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항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고베항은 812년 대륜다박 축조를 시작으로, 일본 효고현에 위치한 항구이다. 1868년 개항 이후 한신 공업지대의 수출항으로 발전했으며, 1970년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를 처리하기도 했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항만 시설이 파괴되어 위축되었으나, 현재 일본에서 네 번째로 붐비는 컨테이너 항구이다. 현재는 부산, 상하이, 톈진 등과 국제 항로를, 다카마쓰, 미야자키 등과 국내 항로를 운영하며, 로테르담, 시애틀, 톈진 등과 자매/우호항 관계를 맺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긴키 지방의 항구 - 마이즈루항
마이즈루항은 교토부 마이즈루시에 위치하며 군항과 상업항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에도 시대부터 상업항으로, 이후 군항 및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했으나 현재는 국내 항로와 해상자위대 기지, 그리고 관광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 긴키 지방의 항구 - 오사카항
오사카항은 1868년 개항한 일본 오사카부의 주요 항구로, 경제 발전에 기여하며 확장과 컨테이너 항만 기능 강화를 거쳐 덴포잔 하버빌리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국제 전략항만으로 발전했다. - 세토 내해의 항구 - 오사카항
오사카항은 1868년 개항한 일본 오사카부의 주요 항구로, 경제 발전에 기여하며 확장과 컨테이너 항만 기능 강화를 거쳐 덴포잔 하버빌리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국제 전략항만으로 발전했다. - 세토 내해의 항구 - 구레항
구레항은 히로시마현 구레시에 위치한 항구로, 과거 해군 공창으로 발달했으나 태평양 전쟁 말기 폭격으로 기능이 정지된 후 무역항으로 재개항하여 현재는 중요 항만으로 지정되어 구레시가 관리하며 다양한 항로를 운영한다. - 고베항 - 고베 포트 타워
고베 포트 타워는 일본 북을 모티브로 한 독특한 외관의 8층 철탑으로, 고베항의 상징이자 주요 관광 명소이며, 전망대, 레스토랑 등의 시설을 갖추고 오사카만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 고베항 - 고베 외국인 거류지
고베 외국인 거류지는 1868년 개항된 외국인 거주지로, 합리적인 도시계획에 따라 정비되어 외국인 자치로 운영되었으나 불평등 조약 개정으로 일본에 반환, 고베 대공습 피해 이후 문화 관광 자산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고베항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항구 이름 | 고베항 |
위치 | 일본 효고현고베시 |
개항 | 1868년 1월 1일 (게이오 3년 12월 7일) |
관리자 | 고베시 |
종류 | 국제 전략 항만 (항만법) 구 슈퍼 중추 항만 (정령 지정) |
수역 면적 | 9,171 ha |
육지 면적 | 2,109ha |
계류 시설 수 | 233 |
공식 웹사이트 | 고베항 개요 |
통계 (2019년) | |
외항 발착 척수 | 6,634척 |
내항 발착 척수 | 24,671척 |
외항 화물 취급량 | 5,151만 톤 |
내항 화물 취급량 | 4,249만 톤 |
외항 컨테이너 수 | 218만 TEU |
내항 컨테이너 수 | 68만 TEU |
총 수출량 | 2,292만 톤 |
총 수입량 | 2,858만 톤 |
주요 수출입 품목 | |
수출품 | 산업 기계, 화학 공업 제품, 자동차, 자동차 부품 |
수입품 | 석탄, 의류/신변 용품/신발, 화학 공업 제품, 화학 약품 |
2. 역사
10세기에 타이라노 키요모리는 당시의 오와다노토마리(大輪田泊)를 개조하여 항구 근처에 있던 단명한 수도인 후쿠하라로 천도했다. 중세 시대에 이 항구는 효고노쓰(兵庫津)로 알려져 있었다.
12세기에 타이라노 기요모리는 당시 오와다노토마리(大輪田泊)를 개조하고, 항구 근처에 잠시 수도였던 후쿠하라로 천도했다. 중세 시대 내내 이 항구는 효고노쓰(兵庫津)로 알려져 있었다.
1858년 미일 화친통상조약에 따라 효고항이 외국에 개방되었다. 1865년에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의 군함 9척이 개항을 요구하며 효고항을 침범하는 효고항 개항 요구 사건이 일어났다. 1868년에는 효고항 동쪽에 고베 신항이 건설되어 개항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연합군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이후 주일미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마지막 미군 주둔은 1973년에 끝났다.)
1970년대에 이 항구는 한신 공업지대의 수출항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를 취급했다. 1973년부터 1978년까지는 미국 뉴욕항,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컨테이너 항구였다.[1]
1995년 1월 17일 고베 대지진으로 항구 시설과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고 중단되면서 항구 도시의 위상이 크게 약화되었다. 당시 일본 GDP의 2.5%인 약 1025억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22] 대부분의 손실은 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는데, 이는 고베 지역의 재산 중 지진 보험에 가입된 비율이 3%에 불과했던 반면, 도쿄는 16%였기 때문이다.
