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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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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경철은 의사이자 작가, 증권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2000년대 초반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주식 관련 글을 기고하며 이름을 알렸다. 영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1년 경북 안동에서 개원하여 24시간 진료를 통해 병원 운영을 호전시켰다. 2005년에는 의사 생활을 에세이로 엮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출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는 주식 투자 서적을 저술하고 강연 활동을 펼치며,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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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강연 중인 박경철
강연 중인 박경철
이름박경철
필명시골의사
출생일1964년 11월 10일
출생지경상북도 안동시
국적대한민국
종교천주교 (세례명: 안토니오)
배우자정은승
자녀2남 1녀
학력
대학교영남대학교 의과대학
직업
직업의사(전문의)
저술가
방송인
주식 투자 전문가
활동 정보
활동 기간1989년~
언어한국어
영어
장르평론
수상
수상올해의 증권선물인상(2006년)
기타
웹사이트박경철 블로그

2. 생애

박경철은 경찰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경상북도 내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녔다.[4] 예천, 경산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초등학교 6학년 때 대구광역시의 부유한 동네로 전학 갔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큰 빈부 격차를 실감했는데, 친구 아버지가 정보기관 고위직이었고 집 안에 계단이 있을 정도로 부유했기 때문이다. 친구 방에 가득 찬 동화책을 보며 책에 대한 갈망을 품게 되었고, 그 후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5] 공사 중이던 학교 건물 7층에 몰래 들어가 책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다.[6]

세상의 정의를 저울질하는 법관이나 글 쓰는 직업을 꿈꾸기도 했지만, 존경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영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박경철이 대학생 시절 사망했고, 어머니는 사기로 큰 빚을 지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예비역 육군 공중보건의 중위 전역 후에도 월급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빚이 있었다. 2001년 39세에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개원했으나, 첫날 28명밖에 오지 않았다. 적자를 면하려면 80명이 와야 했는데 크게 못 미쳤다.[8] 이 사업이 잘못되면 의사 생활도 어렵게 되고 도와준 친구들에게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추석설날에도 쉬지 않고 24시간 진료를 했으며,[9]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방문 진료까지 했다. 개업 6개월 후에는 하루 방문 환자 400명을 기록해 당시 의사 개인 진료 횟수 전국 3위를 기록했고, 빚도 다 갚게 됐다.[10]

2005년에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을 모은 에세이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발간했다. 밤에 손님이 없는 틈을 타 경제 공부를 하며 책을 집필했는데,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알리기 위해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다. 이 책은 가상의 인물 '나'를 통해 모든 의사(박경철의 동료)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쓰여졌다.[11]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12]

박경철의 아들은 의료사고로 뇌성마비에 걸렸다. 의사로서 아이를 치료했고,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됐지만, 그는 자신이 의사이고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증상을 겪는 다른 아이들은 소득 격차로 인해 회복이 더딘 경우가 있어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13]

의대 재학 시절, 영어 수업에서 '타임'지 의학 기사를 해석하며 '미국 자산 시장이 불타오른다'는 내용에 주목했다. 당시 한국 주식시장은 '백할머니', '광화문곰' 등이 주도하던 시기였지만, 20~30년 후 한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주식 투자를 공부했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몇십만 원으로 첫 투자를 시작했고,[15] 20년 넘게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재 가격은 비슷하다. 이를 통해 "어떤 일이든지 잘 모르고 쉽게 뛰어들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그가 저술한 주식 투자 서적들은 큰 인기를 얻었으며, 2006년 증권선물거래소와 증권사 사장단은 "증권 투자의 올바른 인식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며 외부 인사로는 처음으로 '올해의 증권선물인상'을 수여했다.[16] 한때 직접 주식 투자를 통해 원금의 50배 수익을 올리기도 했지만, 교육 및 공공기관 강연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1990년대부터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주식 관련 글을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1995년부터 IMF 사태까지 시장 전망을 제시했으며, 1999년 12월에는 '성장주와의 이별'이라는 글로 글로벌 거품 붕괴를 예측했다.[17] 2000년 주식 폭락을 예언하면서 족집게 예측으로 유명해졌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에는 "향후 10년 내에 이 가격에 삼성전자를 살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며 주가 상승을 주장했고, 2007년 9월에는 한국 증시 고점론을 전망했다.[18]

