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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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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동여지도는 1861년에 제작된 김정호의 한국 고지도이다. 22첩으로 구성된 분첩절첩 형태로, 휴대와 보관이 용이하며, 펼치면 가로 3.6m, 세로 6.85m의 대형 지도가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참고하여 제작되었으며, 산맥, 수로, 교통로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행정 및 문화 지역과 유적지를 표시하였다. 지도에는 지도유설, 전국 팔도 군현 통계, 축척을 표시한 방안표, 범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축척은 1:162,000이며, 목판 인쇄로 제작되었다. 대동여지도는 한국 고지도를 집대성한 최고의 지도로 평가받으며, 1898년 일본군이 조선 지형 측량 후 그 정밀함에 놀랐다는 일화가 있다. 독도 미표기, 간도 미표기, 10만원권 지폐 도안 논란 등 영토 문제와 관련된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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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지도 정보
대동여지도 전체 지도
대동여지도 전체 지도
기본 정보
이름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
로마자 표기Daedongyeojido
제작 시기조선 시대
유형 문화재 정보
소재 국가대한민국
지정 번호850
850-2
850-3
유형보물
소재지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로34다길 2, 성신여대박물관 (동선동3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서울역사박물관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103호 동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지정 연월일1985년 8월 9일
2002년 12월 7일
2008년 12월 22일

2. 지도의 구성

동여도와 마찬가지로 가로 80리, 세로 120리를 한 개의 방안(方眼)으로 하여 한 개 면(面)으로 하고, 2개 면은 한 개 도엽(圖葉)인 목판 한 장에 수용하였다. 대동여지도는 전체 지도 도엽은 목판 121매이고, 제책하였을 때의 면수는 213면이다. 여기에 부록 격인 지도유설, 도성도, 경조오부도 등이 첨가되었기 때문에 실제 도엽은 126목판[10] 이고, 전체 면수는 227면이다. 전체 크기는 가로 19판, 세로 22층(22첩이라고 표시하기도 한다)이며,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가로 360cm, 세로 685cm이다. 이는 지도의 대량 보급을 염두에 둔 제작 기법으로, 동서 19판을 연폭으로 남북 22첩을 계속 인접하면 한반도 전체의 지도가 되게끔 하였다.[11] 서울역사박물관 소장본은 21첩인데, 이는 다른 간본의 제22첩에 수록된 제주도 부분을 제21첩의 추자도 서쪽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21첩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12]

한양청구도에서는 두 면에 걸쳐 있었는데, 〈대동여지도〉에서는 한 면의 중앙 부위에 위치하여 한양을 둘러싼 경계가 모두 수용되었다. 이는 당시의 수도권의 지역적 범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각 층의 도엽을 동에서 서로 연폭(連幅)으로 길게 잇고 이것을 병풍식으로 접어 모두 22층으로 하는 분첩절루(分帖折壘) 또는 분첩절첩(分帖折帖)의 방법으로 제책하여 지도첩이 되게 하였다. 이때 책의 크기는 가로 20cm, 세로 30cm로서 당시 서지류의 크기와 비슷하게 만들어 책처럼 보관할 수 있다.

이 지도는 각각 약 47km(남북) × 31.5km(동서)를 덮는 22개의 분리된 접이식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을 합치면 너비 6.7m, 길이 3.8m의 한국 지도가 된다. 지도의 축척은 1:162,000이다. 목판으로 22장, 16만 2000분의 1로 축소된 조선반도 전역이, 중강진이 약간 북쪽으로 치우쳐 있고 울릉도가 실제보다 남쪽에 표기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3]

대동여지도(1861) 울릉도와 우산

2. 1. 세부 구성


  • 1-2면: 속표지. 간행 연도, 제목, 제작자가 서술되어 있다.[12]
  • 3-4면: 지도유설(地圖類說)에서는 지도의 목적과 효용을 기술한다.
  • 5-6면: 전국 팔도 군현 통계
  • 7-8면: 축척을 표시한 방안표(方眼表)
  • 9-10면: 온성을 포함한 함경북도 최북단 및 범례인 지도표(地圖表)
  • 11-12면: 한양과 그 주변을 그린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
  • 13-14면: 한양을 세밀하게 묘사한 도성도(都城圖)
  • 이후: 지도 본체 (22첩)


이 지도는 각각 약 47km(남북) × 31.5km(동서)를 덮는 22개의 분리된 접이식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을 합치면 너비 6.7m, 길이 3.8m의 한국 지도가 된다. 지도의 축척은 1:162,000이다.