고베는 지진 이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구 중 하나였지만, 수리와 재건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주요 해운 항구로서의 예전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1994년 6위였던 국제선 순위는 2000년 이후 20위 이하로 떨어졌고, 허브 기능은 대한민국 부산항으로 넘어갔다.[23]
대형 컨테이너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충분한 수심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고베항 쇠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지진 발생 후 복구만 하겠다는 정부의 방침(고토타 독트린)도 영향을 미쳤다. 원래는 훼손된 항구를 국제 허브 항구의 조건에 맞는 사양으로 개선할 계획이었으나, 재건 예산 부족으로 과감한 건설은 실현되지 못했다. 항만 시설은 순조롭게 복구되고 있지만, 재해의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 항구 한쪽 구석에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를 설치하여 재해 당시의 항구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2017년 현재 일본에서 네 번째로 붐비는 컨테이너 항구로 남아 있다.[24]
2. 1. 고대
10세기에 타이라노 키요모리는 당시의 오와다노토마리(大輪田泊)를 개조하여 항구 근처에 있던 단명한 수도인 후쿠하라로 천도했다. 중세 시대에 이 항구는 효고노쓰(兵庫津)로 알려져 있었다.2. 2. 중세
12세기에 타이라노 기요모리는 당시 오와다노토마리(大輪田泊)를 개조하고, 항구 근처에 잠시 수도였던 후쿠하라(福原)로 천도했다. 중세 시대 내내 이 항구는 효고노쓰(兵庫津)로 알려져 있었다.2. 3. 근세
10세기에 타이라노 키요모리는 당시의 오와다노토마리(大輪田泊)를 개조하여 항구 근처의 단명한 수도인 후쿠하라로 천도했다. 중세 시대에 이 항구는 효고노쓰(兵庫津)로 알려져 있었다.에도 시대에는 쇄국 정책 아래 효고쓰(兵庫津)는 서쪽 순환 항로의 북전선과 내해선의 중요 항구이자, 조선통신사의 기항지로 번영하여 인구 1만 명에 달했다. 또한 나다 고향(灘五郷)으로서 술 제조가 활발했던 곳이기도 하다.
1863년(분큐 3년), 에도 막부의 군함봉행이었던 가쓰 가이슈(勝海舟)는 해방을 위한 막신(幕臣)의 교육 시설로서 “해군 조련소” 설립을, 무역상 아미야 기헤이(網屋吉兵衛)가 사재를 털어 완공한 “후네타데바”(船たで場)를 이용하는 것을 당시 장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에게 건의했다. 이듬해 1864년(겐지 원년), 메이지 유신에 큰 공을 세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학장을 역임한 여러 번의 지사(志士)를 위한 “해군 학당”과 함께 개설되었지만, 가쓰의 경질과 동시에 “고베 해군 조련소”와 “고베 해군 학당”은 폐쇄되었다. 같은 해에 건설된 해방의 요새인 와다미사키 포대(和田岬砲台)가 현재도 고베시 효고구에 남아 있다. 개항 100주년인 1968년(쇼와 43년)에는 “해군 조련소”가 있던 자리에 “사적 구 해군 조련소 터” 비석이 세워졌다.
1858년(안세이 5년), 일미 수호 통상 조약(및 일미 수호 통상 조약을 포함한 안세이 5개국 조약)에 의해 1863년 1월 1일(분큐 2년 12월 7일)에 개항이 결정되었지만 조정의 반대로 런던 각서에 따라 5년 후인 1868년 1월 1일(게이오 3년 12월 7일), “효고쓰”(兵庫津)보다 동쪽에 있는 “해군 조련소”가 있던 부근을 사실상 “효고 항”(兵庫港)[7]으로 하여 개항이 실현되었다.
2. 4. 근대
1858년 미일 화친통상조약에 따라 효고항이 외국에 개방되었다. 1865년에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의 군함 9척이 개항을 요구하며 효고항을 침범하는 효고항 개항 요구 사건이 일어났다. 1868년에는 효고항 동쪽에 고베 신항이 건설되어 개항했다.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연합군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이후 주일미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마지막 미군 주둔은 1973년에 끝났다.)
1970년대에 이 항구는 한신 공업지대의 수출항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를 취급했다. 1973년부터 1978년까지는 미국 뉴욕항,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컨테이너 항구였다.[1]
1995년 1월 17일 고베 대지진으로 항구 시설과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고 중단되면서 항구 도시의 위상이 크게 약화되었다. 당시 일본 GDP의 2.5%인 약 1025억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22] 대부분의 손실은 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는데, 이는 고베 지역의 재산 중 지진 보험에 가입된 비율이 3%에 불과했던 반면, 도쿄는 16%였기 때문이다.