2. 1. 학창 시절

경찰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경상북도 내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녔다.[4] 예천, 경산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초등학교 6학년 때 대구광역시에서도 부유한 동네로 전학을 갔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큰 빈부 격차를 실감하게 되었는데, 친구 아버지가 정보기관 고위직이었고 집 안에 계단이 있을 정도로 부유했기 때문이다. 친구 방에 가득 찬 동화책을 보며 책에 대한 갈망을 품게 되었고, 그 후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5] 공사 중이던 학교 건물 7층에 몰래 들어가 책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다.[6]

세상의 정의를 저울질하는 법관이나 글 쓰는 직업을 꿈꾸기도 했지만, 존경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영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박경철이 대학생 시절 사망했고, 어머니는 사기로 큰 빚을 지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2. 2. 의사 생활

박경철은 예비역 육군 공중보건의 중위 전역 이후에도 월급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빚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개원밖에 답이 없을 거라 생각하여 계획을 잡았는데, 고가의 의료 장비와 임대할 건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7] 하지만 절친한 친구가 5년 만기 적금을 3개월 남기고 해지하여 박경철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였고, 의사면허증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서 도와준 친구도 있었다. 2001년 39세에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어렵사리 개원을 했으나, 첫날 28명밖에 오지 않았다.[8] 적자를 면하려면 80명이 와야 했는데 크게 못 미쳤던 것이다. 이 사업이 잘못되면 의사 생활도 어렵게 되고 도와준 친구들에게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박경철은 추석설날에도 쉬지 않고 24시간 진료를 했으며,[9]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방문 진료까지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자 하루에 200명이 올 정도로 숨통이 트였다. 개업 6개월 후에는 하루 방문 환자 400명을 기록해 당시 의사 개인 진료 횟수 전국 3위를 기록했고, 빚도 다 갚게 됐다.[10]

2005년 박경철은 자신과 동료들이 의사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을 모은 에세이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발간했다. 당시 박경철은 365일 병원에서 지냈는데, 밤에 손님이 없는 틈을 타 경제 공부를 하며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알리기 위해 집필한 것이었다. 이 책에는 모두 1인칭 시점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박경철이 모두 겪은 게 아니라 가상의 인물인 '나'를 통해 모든 의사(박경철의 동료)를 대변하는 것이다.[11]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12]

박경철의 아들은 의료사고로 인해 뇌성마비에 걸렸다. 박경철은 의사로서 아이를 치료했고, 아이의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됐다. 하지만 박경철은 자신이 의사였고,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박경철은 비슷한 증상을 겪었던 아이들은 자신의 아이보다 상태가 더 늦게 호전되는 경우도 있어 소득 격차에 따른 벽이 있다고 이야기했다.[13]

2. 3. 주식 투자와 관련 활동

박경철은 의대 재학 시절, 영어 수업에서 미국의 '타임'지 의학 기사를 해석하고 발표하는 과제를 수행했다. 과제를 마치고 '미국 자산 시장이 불타오른다'는 내용에 주목했는데, 당시 한국 주식시장은 '백할머니', '광화문곰' 등이 주도하던 시기였다. 박경철은 20~30년 후 한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경제 서적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몇십만 원으로 첫 주식 투자를 시작했고,[15] 당시 매수한 주식을 20년 넘게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 가격은 비슷하다고 한다. 박경철은 이를 통해 "어떤 일이든지 잘 모르고 쉽게 뛰어들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박경철이 저술한 주식 투자 서적들은 큰 인기를 얻었으며, 2006년 증권선물거래소와 증권사 사장단은 그에게 "증권 투자의 올바른 인식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며 외부 인사로는 처음으로 '올해의 증권선물인상'을 수여했다.[16] 그는 한때 직접 주식 투자를 통해 원금의 50배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교육 및 공공기관 강연을 우선순위에 두어 차비를 제외하면 섭외료가 남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 주요 예측

