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만
1. 개요
권태만은 대한민국의 합기도 지도자이다. 안동에서 태어나 7세에 태권도를 배우며 무술을 시작했으며, 이후 지한재에게 합기도를 사사했다. 1964년 인천에 합기도 도장을 열고 미군을 가르쳤으며, 1967년 베트남에 파견되어 군인들에게 무술을 지도했다. 1971년 대한민국 합기도 협회 사범으로 승진했다.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도장을 열고, 김종성, 한봉수와 함께 합기도 협회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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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출생 -
신영복
신영복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사회운동가, 대학교수, 저술가로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 생활 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집필하여 반향을 일으켰고, 출소 후 관계론을 중심으로 사상을 발전시키며 독특한 서체로 민중과 소통했으며,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
1941년 출생 -
도정일
도정일은 영문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 경희대학교 교수, 도서관장,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문화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으나, 2016년 학력 위조 논란 이후 이를 인정했고, 저서로는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등이 있다.
2. 생애
권태만은 대한민국 안동시에서 태어나 7세에 태권도를 배우면서 무술에 입문했다. 당시 한국은 한국 전쟁 이후 물리적, 문화적 재건 시기여서 정식 도장이 없어 창고와 들판에서 태권도 수업이 진행되었다. 권태만은 작고 허약하여 3년 가까이 태권도를 배웠음에도 덩치가 큰 아이들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느껴 다른 무술을 찾기 시작했다.
1956년 안동시에서 지한재에게 합기도(당시 합기 유권술)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한재의 첫 도장인 안무관에서 유용우, 오세림(훗날 대한민국 합기도 연맹 회장) 등과 함께 수련했다. 1957년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여 마장동에 위치한 지한재의 서울 첫 도장에서 황덕규, 강종수, 명광식, 김용진, 이태전, 정원선, 이동구 등과 수련을 계속했다. 1958년 도장이 중부시장으로 이전하면서 최서오, 명재남(한기도 창설자), 한봉수 등과 함께 수련했다.
2.1. 초기 생애 및 무술 입문
권태만은 대한민국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7세에 태권도를 배우면서 처음으로 무술에 입문했다. 당시 한국은 한국 전쟁 이후 물리적, 문화적 재건 시기였다. 정식 도장이 아직 건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권태만이 다녔던 태권도 수업은 창고와 들판에서 진행되었다. 권태만은 7세 때 자신이 작고 허약하다는 것을 느꼈다. 3년 가까이 태권도를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태권도 스타일로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아이들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특정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형태의 무술을 찾기 시작했다.
2.2. 합기도 수련
1956년, 안동시에서 지한재에게 합기도(당시 합기 유권술)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한재가 처음으로 개관한 도장인 안무관에서 유용우, 오세림(훗날 대한민국 합기도 연맹 회장) 등과 함께 수련했다.
1957년,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여 마장동에 위치한 지한재의 서울 첫 도장에서 황덕규, 강종수, 명광식, 김용진, 이태전, 정원선, 이동구 등과 계속 수련했다. 1958년, 도장이 중부시장으로 이전하면서 최서오, 명재남(한기도 창설자), 한봉수 등과 함께 수련했다.
3. 업적
1964년, 인천에 첫 합기도 도장을 열고 그곳에 주둔한 미 육군 병사들을 가르쳤다.
1967년, 대한민국 합기도 협회 시범단의 일원으로 베트남에 파견되어 한국군, 미군, 베트남군 및 특수 부대원들을 가르쳤다.
1971년, 대한민국 합기도 협회로부터 사범으로 승진했으며, 승급 및 승단 심사의 수석 심사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