고베는 지진 이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구 중 하나였지만, 수리와 재건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주요 해운 항구로서의 예전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1994년 6위였던 국제선 순위는 2000년 이후 20위 이하로 떨어졌고, 허브 기능은 대한민국 부산항으로 넘어갔다.[23]
대형 컨테이너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충분한 수심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고베항 쇠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지진 발생 후 복구만 하겠다는 정부의 방침(고토타 독트린)도 영향을 미쳤다. 원래는 훼손된 항구를 국제 허브 항구의 조건에 맞는 사양으로 개선할 계획이었으나, 재건 예산 부족으로 과감한 건설은 실현되지 못했다. 항만 시설은 순조롭게 복구되고 있지만, 재해의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 항구 한쪽 구석에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를 설치하여 재해 당시의 항구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2017년 현재 일본에서 네 번째로 붐비는 컨테이너 항구로 남아 있다.[24]
개항 이틀 후인 1868년 1월 3일(게이오 3년 음력 12월 9일) 왕정복고의 대호령이 발표되었고, 도바·후시미 전투 이후인 1868년 2월 2일(게이오 4년 음력 1월 9일)에는 시바타 다케나카 등이 이끄는 효고 봉행 일행이 바닷길로 에도로 도망쳤다. '효고'라고 고집해 온 에도 막부가 떠나면서 兵庫運上所는 사실상 폐쇄 상태가 되었지만, 1868년 2월 12일(게이오 4년 음력 1월 19일) 신정부에 의해 임시 재개되었고, 1868년 2월 27일(게이오 4년 음력 2월 5일) 고베 운상소(神戸運上所)로 개칭되었다.
효고 봉행의 도주 이틀 후인 1868년 2월 4일(게이오 4년 음력 1월 11일) 고베 사건이 발생했다. 고베항은 일시적으로 점령 상태가 되었고, 신정부가 대응에 나섰지만, 신정부는 고베와 효고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었으며[8], 대응을 위한 관청을 兵庫津의 島上町이나 切戸町에 설치한 것이 후에 兵庫鎮台→兵庫裁判所→효고현의 현명으로 이어진다. 고베 사건에 대응한 신정부는 고베촌 남동부의 외국인 거류지 조성 공사가 상당한 시일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1868년 3월 30일(게이오 4년 음력 3월 7일), 고베, 二ツ茶屋, 走水, 花隈, 宇治野, 中宮, 北野, 生田宮 등 8개 마을에 걸쳐 우지가와 - 이쿠타가와(구 하천. 변경은 3년 후) 사이의 산록에서 해안까지(조성 중인 거류지를 제외)라는 광범위한 지역을 외국인 혼거지로 지정했다. 지연을 거듭하던 거류지 조성 공사는 1868년 8월 14일(게이오 4년 음력 6월 26일)에야 겨우 완공되었고, 1868년 9월 10일(게이오 4년 음력 7월 24일) 영대차지권의 제1회 경매가 실시되었다.
고베항보다 8개월 늦게 개항한 오사카항은 당시 하항이었기 때문에 사용하기 불편하여, 오사카항은 1871년(메이지 4년)을 마지막으로 외국 선박의 입항이 없어졌다. 오사카에 거점을 두고 있던 많은 외국인 무역상들은 천혜의 좋은 항구라는 점과 거류지 외에서도 외국인의 거주가 가능한(실제로는 산록부에 집중) 고베로 이전했다. 같은 해부터 중정부, 1874년(메이지 7년)부터 효고 신시가지의 정비에 의해 고베-효고 간이 시가화되었고, 효고항에서도 1872년(메이지 5년) 와다미사키에 와다미사키 등대가 설치되었고, 1875년(메이지 8년) 신카와 운하가 개척되었지만, 효고항은 불개항 상태였다. 1892년(메이지 25년)의 칙령[9](고베항의 항구역 확장)에 의해, 같은 해 10월 1일부터 고베항의 일부가 된 효고항에도 외국 선박이 입항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국제 항구 도시가 되면서 인구가 급증한 고베에서는 1890년(메이지 23년) 콜레라가 대유행하여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를 바탕으로 의회의 격렬한 논쟁과 청일전쟁으로 인한 중단을 거치면서도, 1900년(메이지 33년) 국내에서 7번째로 근대 상하수도가 정비되었다.[10] 후누이 고혼마쓰 둑에서 공급되는 맑고 경도가 낮은 물은 "적도를 넘어도 상하지 않는 물"이라 하여 세계 각국의 선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11]
정부의 부국강병책에 의한 근대화로 공업이 무역과 함께 발전하여, 점차 오사카와 함께 한신 공업 지대를 형성해 나갔다. 청일전쟁(메이지 27-28년) 이후에는 홍콩・상하이를 능가하는 동양 최대의 항구가 되어 "스즈키 상점" 등을 대표로 하는 해운업이 번영하여, 런던・뉴욕・함부르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4대 해운 시장으로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33년, 제1회 미나토 마쓰리가 개최되었다. 중돌제 부근을 발사 장소로 하여 불꽃놀이 대회가 열렸다. 전쟁 전 불꽃놀이 대회는 1935년 제3회 미나토 마쓰리에서 막을 내렸지만, 1948년 제16회 미나토 마쓰리에서 재개되어 입항 수 증가를 이유로 1960년까지 계속되었다. 1971년에는 제1회 미나토 고베 해상 불꽃놀이 대회가 개최되었다.[12]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이탈리아 극동 함대와 독일 해군 등 추축국의 위장 순양함과 U보트 등의 활동 거점으로 요코하마항과 함께 기능했다.