지도에는 산맥, 하천, , 항구, 항로, 행정 구역의 경계, 교통망, 통신, 사적 등이 표시되어 있다.[2]

2. 2. 지도유설

김정호는 지도유설(地圖類說)에서 지도를 제작하는 목적과 그 효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국방상의 요충지를 잘 알아야 하고, 재물과 세금이 나오는 곳과 군사를 모을 수 있는 원천을 잘 알아야 하며, 여행과 왕래를 위해 지리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쳐들어오는 적을 막고 사나운 무리들을 제거하는 데 지도가 쓰이고, 시절이 평화로울 때는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지도가 소용된다고 하였다.[13]

2. 3. 지도표 (범례)

189x189픽셀


제1첩의 10면에 표기된 '지도표'는 지도에 사용된 범례를 설명한다. 총 14개 항목을 22개의 다른 기호로 표기하였으며, 채색 여부는 지도마다 조금씩 다르다.[12] 지도표에는 산천·해도(海島)·영아(營衙)·읍치(邑治)·성지(城池)·진보(鎭堡)·역참(驛站)·창고·목소(牧所)·봉수·능침(陵寢)·방리(坊里)·고현(古縣)·고진보(古鎭堡)·고산성(古山城)·도로 등이 표시되어 있다.

항목설명
산줄기는 굵은 줄로, 높은 산은 위로 솟은 톱날 모양으로 표현했다. 이름난 산이면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배를 타고 수송을 할 수 있는 강이면 푸른 색으로 두껍게, 그렇지 않으면 중간 굵기의 선으로 표시했다.
도로(道路)가는 줄을 그리고 십리마다 표시했다.
영아(營衙)와 진보(鎭堡)영아는 군영을, 진보는 전방·해안 등에 배치한 진지를 말한다. 각각 크고 작은 사각형으로 표시하며 성이 있을 때에는 빨간 테두리를 그렸다.
읍치(邑治)노란 원으로 표시하고 성이 있을 때에는 빨간 테두리를 그렸다.
성지(城池)성과 해자 등을 말한다. 산성(山城)과 관성(關城)을 구분해서 표시했다.
역참(驛站)노란 원 안에 세로줄을 그렸다.
창고(倉庫)검은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성이 있을 때에는 빨간 테두리를 그렸다.
목소(牧所)나라에서 말을 기르는 곳이다. 빈 사각형 안에 ‘牧’으로 표시했다.
봉수(烽燧)산 위에 붉은 삼각형으로 표시했다.
능침(陵寢)왕릉을 말한다. 붉은 원으로 표시했다.
방리(坊里)빈 원으로 표시했다.
고현(古縣)검은 원으로 표시하고 성이 있을 땐 붉은 테두리를 그렸다.
고진보(古鎭堡)검은 삼각형으로 표시하고 성이 있을 땐 원으로 테두리를 그렸다.
고산성(古山城)산 모양 안에 흰 원으로 표시했다.


3. 지도의 축척

〈대동여지도〉는 100리를 1척(尺)으로, 10리를 1촌(寸)으로 한 백리척(百里尺) 축척을 사용했다. 그러나 당시 1촌, 1보(步)가 현재 몇 센티미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이를 바탕으로 축척을 계산하기는 어렵다.[10]

