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메렐 보리스
1. 개요
윌리엄 메렐 보리스는 1880년 미국에서 태어나 일본과 한국에서 건축가, 선교사, 사업가로 활동했다. 미국에서 YMCA 활동을 시작하여 1905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미하치만에 정착, YMCA 회관을 설계하며 건축가로 데뷔했다. 그는 일본 각지에서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1935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본관을 설계하여 일제강점기 한국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으로 귀화하여 일본의 전후 복구에도 기여했으며, 1958년 오미하치만시 명예 시민이 되었다. 보리스는 교회, 학교, 주택 등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그의 건축물은 현재까지 보존 및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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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윌리엄 메렐 보리스 |
|---|---|
| 일본어 이름 | 一柳 米来留 (Hitotsuyanagi Mereru) |
| 다른 이름 | 메렐 히토쓰야나기 |
| 출생 | 1880년 10월 28일 |
| 출생지 | 미국캔자스주레븐워스 |
| 사망 | 1964년 5월 7일 |
| 사망 장소 | 일본시가현오미하치만시 자온지초 |
| 국적 | 미국 (과거), 일본 (1941년부터) |
| 배우자 | 히토쓰야나기 마키코 (1919년 결혼) |
| 직업 | 교육자, 건축가, 기업가, 선교사 |
| 모교 | 콜로라도 칼리지 |
|---|
| 활동 기간 | 알 수 없음 |
|---|---|
| 고용주 | 보리스 & 컴퍼니 (창업자), 오미 판매 회사 (창업자) |
| 소속 단체 | 오미 형제단 (창업자) |
| 알려진 업적 | 일본 오미 미션 설립 |
|---|---|
| 주요 저서 | "College Memories and Other Rimes, Much of Which Has Appeared Before in the Colorado College Tiger" (1903) "A mustard seed in Japan" (1911) "Poems of the East and West" (1960) |
| 스타일 | 알 수 없음 |
|---|
| 수상 내역 | 황수포장 (1961년) |
|---|
| 기념 장소 | 보리스 기념관 |
|---|---|
|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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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번워스 (캔자스주) 출신 -
와일드 빌 히콕
제임스 버틀러 "와일드 빌" 히콕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명사수 총잡이이자 법 집행관, 정찰병으로, 여러 총격전과 살인 사건으로 악명을 떨쳤으며, 포커 게임 중 살해당해 "죽은 자의 손"과 함께 서부의 상징적인 인물로 남았다. -
레번워스 (캔자스주) 출신 -
멀리사 에더리지
멜리사 에더리지는 1988년 데뷔 후 "Yes I Am" 등의 앨범으로 성공을 거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겸 기타리스트로, 그래미상 2회 수상, 아카데미상 최우수 오리지널 곡 수상, 레즈비언 커밍아웃, 동성애자 인권 운동, 유방암 극복, 자서전 출판, 브로드웨이 뮤지컬 출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
YMCA -
기독교청년회
기독교청년회는 1844년 런던에서 조지 윌리엄스와 동료들이 설립한 기독교 기반 청소년 단체로, 개인의 전인적 발달을 추구하며 교육, 사회 활동, 스포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 청소년 개발과 사회적 책임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
YMCA -
에두아르드 투르나이젠
에두아르드 투르나이젠은 스위스의 개혁파 목사이자 신학자로서, 카를 바르트와 함께 변증법적 신학을 보급하고 신약 성서 해설 및 도스토옙스키 작품 분석을 통해 신학 외에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바젤 대학교에서 실천신학 부교수를 역임하며 목회학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겼다. -
황수포장 수훈자 -
시부사와 에이이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도쿠가와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일본 근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실업가이자 사상가로, 500개가 넘는 기업 설립 및 경영에 참여하며 "도덕경제합일설"을 주창했고 사회 및 교육 사업에도 헌신했다. -
황수포장 수훈자 -
나베시마 나오히로 (1846년)
나베시마 나오히로는 사가 번의 마지막 번주이자 메이지 시대 정치인으로, 보신 전쟁에서 메이지 정부군을 지지하고, 폐번치현 후에는 외교관, 정치인, 교육자로서 일본 근대화에 기여했으며 황실과의 혼인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2. 생애
윌리엄 메렐 보리스는 1880년 캔자스주 리번워스에서 태어났다. 1882년 무렵부터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훗날 유아 세례를 받았다. 1887년 또는 1888년에는 가족과 함께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로 이사했고, 1896년에는 콜로라도주 덴버로 이사하여 이스트 덴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00년 이스트 덴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콜로라도 칼리지에 입학하여 YMCA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건축가를 지망하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입학이 결정되었으나, 가정 형편을 고려하여 콜로라도 칼리지에 진학했다. 3학년 때 공과대학으로 전학할 예정이었으나, 1902년 토론토 세계 학생 선교 의용군 대회에서의 강연에 감동하여 외국 전도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전학하지 않고 교양 학과정을 계속하며 건축 설계를 독학했다.
1904년 콜로라도 칼리지를 졸업하고(Ph. B. 학위 취득) 콜로라도 스프링스 YMCA의 주사보가 되었다. 1905년, 일본에 영어 교사로 와서 기독교 선교 사업에 종사하려 했다.