2. 5. 전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후, 고베항은 연합군 최고 사령관 총사령부(GHQ)에 접수되었다. 항구 내에서는 미군이 투하한 기뢰 제거 작업이 진행되었고, 1947년 6월 11일 쇼와 천황이 고베항을 방문(쇼와 천황의 전후 순행)했을 때는 해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어 있었다.[13] 한국 전쟁에서는 미국 제1해병사단의 주력이 1950년 9월 11일에 고베항에서 승선하여 4일 후 인천 상륙 작전에 참가했다.[14]1951년 점령은 해제되었지만,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영향으로 철수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졌고, 마지막까지 GHQ에 접수되었던 신항 제6돌제가 반환된 것은 1974년이었다. 반환 다음 해, 고베 시의회는 만장일치로 “핵무기 탑재 함정의 고베항 입항 거부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여, 기항하는 외국 군함에 비핵 3원칙에 기반한 “비핵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아시아 최대의 마더포트로서의 지위는 전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본의 고도성장기 발전을 뒷받침했다. 1967년 일본 최초의 컨테이너 터미널을 갖춘 마야 부두가 준공되었고, 9월에 컨테이너선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접안했다.[15] 외채 발행 등 재원을 마련하면서 시대를 앞서 항만 정비를 실시한 결과, 같은 해에는 전국 수출액의 27%를 차지하는 최고 지위를 확립했다. 미국의 뉴욕항,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과 함께 세계적인 국제 무역항으로 번영[15]했고, 1973년부터 1978년에는 컨테이너 취급 개수에서 고베항이 세계 1위였다.[16]
그러나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홍콩, 가오슝, 싱가포르, 부산에 컨테이너 취급 개수에서 밀리고, 1976년·1977년에는 48%에 달했던 고베의 컨테이너 화물 중 트랜십 비율이 1982년부터 20%대로 저하되는 등, 점차 침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17]
2. 6. 한신·아와지 대지진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항구 시설과 서비스가 크게 파괴되고 중단되어 약 10조엔 (102500000000USD)의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당시 일본 GDP의 2.5%에 해당한다.[22] 고베 지역의 부동산 중 지진 보험에 가입된 비율은 3%에 불과했던 반면, 도쿄는 16%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손실은 보험으로 처리되지 못했다.[22]지진 이전 고베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구 중 하나였지만, 수리와 재건에도 불구하고 일본 주요 항구로서의 이전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1994년 6위였던 국제 순위는 2000년 이후 20위 이하로 떨어졌고,[23] 부산항에 허브 기능을 넘겨주게 되었다. 현재는 일본에서 네 번째로 바쁜 컨테이너 항구이다.[24]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충분한 수심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고베항 쇠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또한, 지진 후 피해를 입은 항구를 국제 허브 항구의 조건에 맞게 개량하는 획기적인 공사가 계획되었으나, 복구 이상의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국가 방침(고토다 독트린)과 부흥 예산의 문제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다.[18]
1995년 1월 17일 한신·아와지 대지진(효고현 남부 지진) 발생 후, 약 2개월 뒤인 3월 20일에는 마야 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이 재개되었다. 2년 후인 1997년 3월 31일에는 항구가 완전 복구되었고, 5월 19일에는 고베항 부흥 선언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각 항구에서 집하하던 환적화물은 지진으로 인해 아시아 각 항구로의 이동이 더욱 가속화되었다.[23] 고베항의 전체 컨테이너 취급량 중 환적화물의 비율은 지진 직전인 1994년 31.6%였지만, 2007년에는 4%로 감소했다.[19] 연안 피더 화물 및 지역 화물은 지진 전 수준으로 회복되었지만, 환적화물량 감소로 인해 2007년 총 화물량은 1994년의 75% 수준에 머물렀다.
항만 시설은 순조롭게 복구되었지만, 지진의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 항구 한쪽에는 지진 당시의 상태를 보존한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가 설치되어 있다.
