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벌포 전투
1. 개요
기벌포 전투는 나당 전쟁 중 신라가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낸 해상 전투이다. 당나라가 육로 공격의 어려움을 겪자, 설인귀가 이끄는 함대를 기벌포에 투입하여 신라의 측면을 공격했다. 신라는 673년부터 서해에 함선 100척과 해군을 배치하여 방어 태세를 갖추었으며, 사찬 시득이 이끄는 함대가 기벌포에서 당나라 함대와 교전했다. 초기에는 패배했으나, 22번의 전투 끝에 신라가 승리하여 당나라 함선과 군사 4,000여 명을 잃게 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신라는 서해 제해권을 장악하고 나당 전쟁에서 최종 승리하여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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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년 중국 -
나당 전쟁
나당 전쟁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신라가 당나라의 한반도 지배 시도에 맞서 고구려 유민 부흥운동을 지원하며 시작되어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해전에서 승리, 당나라의 철수를 이끌어내고 삼국 통일을 완성한 전쟁이다. -
676년 한국 -
나당 전쟁
나당 전쟁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신라가 당나라의 한반도 지배 시도에 맞서 고구려 유민 부흥운동을 지원하며 시작되어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해전에서 승리, 당나라의 철수를 이끌어내고 삼국 통일을 완성한 전쟁이다. -
나당 전쟁의 전투 -
호로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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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 전쟁의 전투 -
매소성 전투
2. 전투 배경
매소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신라는 나당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후에도 신라군과 당나라군은 18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당은 육로 공격이 어렵다고 판단, 설인귀가 이끄는 함대를 기벌포에 침입시켜 신라의 측면을 공격하려 했다.
2.1. 나당 전쟁의 전개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군은 군마 30,380마리와 30,000 여명 분의 무기를 노획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신라는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이후 신라군과 당나라군은 크고 작은 전투를 18차례에 걸쳐 벌였다.
당은 육로로 신라의 한강 방어선을 돌파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설인귀가 이끄는 함대를 기벌포에 침입시켜 신라의 측면을 공격하였다.
신라는 673년에 이미 함선 1백 척과 해군을 서해에 배치시켜 방비하고 있었다. 덕적도 앞을 지나 금강 입구로 향하고 있다는 설인귀 수군의 정보가 신라군에게 전달되자, 사찬 시득(施得)이 함선을 이끌고 기벌포로 향했다. 처음에 신라군은 당군의 선제 공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패배하였다. 그러나 이후 22번의 크고 작은 전투 끝에 신라가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당나라는 상당수의 전함과 4,000여 명의 군사를 잃었다. 이 패배로 당나라는 더 이상 전쟁 수행의 의지를 상실했다.
2.2. 신라의 해상 방어 준비
신라는 673년에 함선 1백 척과 해군을 서해에 배치하여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설인귀의 수군이 덕적도 앞을 지나 금강 입구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라군에게 전달되자, 사찬 시득(施得)이 함선을 이끌고 기벌포로 향했다.
3. 전투 과정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군은 군마 30,380마리와 30,000여 명 분의 무기를 노획하며 크게 이겼다. 이로써 신라는 전쟁의 주도권을 쥐었고, 이후에도 당나라군과 18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기벌포 전투에서 신라는 22번의 전투 끝에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당나라는 많은 전함과 4,000여 명의 군사를 잃고 전쟁 수행 의지를 상실했다.
3.1. 설인귀의 침입과 초기 전투
당은 육로로 신라의 한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기벌포에 설인귀(薛仁貴)가 이끄는 함대를 침입시켜 신라의 측면을 공격하였다.
673년, 신라는 이미 함선 1백 척과 해군을 서해에 배치시켜 방비하고 있었다. 설인귀의 수군이 덕적도 앞을 지나 금강 입구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라군에게 전달되자, 사찬(沙飡) 시득(施得)이 함선을 이끌고 기벌포로 향했다. 처음에 신라군은 당군의 선제 공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패배하였다.
3.2. 신라군의 반격과 승리
매소성 전투에서 군마 30,380마리와 30,000여 명 분의 무기를 노획하는 대승리를 거둔 신라군은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이후에도 당나라군과 18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당은 육로로 신라의 한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어렵다고 판단, 설인귀가 이끄는 함대를 기벌포에 침입시켜 신라의 측면을 공격하였다.
673년 이미 함선 100척과 해군을 서해에 배치하여 방비하고 있던 신라는 설인귀의 수군이 덕적도 앞을 지나 금강 입구로 향한다는 사실을 전달받고, 사찬 시득(施得)이 함선을 이끌고 기벌포로 향했다. 신라군은 초반 당군의 선제공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패배했으나, 이후 22번의 크고 작은 전투 끝에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당나라는 상당수의 전함과 4,000여 명의 군사를 잃었고, 이 패배로 더 이상 전쟁 수행 의지를 상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