1990년대부터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주식 관련 글을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1995년부터 IMF 사태까지 시장 전망을 제시했으며, 1999년 12월에는 '성장주와의 이별'이라는 글로 글로벌 거품 붕괴를 예측했다.[17] 2000년 주식 폭락을 예언하면서 족집게 예측으로 유명해졌다. 2001년 9.11 테러 직후에는 "향후 10년 내에 이 가격에 삼성전자를 살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며 주가 상승을 주장했고, 2007년 9월에는 한국 증시 고점론을 전망했다.[18]

3. 철학

(박경철의 철학에 대한 내용은 주어진 원본 소스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출력할 내용이 없음)

3. 1. 의료·복지

박경철이 진료하던 어느 늦은 밤, 한 노모와 아들이 병원에 왔었다. 그런데 아들의 입술이 새파래진 것을 보고 농약을 마신거라 직감한 박경철은 이미 살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아차렸다. 노모가 박경철에게 아들을 살릴 수 있는지 묻자 박경철은 살릴 수 없다고 답했고, 모자는 다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박경철은 치료를 시도해봐야 한다며 돌아가려는 모자를 막아섰고, 노모는 치료비가 없다고 말했다. 박경철은 위세척을 무료로 해주고 모자에게 택시비를 쥐어줬으나, 모자는 택시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타고 돌아갔다.[19] 박경철은 이를 보며 "사람이 생존의 문제에 있어서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말했다.

박경철은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시절, 정부의 '빈곤층에 대한 진료제한 정책'에 18개 시민단체와 함께 반대 투쟁을 벌였다. 이 시절에 박경철은 "병원을 팔아서라도 극빈자에게선 진료비를 받지 말자"는 주장을 하여 의사협회의 일부로부터 '좌파 세력의 주구', '트로이의 목마'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성분명 처방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의 입장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이로 인해 시민단체들로부터 의사협회 대변인이 되니 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성분명 처방을 하게 되면 복제 약을 쓸 우려가 있는데, 이것의 안정성이 문제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대 성명은 본인의 소신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의사협회 내부 갈등으로 박경철은 2007년 10월 1일 대변인 자리에서 3개월 만에 사퇴했다.[1] 박경철은 사퇴의 변으로 "즉흥적인 것이 아니며 그 동안 수 차례 고민했다"고 하며 "장동익(제34대 대한의사협회장, 국민건강수호연대 초대 위원장 출신) 집행부 이후 시민들로부터 소외되었던 의사 사회를 연결하고자 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했다.[20]

3. 2. 주식

의대 재학 시절, 미국의 '타임'지 의학 기사를 교재로 사용하면서 미국 자산 시장에 대한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 주식시장은 '백할머니', '광화문곰' 등이 주름잡던 시기였는데, 20~30년 후 미국을 따라잡는다고 생각하면 대한민국에도 쓸모가 있겠다는 생각에 경제 서적을 찾아보며 본격적으로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15]

어머니에게 받은 몇 십만 원으로 첫 주식 투자를 시작했고, 20년 넘게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현재와 비슷하다는 것을 보며 "어떤 일이든지 잘 모르고 쉽게 뛰어들면 안 된다"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15]

박경철이 저술한 주식투자 서적들은 큰 인기를 얻었으며, 2006년 증권선물거래소와 증권사 사장단은 "증권투자의 올바른 인식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며 외부인사로는 처음으로 '올해의 증권선물인상'을 수여하기도 했다.[16] 한때 직접 주식투자를 하여 원금의 50배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주요 예측

1990년대부터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주식 사이트에 글을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1995년부터 IMF 사태까지 시장 전망을 내놓았고, 1999년 12월에는 '성장주와의 이별'이라는 글로벌 거품 붕괴를 예측했다.[17] 2000년 주식 폭락과 2001년 911테러 직후 "향후 10년 내에 이 가격에 삼성전자를 살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며 주가 상승을 주장했으며, 2007년 9월에는 한국증시 고점론을 전망하는 등 족집게 예측으로 유명했다.[18]