2. 7. 현재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항구 도시의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 많은 시설과 서비스가 파괴되고 중단되어 약 10조 엔(1.025조달러)의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당시 일본 GDP의 2.5%에 해당하는 규모였다.[22] 고베 지역의 부동산 중 지진 보험에 가입된 것은 3%에 불과했던 반면, 도쿄는 16%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손실은 보험으로 커버되지 않았다.[22] 고베는 지진 이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항구 중 하나였지만, 수리와 재건에도 불구하고 일본 주요 항구로서의 이전 지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1994년 6위였던 국제선 순위는 2000년 이후 20위 이하로 떨어졌고, 허브 기능은 대한민국 부산항으로 넘어갔다.[23] 2017년 현재는 일본에서 네 번째로 바쁜 컨테이너 항구이다.[24]대형 컨테이너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충분한 수심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고베항 쇠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지진 발생 후 복구만 하겠다는 정부의 방침(고토타 독트린) 때문이기도 했다. 원래는 훼손된 항구를 국제 허브 항구의 조건에 맞는 사양으로 개선하기 위해 계획되었으나 재건 예산의 형편으로 인해 과감한 건설을 실현할 수 없었다. 항만 시설은 고베항이 순조롭게 복구되고 있지만, 재해의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 항구 한쪽 구석에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를 설치하여 재해 당시의 항구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고베항은 오사카항과 연계하여 컨테이너 물류 측면에서 국제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는 슈퍼 중추 항만으로 지정되어, 포트 아일랜드 2기 컨테이너 터미널 일부(PC14-18 부두)를 대상으로 행정 지원책이 투입되고 있다.
외항 여객선은 주로 고베 포트 터미널에 접안시켰다. 2006년(헤이세이 18년) 1월 11일부터 중추제 여객 터미널에 세관·입국관리국·검역의 출입국 기능을 설치하여 접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07년과 2009년에는 고베 비엔날레라는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 문화의 국제적인 전시회가 고베항을 포함한 고베 중심지 등에서 개최되었다. 지진으로부터 약 10년이 지나 눈부시게 재건을 이룬 고베가 피해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더욱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예술 문화 도시로서 활성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09년부터 새로운 시도로서 “고베 스윙 오브 라이츠”가 8월 3일부터 23일까지 고베시 주오구, 하버랜드・모자이크 주변에서 개최되었다. 이것은 재즈 리듬에 맞춰 다채로운 서치라이트와 레이저가 고베항을 비추는 빛과 소리의 이벤트로, 홍콩에서 개최되고 있는 빛과 음악의 축제 “심포니 오브 라이츠”를 참고한 것으로, 주로 신종 인플루엔자로부터 회복한 고베의 모습을 전국에 어필하고, 악평 피해로 감소한 관광객 수 회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고베항 일대는 2010년에 미나토 오아시스로 등록되어, 고베 포트 터미널, 하토바초 TEN×TEN의 2시설을 기본 시설로 하는 '''미나토 오아시스 KOBE'''로서 관광・교류 지역이기도 하다.
같은 해, 일본 정부가 고베・오사카 양항을 “'''한신항'''”으로서 국제 컨테이너 전략 항만으로 선정하는 등[20], 물류를 다시 고베항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보이고[17], 지방 항의 수출입 화물을 고베・오사카항에 집중시키는 정책 등에 의해 고베항의 컨테이너 취급 개수는 2016년에 한신 대지진 이전 수준에 가까워지고, 크루즈선 유치도 추진되고 있다[21].
3. 시설 현황
고베항은 오사카만에 접해 있으며, 셋쓰국 쪽 6개 행정구에 걸쳐 있는 항만 구역 및 임항 지구를 포함한다. 1892년에 효고항이 고베항의 항만 구역에 포함되기 전까지, 고베항은 효고라는 이름으로 개항했었기 때문에 혼동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고베항 개항 후 24년 9개월 동안 효고항은 개항되지 않은 상태였다.
고베항은 컨테이너 선석 34개, 3.89km2 면적, 최대 흘수 18m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1967년 마야 부두는 도쿄항 시나가와 부두와 함께 컨테이너화에 대응하여, 1970년대에는 해상 컨테이너 취급 개수가 세계 제일이었다.
