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용서
1. 개요
구용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에서 근무했으며, 해방 후 한국은행 초대 총재, 대한석탄공사 총재, 한국산업은행 초대 총재를 역임한 인물이다. 부산 출신으로, 외할아버지는 조선귀족 송병준이며, 아버지 구연수는 조선총독부 경무관을 지냈다. 경성중학교와 도쿄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은행에서 근무하며 지점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해방 후 한국은행 설립에 기여하고, 제1공화국 상공부 장관을 지냈다.
| 이름 | 구용서 |
|---|---|
| 한자 | 具鎔書 |
| 로마자 표기 | Gu Yongseo |
| 출생 | 1915년 |
| 사망 | 1984년 7월 21일 |
| 본관 | 창원 구씨 |
| 주요 활동 | 대한민국 제5대, 제6대 국회의원 |
|---|---|
| 소속 정당 | 민주당, 민정당 |
| 관련 인물 | 구성길 (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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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구씨 -
구상찬
구상찬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18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문화체육부장관 비서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중국 특사, 주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 등을 지냈으나 이후 여러 차례 총선에서 낙선했다. -
창원 구씨 -
구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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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쓰바시 대학 동문 -
오히라 마사요시
오히라 마사요시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제6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외무대신 시절 한일 및 중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총리 재임 중 환태평양 연대 구상을 제시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으나 총선 직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
히토쓰바시 대학 동문 -
백두진
백두진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정치인, 금융인으로, 조선은행 이사장, 한국은행 이사장, 재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국회의장, 유신정우회 의장 등을 지냈다. -
한국은행 총재 -
조순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인 조순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국은행 총재, 민선 1기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고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
한국은행 총재 -
박승
박승은 1936년 출생하여 서울대학교와 뉴욕 주립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한국은행 총재,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건설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2. 생애
1942년 조선인 최초로 조선은행 지점장(여수지점)으로 승진했으나,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문제에 휘말려 오사카 지점 서구 출장소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일본의 항복을 맞았다.
광복 후 1945년 일본인들이 떠난 조선은행에서 부총재로 승진했고, 대학 후배인 백두진을 조선은행으로 불러들였다. 조선은행이 한국은행으로 개편될 때 한국은행설립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개편 작업을 주도하여, 1950년 6월 한국 전쟁 직전에 설립된 한국은행 초대 총재에 취임했다. 1953년 대한석탄공사 총재를 거쳐, 1954년 조선식산은행을 모태로 삼아 설립된 한국산업은행 초대 총재를 맡았다.
제1공화국의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899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외할아버지는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귀족 작위를 받은 송병준이며, 아버지인 구연수는 조선총독부 소속 경무관과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므로, 유복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어머니는 원예육종학자 우장춘의 어머니이자 민비시해에 가담했던 인물로 알려진 우범선의 아내인 사카이 나카의 친동생 사카이 와키이다.
일본인 자녀를 위해 설립된 학교인 경성부 경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상과대학(현재의 히토츠바시 대학)으로 진학했다. 1925년 동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입행했다. 당시 조선은행 입행 동기 50명 중 유일한 조선인이었으며, 도쿄 지점에 배치되었지만, 급료, 승진, 배치 등에서 차별을 받았다.
2.2. 일제 강점기 경력
1899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외할아버지는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귀족 작위를 받은 송병준이며, 아버지인 구연수는 조선총독부 소속 경무관과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기 때문에, 유복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구용서의 어머니 사카이 와키는 원예육종학자인 우장춘의 어머니이자 민비시해에 가담했던 인물로 알려진 우범선의 아내인 사카이 나카의 친동생이다.
일본인 자녀를 위해 설립된 학교인 경성부 경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상과대학(현재의 히토츠바시 대학)으로 진학했다. 1925년 도쿄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입행했다. 동기 50명 중 유일한 조선인이었으며, 도쿄 지점에 배치되었지만 급료, 승진, 배치 등에서 차별을 받았다.
1942년에는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지점장으로 승진하여 여수 지점장을 역임했지만,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의 경계심 속에서 문제에 휘말려 오사카 지점 서구 출장소로 좌천되어 오사카에서 일본의 항복을 맞이했다.
2.3. 해방 이후 활동
1945년 일본인들이 떠난 조선은행에서 부총재로 승진했고, 대학 후배인 백두진을 불러들였다. 1950년 초대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1953년 대한석탄공사 총재를 역임했다. 1954년 초대 한국산업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1958년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4. 관련 인물
* 송병준 - 외할아버지로,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다.
* 구연수 - 아버지로, 조선총독부 소속 경무관과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 사카이 와키 - 어머니.
* 우장춘 - 이모부 우범선의 아들이다.
* 사카이 나카 - 이모이자 우범선의 아내이다. 민비시해에 가담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 백두진 - 대학교 후배로, 광복 후 구용서에 의해 초빙되었다.
5. 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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