1990년대에 외국 자본이 한국 자본을 가져가고 개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국내 자본을 지키는 기관투자자들의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고 보았다. 개인투자자가 직접 주식투자를 하는 것보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21]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전문가를 믿지 못하고 개인 투자가 늘어나는 현실을 우려했다. 다른 주식 전문가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험을 알리는 종이라고 생각하며 그 역할을 잘 해나가는 것이 덜 부끄럽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주식 투자로 큰 수익을 거둔 것은 IT, 휴대전화 등이 일상화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며, 현재도 주식 투자 수익보다는 어떤 산업의 미래를 보았다는 정도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했다.[22] 주식 투자로 큰 수익을 거둔 것은 특별한 운이 따른 결과이며, 과장된 영웅담은 주식 투자로 힘든 사람들에게 조롱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이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자 당위성을 가지고 주식 투자를 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주식을 도박처럼 하면 좋은 것도 나쁜 것이 된다고 지적하며, 자신만의 주식 투자 비법은 없다고 말한다.

영남대학교 시절, 친구 아버지에게 주식 관련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친구 아버지가 보유한 관리대상종목에 대해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위험한 종목"이라고 조언했지만, 해당 종목은 일주일 후 11배가 오르면서 '철없는 강아지는 위험하다'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23]

4. 비판 및 논란

(주어진 원본 소스가 비어 있으므로, 작성할 내용이 없습니다.)

5. 약력

박경철은 덕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에서 의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을 지냈으며,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명예홍보대사, 사단법인 한국소아당뇨인협회 이사장, 한국청년상 공동위원장,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 및 대변인, 머니투데이 편집국 전문위원, MBN 전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5. 1. 학력

5. 2. 경력

연도경력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
2011년 7월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명예홍보대사[1]
2011년 3월사단법인 한국소아당뇨인협회 이사장[2]
2010년한국청년상 공동위원장[3]
2008년 4월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4]
2008년 3월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5]
2007년 5월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 대변인[6] [7]
2005년 11월머니투데이 편집국 전문위원[8]
2002년 8월MBN 전문위원회 위원[9]


6. 저서



; 단독 저서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2005년)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2》 (2005년)
  •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2007년)
  •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2006년)
  • 《만화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2007년)
  •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 통찰편》 (2008년)
  •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2 : 분석편》 (2008년)
  •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2011년)
  •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ㅣ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2013년)


; 공저

  •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2007년)
  •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2》 (2009년)
  • 《심상정, 이상 혹은 현실》 (2010년)
  • 《대한민국 자산관리 리더들이 말한다》 (2007년)


6. 1. 단독 저서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2005년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2》 2005년
  •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2007년
  •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2006년
  • 《만화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2007년
  •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 통찰편》 2008년
  •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2 : 분석편》 2008년
  •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2011년
  • 《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ㅣ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2013년

6. 2. 공저


  •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2007년)
  •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2》 (2009년)
  • 《심상정, 이상 혹은 현실》 (2010년)
  • 《대한민국 자산관리 리더들이 말한다》 (2007년)

7. 출연작

박경철은 KBS 한국방송공사, MBC 문화방송, MBN 매일경제TV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하여 경제 및 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7. 1. 방송


  • KBS 한국방송공사
  • * 아침마당 - 시골의사 박경철 (2008년 12월 11일)
  • * 아침마당 - 시골의사 박경철 (2008년 12월 18일)
  • * 아침마당 - 우리경제 (2009년 6월 25일)
  • * KBS 중계석 - 박경철의 0.9% 또는 99% (2009년)
  • *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2008년 11월 3일 ~ 2011년 9월 17일)
  • MBC 문화방송
  • * 황금어장 - 무릎 팍 도사 (2009년 10월 21일)
  • * MBC 스페셜 - 안철수와 박경철 (2011년 1월 28일, 1편/신년특집), (2011년 7월 29일, 2편/여름방학특집)
  • MBN 매일경제TV
  • * 경제나침반 180도 (2006년)
  • * 박경철의 공감 60분 (2009년)