3. 1. 면적
고베항의 면적은 3.89km2이다.3. 2. 부두 및 안벽

- 컨테이너 선석: 34개
- 면적: 3.89km2
- 최대 흘수: 18m
- 효고 부두 (효고 제1~제3 돌출부 사이 매립. 1997년 효고 부두로 개칭)
- 고하마 안벽
- 중돌출부
- 신항
- * 신항 제1~제4 돌출부
- * 신항 동부두 (신항 제5~제8 돌출부 사이 매립. 1997년 신항 동부두로 개칭)
- 마야 부두 (초기에는 마야 부두 제1~제4 돌출부도 갖추고 있었으나, 후에 돌출부 사이 매립)
- 포트 아일랜드
- * 포트 아일랜드 서안벽 (PI-U・PI-V)
- * 포트 아일랜드 북부두 (PL1〜PL3)
- * 포트 아일랜드 중부두 (PL4〜PL15)
- * 포트 아일랜드 남부두
- * 특정 국제 컨테이너 부두 (PC1〜PC18)
- 롯코 아일랜드 (RF1〜RF3, RC1〜RC7)
- 고베 공항섬
- * 고베 공항 해상 액세스 터미널
3. 3. 여객 터미널
- 고하마 여객터미널
- 고베 크루저 - 콘체르토 (2138ton, 고베항~아카시 해협 주유)
- 고베 베이크루즈 - 로열 프린스 (170ton, 고베항 주유)
- 중앙부두 여객터미널
- 루미너스 관광 - 루미너스 고베 2호(ルミナス神戸2) (4778ton, 고베항~명석해협 주유)
- 중앙부두 중앙터미널(中突堤中央ターミナル) (가모메리아)
- 고베 베이 크루즈(神戸ベイクルーズ) - 로열 프린세스 (414ton, 고베항 주유), 로열 프린스(ロイヤルプリンス) (170ton, 고베항 주유)
- 하야코마 운수(早駒運輸) - 시그레이스 (190ton, 고베항~명석해협 주유), 로망 3 (60ton, 고베항 주유), 판타지 (고베 공항섬 주유·포트 아일랜드)
- 고베 산노미야 페리 터미널 (신항 제3부두)
- 잔보페리(ジャンボフェリー) - 리츠린 2(りつりん2) (3664ton), 아오이 (5200ton)
- '''고베항''' - 쇼도시마(小豆島)사카테항(坂手港) (일부 편) - 다카마쓰 히가시항
- 미야자키 카페리(宮崎カーフェリー) - 페리 타카치호 (14200ton), 페리 록코(フェリーろっこう) (14200ton)
- '''고베항''' - 미야자키항 페리 터미널
- 고베 포트 터미널(神戸ポートターミナル) (신항 제4부두)
- 일중국제페리 - 신간진(新鑑真) (14543ton)・소주호(蘇州號) (14410ton)
- '''고베항''' - 상하이항
- 판스타라인 - 판스타 드림(パンスタードリーム)
- '''고베항''' - 부산항(釜山港)
- 고베 공항 해상 액세스 터미널
- 고베-간사이 베이 셔틀 (84ton, 고속선)
- 고베 공항 해상 액세스 터미널 - 간사이 공항 포트 터미널 (간사이 국제공항섬)
- 세라비 관광汽船 - 라・벨메르 (193ton)
- 고베 주추 제방 - 고베 공항 해상 액세스 터미널 - 아즈키시마·사카테 항
- 세라비 관광汽船 - 비라지오 이탈리아
- 고베 공항 해상 액세스 터미널 - 포아이 시오사이 공원 (포트 아일랜드) - 고베 주추 제방
- 록코 아일랜드 페리 터미널 (부두)
- RF1 상선삼井 산후라와 - 산후라와 골드, 산후라와 펄
- '''고베항''' - 오이타항
- RF2 한큐 페리 - 야마토 (13353ton), 츠쿠시 (13353ton)
- '''고베항''' - 신모지항
- RF3 시코쿠 개발 페리 (오렌지 페리) - 오렌지 호프 (15732ton)
- '''고베항''' - 신이가이마항
- 록코 여객 터미널
- 마루에 페리 (RO-RO선 주 1~2회, 기항지는 편에 따라 다름) - 류큐 익스프레스 2 (10758ton)
- '''고베항''' - 오사카항 - 시부시항 - 나세항 - 나하항 - (혼부항)
3. 4. 컨테이너 터미널
고베항의 컨테이너 터미널 시설은 다음과 같다.시설 | 상세 정보 |
---|---|
컨테이너 선석 | 34개 |
면적 | 3.89km2 |
최대 흘수 | 18m |
- 포트 아일랜드 컨테이너 부두
- PC13: 아메리칸 프레지덴트 라인즈 리미티드, 가미구미, 스미토모 창고
- PC14: 쇼센 미쓰이
- PC15: 쇼센 미쓰이, 스미토모 창고, 야마규, 니켈·앤드·라이온스
- PC16: 쇼센코운, 야마규
- PC17: 쇼센코운, 야마규
- PC18: 가미구미 (가미구미 고베 컨테이너 터미널)
- 2003년에 개설된 업계 최초의 항만 운영업체 단독 운영 컨테이너 터미널이다.
- 록코 아일랜드 컨테이너 부두
- RC3: 가와사키 기선, 머스크 시랜드
- RC4: 가와사키 기선, 머스크 시랜드
- RC5: 가와사키 기선, 머스크 시랜드
- RC6: 일본우편선
- RC7: 일본우편선
3. 5. 위락 시설
4. 항세
2017년 현재 고베항의 항세는 다음과 같다.