조선 시대 10리를 오늘날과 같은 4킬로미터로 계산하여 축척을 1:160,000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대동지지》와 《속대전》 기록에는 “주척(周尺)을 쓰되 6척은 1보이고 360보는 1리이며 3600보는 10리로 된다.”라고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이우형, 성남해 등은 축척을 1:216,000으로 계산하였다. 1리는 21,600촌이며, 백리척과 비교하면 1촌은 10리, 즉 216,000촌(=3600(보)×6(척)×10(촌))을 나타낸다. 이는 이론상 축척이 '''1:216,000'''임을 뜻하며, 실제 축척도 그와 비슷하다.[10]

일부 자료에는 지도의 축척이 1:162,000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목판으로 제작된 22장의 지도는 16만 2000분의 1로 축소된 조선반도 전역을 묘사하고 있는데, 중강진이 약간 북쪽으로, 울릉도가 실제보다 남쪽에 표기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정확하다.[3]

4. 다른 지도와의 비교

김정호가 제작한 청구도, 동여도와 비교했을 때, 대동여지도는 목판본으로 제작되어 필사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줄이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청구도에 비해 주기(註記)의 수는 줄었지만, 하천, 누정, 진보 등 일부 항목은 내용이 더 상세해졌다.[10] 동여도는 대동여지도의 선행 지도로, 주기 내용이 더 풍부하지만, 대동여지도는 휴대성과 실용성을 높인 지도이다.

김정호가 제작한 지도 비교
구분청구도동여도대동여지도
제작 방식필사본필사본목판본
주기(註記) 수15,485개18,376개13,188개
특징가장 자세함휴대성과 실용성 높음



청구도는 남북 100리, 동서 70리인 데 비해 대동여지도는 남북 120리, 동서 80리로, 산맥과 하천망이 매우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어 실제 여행에 더욱 실용적이었다.[2]

5. 대동여지도의 특징

대동여지도한국어는 한국 고지도를 집대성한 지도로 평가받는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목판본으로 제작되어 필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줄이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하였다.
  • 지도표(지도식)를 사용하여 지도의 주기 내용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옛 지도를 근대적인 방식으로 개선하였다.
  • 22첩으로 분리 및 결합이 자유롭게 제작되어, 필요에 따라 도별 지도 또는 전국 지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접으면 책 크기가 되어 휴대하기 편리하다.
  • 전통적인 지도 제작 방식인 배수(裵秀)의 6체(六體)를 따르고, 방안도법을 활용하였다. 또한,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입하여 지도의 확대 및 축소 시 정확성을 높였다.
  • 주기 내용이 풍부하여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 10리마다 점을 찍어 여행 시 거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정확한 해발고도는 알 수 없지만, 산의 높낮이를 크고 작음으로 구분하여 대략적인 지형을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 배가 뜰 수 없는 하천은 표시하지 않는 등 군사적, 상업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담았다.
  • 각 지도는 약 47km (남북) × 31.5km (동서) 크기의 22개 접이식 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합치면 너비 6.7m, 길이 3.8m의 한국 지도가 된다. 지도의 축척은 1:162,000이다. 양면에 새겨진 70개의 피나무 목판으로 인쇄되었다.
  • 산맥, 하천, , 항구, 항로, 행정 구역의 경계, 교통망, 통신, 사적 등이 표시되어 있다.[2]
  • 청구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지만, 청구도보다 산맥과 하천망이 매우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어 실제 여행에 더욱 실용적이었다. 휴대하기 좋은 90만 분의 1 축척의 대동여지전도한국어도 목판으로 간행했다.
  • 대한민국 보물 제850호로 지정되어 있다.


6. 목판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멸실된 줄 알았던 대동여지도의 목판이 발견되었다. 이 목판은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목판과 함께 제작된 것으로, 11매로 가로 43cm, 세로 32cm의 크기이며 양면에 표제 및 24도엽이 판각되어 있다. 이는 대동여지도 전체 126도엽 가운데 5분의 1에 해당한다. 목판의 재질은 피나무이며, 1861년(철종 12) 초간본 완성 이후 여러 차례 오류를 수정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목판은 1864년에 인쇄된 고종 원년 갑자본의 원형으로 판단된다.[14] 숭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판목은 함경도 함흥 지방의 것으로 성불사, 철산, 삼장산이 판각되어 있다.[15]