참조

[1] 잡지 〈의협 대변인 3개월 만에 사퇴한 ‘시골의사’ 박경철〉 http://www.donga.com[...] 신동아 2007-11-01
[2] 간행물 박경철의 눈 weekly경향
[3] 신문 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중앙일보 2014-XX-XX # 정확한 날짜 정보가 없어서 XX로 표기.
[4] 뉴스 안철수 교수와 순회강연 ‘시골의사’ 박경철씨 https://news.naver.c[...] 경향신문 2011-05-XX # 정확한 날짜 정보가 없어서 XX로 표기.
[5] 뉴스 시골의사 박경철이 펼쳐든 아버지라는 이름의 인생 지도 https://news.naver.c[...] 경향신문 2011-07-XX # 정확한 날짜 정보가 없어서 XX로 표기.
[6] 뉴스 무릎팍 출연 명사 박경철과 안철수의 ‘우정’ https://news.naver.c[...] 서울신문 2009-10-XX # 정확한 날짜 정보가 없어서 XX로 표기.
[7] 뉴스 시골의사' 박경철 무릎팍도사에 출연…가족사의 우여곡절 '고백' http://www.mdtoday.c[...] 메디컬투데이 2009-07-XX # 정확한 날짜 정보가 없어서 XX로 표기.
[8] 뉴스 시골의사' 박경철의 가족이야기 "그리운 사람이 되고파 https://news.naver.c[...] 아시아경제 2011-07-XX # 정확한 날짜 정보가 없어서 XX로 표기.
[9] 뉴스 박경철, '무릎팍도사'서 가족사·주식투자관 공개 https://news.naver.c[...] 스타뉴스 2011-07-XX # 정확한 날짜 정보가 없어서 XX로 표기.
[10] 뉴스 시골의사' 박경철의 가족이야기 "그리운 사람이 되고파 https://news.naver.c[...] 아시아경제 2011-07-XX # 정확한 날짜 정보가 없어서 XX로 표기.
[11] 뉴스 '날, 슈바이처와 동급으로 생각' https://news.naver.c[...] 마이데일리 2011-07-00
[12] 뉴스 '무릎팍 효과?,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베스트셀러 진입' https://news.naver.c[...] 엑스포츠뉴스 2011-07-00
[13] 뉴스 '무릎팍' 박경철 "내 아이가 뇌성마비" 감동 발언 https://news.naver.c[...] TV리포트 2011-07-00
[14] 뉴스 ''시골의사' 박경철-정은승 아나운서 결혼 뒤늦게 알려져' http://entertain.nav[...] 연합뉴스 2011-07-00
[15] 뉴스 '시골의사' 박경철 "주식투자? 전문가에 맡겨라" https://news.naver.c[...] 아시아경제 2011-07-00
[16] 뉴스 '시골 의사 박경철' https://news.naver.c[...] 서울경제신문 2011-07-00
[17] 뉴스 '한 방 펀치를 조심하라' https://news.naver.c[...] GKSRUFP21 2011-07-00
[18] 뉴스 '시골의사 박경철의 ‘공부법’'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11-07-00
[19] 뉴스 '탐욕과 공포 다스리기...시골의사의 동행' https://news.naver.c[...] 머니투데이 2011-07-00
[20] 웹사이트 null http://www.medigaten[...] null null
[21] 뉴스 시골의사' 박경철 "주식투자? 전문가에 맡겨라" https://news.naver.c[...] 아시아경제 2011-07-00 #날짜 정보가 월까지만 제공됨.
[22] 뉴스 시골의사' 박경철, '무릎팍도사' 출연…"감동+재미" 두마리 토끼 잡았다 http://www.hkn24.com[...] 겜뉴스 2011-07-00 #날짜 정보가 월까지만 제공됨.
[23] 뉴스 시골의사' 박경철 "주식투자? 전문가에 맡겨라" https://news.naver.c[...] 아시아경제 2011-07-00 #날짜 정보가 월까지만 제공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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