구분 | 총 입항 선박 수 | 총톤수 | 비고 |
---|---|---|---|
전체 | 34,934척 | 185,771톤 | |
외항선 | 6,733척 | 139,398톤 | 풀컨테이너선 3,899척, 화물선 1,099척, 유조선 563척, 자동차 전용선 400척, 여객선 53척 등 |
내항선 | 28,201척 | 46,373톤 | 화물선 10,746척, 여객선 8,155척, 페리 2,669척 등 |
- 외화
- '''수출:''' 2,407만 톤 (그 중 컨테이너 개수 1,185,071 TEU)
- 주요 수출품: 산업 기계 16%, 염료·도료·합성수지·기타 화학공업품 13%, 완성 자동차 12%
- 주요 수출 상대국: 중국 28%, 미국 11%, 싱가포르 10%, 대만 9%
- '''수입:''' 2,865만 톤 (그 중 컨테이너 개수 1,033,790 TEU)
- 주요 수입품: 석탄 12%, 의류·잡화·신발 6%, 화학약품 6%
- 주요 수입 상대국: 중국 30%, 미국 19%, 오스트레일리아 8%, 인도네시아 7%
- 내화
- 반출: 1,962만 톤 (그 중 컨테이너 개수 309,497 TEU)
- 반입: 2,752만 톤 (그 중 컨테이너 개수 395,821 TEU)
컨테이너 처리량은 국가의 국제 컨테이너 전략 항만 정책 등의 지원으로 확대를 계속하여 2018년에는 과거 최다를 기록했다.[5] 그러나 아시아 세력, 특히 중국 각 항만의 급격한 확대로 1980년 세계 4위였던 컨테이너 처리량은 2020년 67위로 크게 순위가 하락했다.[6]
- 이용객 수 (승하차 인원)
- 외항선: 여객선 및 페리 10만 8천 명
- 내항선: 여객선 95만 3천 명, 페리 86만 8천 명
5. 정기 항로
터미널 | 운항사 | 선박(톤수) | 주요 기항지 |
---|---|---|---|
고하마 여객터미널 | 고베 크루저 | 콘체르토(2,138톤) | 고베항~아카시 해협 주유 |
고베 베이크루즈 | 로열 프린스(170톤) | 고베항 주유 | |
중앙부두 여객터미널 | 루미너스 관광 | 루미너스 고베 2호(ルミナス神戸2)(4,778톤) | 고베항~명석해협 주유 |
중앙부두 중앙터미널(中突堤中央ターミナル)(가모메리아(かもめりあ)) | 고베 중앙부두 | - | 포트 아일랜드 - 고베 공항 |
고베 베이 크루즈(神戸ベイクルーズ) | 로열 프린세스(414톤), 로열 프린스(ロイヤルプリンス)(170톤) | 고베항 주유 | |
하야코마 운수(早駒運輸) | 시그레이스(190톤), 로망 3(60톤), 판타지 | 고베항~명석해협 주유(시그레이스), 고베항 주유(로망 3), 고베 공항섬 주유·포트 아일랜드(판타지) | |
고베 산노미야 페리 터미널(신항 제3부두) | 잔보페리(ジャンボフェリー) | 리츠린 2(りつりん2)(3,664톤), 아오이(5,200톤) | 쇼도시마(小豆島)사카테항(坂手港)(일부 편) - 다카마쓰 히가시항 |
미야자키 카페리(宮崎カーフェリー) | 페리 타카치호(14,200톤), 페리 록코(フェリーろっこう)(14,200톤) | 미야자키항 페리 터미널 | |
고베 포트 터미널(神戸ポートターミナル)(신항 제4부두) | 판스타라인 | 판스타 드림(パンスタードリーム) | 부산항(釜山港) |
고베 공항 해상 액세스 터미널 | 고베-간사이 베이 셔틀 | - (84톤, 고속선) | 간사이 공항 포트 터미널(간사이 국제공항섬) |
세라비 관광汽船 | 라・벨메르(193톤) | 고베 공항 해상 액세스 터미널 - 아즈키시마·사카테 항 | |
세라비 관광汽船 | 비라지오 이탈리아 | 고베 공항 해상 액세스 터미널 - 포아이 시오사이 공원(포트 아일랜드) - 고베 주추 제방 | |
록코 아일랜드 페리 터미널(부두) | RF1 상선삼井 산후라와 | 산후라와 골드, 산후라와 펄 | 오이타항 |
RF2 한큐 페리 | 야마토(13,353톤), 츠쿠시(13,353톤) | 신모지항 | |
RF3 시코쿠 개발 페리(오렌지 페리) | 오렌지 호프(15,732톤) | 신이가이마항 | |
록코 여객 터미널 | 마루에 페리(RO-RO선 주 1~2회, 기항지는 편에 따라 다름) | 류큐 익스프레스 2(10,758톤) | 오사카항 - 시부시항 - 나세항 - 나하항 - (혼부항) |
록코 아일랜드 컨테이너 부두 | RC3 가와사키 기선, 머스크 시랜드 | - | - |
RC4 가와사키 기선, 머스크 시랜드 | - | - | |
RC5 가와사키 기선, 머스크 시랜드 | - | - | |
RC6 일본우편선 | - | - | |
RC7 일본우편선 | - | - |
고베는 특정 크루즈선의 모항이기도 하다. 고베항에 기항하는 크루즈 회사로는 할란드 아메리카 라인(Holland America Line)과 프린세스 크루즈 라인 등이 있다. 2014년 여름, 프린세스 크루즈는 자사의 선박 Sun Princess|선 프린세스영어(1995)를 이용해 고베항에서 8일간의 아시아 일주 크루즈를 운항하며 고베 시장을 확장했다. '선 프린세스'호의 이러한 크루즈는 프린세스 크루즈가 일본 전역에 기여한 110억달러 규모 사업의 일환이며, 해당 선박은 현재 요코하마(도쿄)를 모항으로 하며 오타루에서도 운항한다.[1]
5. 1. 국제 항로
6. 자매항 및 우호항
고베항은 1967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 미국 시애틀 항과 자매항 협정을 체결했고, 1980년에는 중국 톈진 항과 우호항 협정을 맺었다.
