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흥남
1. 개요
구흥남은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화순군 출생으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출신의 정치인이다. 숭실중학교와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공립농업학교 교원, 교통부 총무과장, 서울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한국통운 사장과 외자 모터풀 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자유당 소속으로 제3대와 제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국회 부흥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가뭄 해결을 위한 저수지 건설을 주도했으나, 4·19 혁명 이후와 박정희 정권 시기의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이후 택시업체를 운영하다가 사업 실패로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1966년 자살 미수 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이름 | 구흥남 |
|---|---|
| 출생일 | 1914년 5월 20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경성부 |
| 사망일 | 1966년 12월 27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의원 선수 | 2 |
|---|---|
| 의원 대수 |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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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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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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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기업인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기업인 -
문재인
3. 정치 활동
구흥남은 일제강점기 화순군 출신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서대문구를 기반으로 활동했다. 평양숭실중학교와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서울공립농업학교 교원, 교통부 총무과장, 서울대학교 예과 강사를 거쳐 부산에서 한국통운 사장을 역임했다. 외자 모터풀 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자유당 후보로 화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1958년 제4대 총선에서도 재선되었다. 국회의원 임기 중이던 1956년에는 국회 부흥위원장을 맡았으며, 화순군 능주면 일대의 가뭄 해소를 위해 한천면에 저수지 건설을 주도했다.
3.1.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4년)
구흥남은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화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30.77%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당시 득표수는 13,373표였다.
3.3. 4.19 혁명 이후
4·19 혁명 이후 제5대 총선에서는 헌정동지회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박정희의 군사 정권 발족 이후에는 민주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겨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화순군·곡성군 선거구에서 출마했으나 다시 낙선했다. 이후 정계를 떠나 서울에서 택시업체 조양운수를 운영했다.
3.4. 박정희 정권 시기
박정희의 군사 정권 발족 이후 민주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겨 1963년 제6대 총선거에서 화순군·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정계를 떠나 서울에서 택시업체 조양운수를 운영했다.
4. 정치 활동 이후
구흥남은 정계를 떠난 후 서울에서 택시업체 조양운수를 운영했다. 사업 실패로 만년에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1966년 8월에는 독극물을 이용한 자살 미수를 일으켰다. 같은 해 12월 14일, 조양운수 사장직에서 사임한 후 행방불명되었고, 12월 27일 새벽 서울특별시 성북구 우이동(현 강북구 관할)의 산중턱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시신 옆에는 유서와 부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