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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거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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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 거류지는 일본에 설치되었던 외국인 거류지를 의미한다. 요코하마, 오사카, 고베 등에 설치되었으며, 특히 고베 구 거류지는 1868년 개항 이후 외국인들의 거주 및 상업 활동을 위해 조성되었다. 고베는 영국인 기술자의 설계로 서양 도시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1899년 일본에 반환된 후 오피스 거리로 변모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근대 건축물의 보존 및 거리 풍경을 살리는 노력이 이루어져, 상업 자본과 시민 운동의 협업을 통해 "고베다운 세련된 거리"로 발전했다. 주요 건축물로는 일본 진주 회관, 다카사고 빌딩, 고베 시립 박물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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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거류지

2. 요코하마 거류지

요코하마 거류지는 간나이, 야마시타초, 야마테 지역에 있었다.

2. 1. 야마시타초

야마시타초, 야마테

2. 2. 야마테

야마테

3. 오사카 가와구치 거류지

오사카 가와구치 거류지는 아지 강과 기즈 강 하구의 자연 삼각주에 위치해 있었다. 동쪽으로는 에도보리 강, 서쪽으로는 기즈 강, 남쪽으로는 아지 강, 그리고 북쪽으로는 도사보리 강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지역은 1869년 1월 1일에 외국인에게 개방되었다.

4. 고베 거류지

고베의 구 거류지는 동쪽은 구 이쿠타강(현재의 플라워 로드) , 서쪽은 고이카와(현재의 고이카와스지), 남쪽은 해안, 북쪽은 사이코쿠 가이도에 둘러싸인, 주변과 격리된 지역이었다. 영국인 기술자 J.W. 하트가 고베 외국인 거류지 설계를 하여 정연한 서양 도시를 만들었다. 그 후, 동서의 강은 이전(교체) 또는 암거화되어 도로가 되었고, 1899년(메이지 32년)에 반환되어 오피스 거리로 변모했지만, 현재도 도로를 넘으면 거리의 분위기가 일변한다.

4. 1. 고베 거류지의 기원

1868년 1월 1일 개항까지 거류지 조성 및 분양이 완료되지 못했다. 그래서 고베에서는 3월 30일에 동쪽으로는 이쿠타강, 서쪽으로는 우지 강, 남쪽으로는 해안, 북쪽으로는 산기슭으로 둘러싸인 범위(거류지 제외)를 일본인과의 잡거를 허용하는 잡거지로 설정했다.[1]

같은 해 9월 10일에 36구획, 1869년 6월 1일에 25구획, 1870년 5월 16일에 60구획, 1873년 2월 7일에 5구획의 영대차지권 경매가 실시되어 총 126구획에 달했지만, 고베의 외국인 전부를 거류지에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1] 일본 정부는 거류지 확장을 저지하려 했기 때문에 잡거지 설정을 해제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1] 잡거지에서는 사이고쿠 가이도 부근에서 해안가로 고베 마을·후타츠차야 마을 시대부터의 마을이 펼쳐져 있었고, 여유가 있는 산기슭을 중심으로 외국인이 거주했다.[1] 그중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곳이 산기슭의 기타노초 야마모토 도리로, 기타노 이진칸 거리가 형성되었다.[1]

이와는 별도로, 당시 조약 미체결국이었던 청나라에서 고베로 건너온 화교는 거류지에 거주할 수 없어서, 거류지 서쪽 인접 지역에 일본인과 혼재된 형태로 거주했다. 초기에는 비교적 집주가 보였던 곳이 난킨마치로 불리게 되었다.[1] 1871년 일청수호조규 비준 이후, 화교도 구미인과 마찬가지로 산기슭으로 분산되어 거주하게 되자, 난킨마치는 화교에게 거주지가 아닌 상업지가 되었고, 일본인 상인의 유입도 진행되었다.[1]

4. 2. 고베 거류지의 거리 풍경 보존

1980년대까지 고베 구 거류지는 "낡고 오래된 빌딩의 오피스 거리"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1988년 구 고베 상공회의소 빌딩 보존 운동이 거리 재생의 계기가 되었다. 상공회의소 빌딩 자체는 해체되었지만, 거류지의 한 구역을 차지하는 백화점 다이마루 고베점윌리엄 메렐 보리스가 설계한 근대 건축물을 구 거류지 38번 관으로 재단장하여 점포로 활용하고, 주변의 근대 서양 건축물에 고급 부티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근대 건축물 소유주들의 인식을 바꾸어, 근대 건축물이 단순히 개별적인 건물이 아니라 "거리 풍경"으로서 "면"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였다. 2000년대에는 LVMH 등 외국계 명품 브랜드들이 직접 참여하면서, 현재는 "가장 고베다운 세련된 거리"로 활기를 띠고 있다. 이는 시민 운동과 상업 자본의 협력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1992년 국토교통성의 도시 경관 100선에 선정되었으며, 2007년 구 거류지 연락 협의회가 일본 도시 계획 학회 최고상인 이시카와상을 수상했다.[1]

4. 3. 고베 구 거류지 내 주요 건축물


  • 이토초 거리
  • 히가시초 거리 - 일본 진주 회관 (고베 펄 뮤지엄)
  • 기타마치 거리 - 다카사고 빌딩, 고베 은행 협회
  • 에도초 거리 - 산쿄 세이코 스카이 빌딩
  • 교마치 거리 (메인 스트리트) - 고베 시립 박물관, 고베 구 거류지 25번관 (오리엔탈 호텔, 바니스 뉴욕, 루이비통 고베 메종), 프라다 고베점, 일본 빌딩 (KOBE 톤보 타마 뮤지엄), 일본 은행 고베 지점, 신 크레센트 빌딩, 고베 빌딩
  • 나니와초 거리 - 고베 아사히 빌딩, LVMH 복합 빌딩
  • 하리마초 거리 - THE 45th, BLOCK30
  • 아카시초 거리 - 닛케 빌딩
  • 나카마치 거리 - 구 거류지 38번관, 다이마루 고베점, 지니어스 갤러리. 매년 12월에 개최되는 고베 루미나리에의 갈레리아 거리이다.
  • 마에초 거리 - 구 거류지 15번관
  • 해안도리 (국도 2호) - 차터드 빌딩, 신코 빌딩, 상선 미쓰이 빌딩, 해안 빌딩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초기까지 건축된 주요 서양관 및 근대 건축은 일몰부터 22시경까지 라이트 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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