6. 1. 자매항
6. 2. 우호항
국가 | 항구 | 체결일 |
---|---|---|
네덜란드 | 로테르담 항 | 1967년 |
미국 | 시애틀 항 | 1967년 |
중국 | 톈진 항 | 1980년 |
인도 | 콜카타 항 | 1951년 |
캐나다 | 밴쿠버 항 | 1991년 |
참조
[1]
잡지
神戸港開港140年記念特集
http://feel-kobe.jp/[...]
2009-10-26
[2]
웹사이트
World Port Rankings 2006
https://web.archive.[...]
American Association of Port Authorities
2008-04-15
[3]
웹사이트
神戸市:神戸港の概要
http://www.city.kobe[...]
神戸市 みなと総局 みなと振興部 振興課
2017-01-04
[4]
웹사이트
神戸港の統計
https://www.city.kob[...]
神戸市
2020-09-25
[5]
웹사이트
神戸港コンテナ取扱個数 18年上半期は過去最多
https://www.kobe-np.[...]
神戸新聞NEXT
2019-01-25
[6]
웹사이트
世界の港湾別コンテナ取扱個数ランキング(2021年
https://www.mlit.go.[...]
国土交通省
2022-05-05
[7]
서적
新修 神戸市史 歴史編II 近世
神戸市
[8]
문서
東久世通禧各国公使ヲ神戸港ニ会シ太政復古ヲ報ス, 津山藩ノ大坂警衛ヲ罷メ神戸港ヲ守ラシム, 川蒸気船神戸港於テ製造届, 神戸港於テ外国人ヘ兵刃ヲ加ヘ発砲ニ及候家来ノ者処分御達, 神戸港ニテ備前少将家臣日置帯刀従卒外国人ヘ発砲一件
国立公文書館
1868
[9]
법령
明治25年勅令第77号・神戸港船舶碇繋所区域拡張
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
[10]
웹사이트
鳴瀧幸恭(初代神戸市長)と鹿島秀麿(元衆議院議員)
https://www.city.kob[...]
神戸市文書館
2020-09-12
[11]
웹사이트
黎明期のダム 今も潤す 布引五本松堰堤(時の回廊)
https://www.nikkei.c[...]
2019-12-22
[12]
웹사이트
みなと神戸花火大会 花火大会の歴史
https://kobehanabi.j[...]
みなと神戸海上花火大会実行委員会
2019-07-28
[13]
서적
昭和天皇実録第十
東京書籍
[14]
서적
韓国戦争
かや書房
[15]
웹사이트
国際物流、世界トップ3に 神戸港 世界への150年(1)
https://www.nikkei.c[...]
2019-12-22
[16]
웹사이트
神戸開港150年のあゆみ(神戸港関連歴史略年表)
https://www.city.kob[...]
神戸開港150年記念事業実行委員会
2024-07-10
[17]
웹사이트
アジア台頭や震災で苦境 神戸港 世界への150年(2)
https://www.nikkei.c[...]
2019-12-22
[18]
웹사이트
緊急寄稿、東日本大震災の復興に何が必要か
http://www.nikkeibp.[...]
Safety Japan
[19]
웹사이트
http://www.pa.kkr.ml[...]
国交省神戸港事務所
[20]
웹사이트
国際コンテナ戦略港湾の選定結果及び今後の取り組み
https://www.mlit.go.[...]
国土交通省
2019-12-22
[21]
웹사이트
新潮流 先駆者精神今こそ 神戸港 世界への150年(3)
https://www.nikkei.c[...]
2019-12-22
[22]
뉴스
일본 대지진으로 고베항 마비
https://news.kbs.co.[...]
1995-01-21
[23]
뉴스
[오션 뷰] 일본 화물이 부산항에 의존하는 이유
https://www.busan.co[...]
2023-02-26
[24]
뉴스
일본 서부의 전략적 무역항, 고베항
https://www.ksg.co.k[...]
2018-01-25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