーズンを振り返る」
2007-12-24
[4]
웹사이트
来季の選手契約に関して
http://www.rakutenea[...]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
2012-11-04
[5]
웹사이트
草野大輔選手の現役引退に関して
http://www.rakutenea[...]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
2012-11-22
[6]
뉴스
引退草野「やっぱり寂しいです」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2-11-24
[7]
웹사이트
2012年度 任意引退選手
http://www.npb.or.jp[...]
[8]
웹사이트
アンバサダー就任のお知らせ
http://www.rakutenea[...]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
2012-11-22
[9]
웹사이트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草野大輔氏コーチ派遣に関して
http://www.niigata-a[...]
新潟アルビレックス・ベースボール・クラブ
2017-01-27
[10]
웹사이트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草野大輔氏コーチ派遣に関して
http://www.bc-l.jp/t[...]
新潟アルビレックス・ベースボール・クラブ
2018-01-31
[11]
웹사이트
DeNA6位指名・知野直人さん(19) 夢の舞台で母に恩返し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18-11-06
[12]
웹사이트
スタッフ契約に関して
https://www.rakutene[...]
東北楽天ゴールデンイーグルス
2018-12-29
[13]
서적
プロ野球スカウティングレポート2011
廣済堂出版
[14]
서적
プロ野球スカウティングレポート2009
アスペクトムック
[15]
뉴스
日本経済新聞夕刊
2009-08-12
[16]
웹사이트
自慢…☆
https://ameblo.jp/sa[...]
2009-05-1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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