목판의 빈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지도의 여러 면을 판 하나에 몰아넣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대동여지도의 7층 1면(북청군 남부), 8층 6면(룡천군 서부), 13층 6면(황해도 남부의 섬들)은 목판 하나에 같이 새겨져 있다. 또한 대동여지도 판본 중에는 무의도강릉 앞바다에 잘못 찍혀 있는 것이 있는데, 이를 통해 13층 1면과 5면이 같은 목판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7. 일화

1898년 일본 육군경부선 부설을 위해 조선 지형을 비밀리에 측량하고자 일본인 측량 기술자 1,200명과 조선인 200~300명을 고용하여 전국을 측량, 5만분의 1 지도를 300부 제작했다. 이후 대동여지도의 존재를 알게 된 일본 육군은 자신들이 제작한 지도와 대동여지도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16]

8. 논란

대동여지도는 여러 논란에 휩싸여 있다.

2008년 10만 원권 지폐 도안으로 대동여지도가 고려되었으나, 독도가 표시되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 이 문제로 10만 원권 지폐 발행 계획은 결국 취소되었다.

울릉도 상세도 동쪽에 '우산(于山)'이라고 적힌 섬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 섬을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독도라고 주장한다.[1]

중국과의 분쟁 지역인 간도(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가 지도에 표기되지 않아, 조선청국의 간도 영유를 인정했다는 중국 측 주장에 유리한 증거로 활용되기도 한다.[1]

8. 1. 10만 원권 지폐 도안 논란

2008년, 대동여지도는 당시 최고액권이 될 10만 원권 지폐의 이미지로 고려되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에는 국제적으로 분쟁 중인 독도가 표시되지 않아, 지폐에 독도를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한 한국 내 공개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해당 이미지는 너무 논란이 많아, 높은 가시성을 요구하는 지폐에는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이 문제로 인한 논란 때문에 10만 원권 지폐 발행 계획은 취소되었다.

8. 2. 영토 문제

대동여지도의 울릉도 상세도 동쪽에는 '우산(于山)'이라고 적힌 섬이 그려져 있다. 섬의 형태, 크기, 위치 관계로 보아 현재의 죽도에 가깝지만, 한국에서는 이 섬을 일본과 영유권 문제가 되고 있는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다.[1]

중국과의 사이에서 빈번하게 분쟁 지역으로 거론되는 간도(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가 이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조선 왕조 또한 청국의 간도 영유를 인정했다"는 중국 측에 유리한 증거가 되고 있다.[1]

참조

[1] 웹사이트 The Returned Daedongyeojido (Map of the Great East): Re-encountering Our Land https://gogung.go.kr[...] 2023-12-10
[2] 서적 吉田(1988) 1988
[3] 서적 吉田(1988) 1988
[4] 뉴스 10만ウォン・5만ウォン紙幣の背景画原案が決定 http://www.chosunonl[...] 朝鮮日報 2008-08-23
[5] 뉴스 韓国、10万ウォン札の発行中止 肖像や図案が原因? http://www.asahi.com[...] asahi.com 2009-03-02
[6] 간행물 관보 제10111호 http://theme.archive[...] 문화공보부 2016-05-20
[7] 간행물 관보 제15269호 http://gwanbo.mois.g[...] 문화재청 2016-05-20
[8] 간행물 관보 제16903호 http://gwanbo.mois.g[...] 문화재청 2016-05-20
[9] 뉴스 `대동여지도 목판` 보물됐다 http://article.joins[...] 연합뉴스 2008-12-22
[10] 기타
[11] 서적 한국 고지도 발달사 혜안 1999
[12] 웹인용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누구나 다 알지만 누구도 다는 알지 못하는 명품 https://museum.seoul[...] 2022-07-20
[13] 웹사이트 http://contents.hist[...]
[14] 웹사이트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의 목판 https://silhak.ggcf.[...] 2016-10-11
[15] 웹사이트 대동여지도 판목 http://www.ssu.ac.kr[...] 2016-09-11
[16] 서적 조선인물실록 1 도서출판 자작나무 199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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