1905년, 윌리엄 메렐 보리스는 YMCA 파견 영어 교사로 일본 시가현 오미하치만에 부임했다. 1907년, 오미하치만 YMCA 회관을 설계하면서 건축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건물은 1935년 다른 주소로 이전 및 갱신되었으며, 2009년 9월 일본의 등록유형문화재(등록유형문화재(건조물))로 지정되었다. 1908년에는 건축 설계 사무소 '보리스 합명회사'를 설립하고, 교토에서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에 힘입어 오미하치만으로 이전했다. 보리스는 일본 각지에서 가옥, 교회, 학교, 병원, YMCA 시설 등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그의 디자인은 약 1,600개의 건물에 적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 미국으로 일시 귀국하여 멘소래담사의 창업자 하이드를 만나 10개월 체류 후, 일본에서의 멘소래담 판매 대리점을 시작했다. 1919년에는 자작 영애 이치야나기 마키코와 결혼했다. 1920년, 보리스 합명회사를 해산하고 오미 세일즈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건축 자재, 가정약(멘소래담), 건반 악기 등의 수입 판매를 시작했다.
보리스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해먼드 오르간을 일본에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1년, 진주만 공격 직전, 일본으로 귀화하여 '히토츠야나기 메레루'로 개명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서 선교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고노에 후미마로 전 총리의 요청으로 천황을 대신하여 SCAP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일본의 전후 복구 과정에 기여했다.
1958년, 오미하치만시 명예 시민 제1호로 선정되었으며, 1964년, 오미하치만 자택에서 사망했다. 사후 일본 정부로부터 서보장 3등을 수여받았다.
1935년, 이화여자대학교 본관을 설계했다. 보리스의 건축은 일제강점기 한국 건축에 서양식 건축 양식을 도입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2.1. 미국에서의 성장
윌리엄 메렐 보리스는 1880년 캔자스주 리번워스에서 태어났다. 1882년 무렵부터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훗날 유아 세례를 받았다. 1887년 또는 1888년에는 가족과 함께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로 이사했고, 1896년에는 콜로라도주 덴버로 이사하여 이스트 덴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00년 이스트 덴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콜로라도 칼리지에 입학하여 YMCA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건축가를 지망하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입학이 결정되었으나, 가정 형편을 고려하여 콜로라도 칼리지에 진학했다. 3학년 때 공과대학으로 전학할 예정이었으나, 1902년 토론토 세계 학생 선교 의용군 대회에서의 강연에 감동하여 외국 전도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전학하지 않고 교양 학과정을 계속하며 건축 설계를 독학했다.
1904년 콜로라도 칼리지를 졸업하고(Ph. B. 학위 취득) 콜로라도 스프링스 YMCA의 주사보가 되었다. 1905년, 일본에 영어 교사로 와서 기독교 선교 사업에 종사하려 했다.
2.2. 일본에서의 활동
1905년, 윌리엄 메렐 보리스는 YMCA 파견 영어 교사로 일본 시가현 오미하치만에 부임했다. 1907년, 오미하치만 YMCA 회관을 설계하면서 건축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 건물은 1935년 다른 주소로 이전 및 갱신되었으며, 2009년 9월 일본의 등록유형문화재(등록유형문화재(건조물))로 지정되었다. 1908년에는 건축 설계 사무소 '보리스 합명회사'를 설립하고, 교토에서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에 힘입어 오미하치만으로 이전했다. 보리스는 일본 각지에서 가옥, 교회, 학교, 병원, YMCA 시설 등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그의 디자인은 약 1,600개의 건물에 적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 미국으로 일시 귀국하여 멘소래담사의 창업자 하이드를 만나 10개월 체류 후, 일본에서의 멘소래담 판매 대리점을 시작했다. 1919년에는 자작 영애 이치야나기 마키코와 결혼했다. 1920년, 보리스 합명회사를 해산하고 오미 세일즈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건축 자재, 가정약(멘소래담), 건반 악기 등의 수입 판매를 시작했다.
보리스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해먼드 오르간을 일본에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1년, 진주만 공격 직전, 일본으로 귀화하여 '히토츠야나기 메레루'로 개명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일본 사회의 일원으로서 선교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고노에 후미마로 전 총리의 요청으로 천황을 대신하여 SCAP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일본의 전후 복구 과정에 기여했다.
1958년, 오미하치만시 명예 시민 제1호로 선정되었으며, 1964년, 오미하치만 자택에서 사망했다. 사후 일본 정부로부터 서보장 3등을 수여받았다.
3. 주요 건축 작품
보리스는 일본과 한국에서 교회, 학교, 주택, 병원, 상업 시설 등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의 건축물은 단순한 기능성을 넘어,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3.1. 한국
3.2. 일본
3.2.1. 교회
일본기독교단 오사카 교회는 1922년에 건축되었다. 일본기독교단 가타다 교회는 1930년에 완공되었으며, 등록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일본기독교단 오미하치만 교회는 1959년에 건립되었다.
3.2.2. 학교
윌리엄 메렐 보리스가 학교 시설로 설계한 주요 건물은 다음과 같다.
| 건조물명 | 년 | 소재지 | 상태 | 비고 |
|---|---|---|---|---|
| 간세이가쿠인 대학 시계탑(구 도서관) | 1929년 (쇼와 4년) | {{#if:{{{2|} | }}|}}}현 니시노미야시||등록 유형 문화재||1955년(쇼와 30년) 증축, 건물 후방의 서고 부분은 현존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