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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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극성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498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분의정국공신에 녹훈되었으며, 이후 장례원판결사, 병조참의, 우승지 등을 역임하고 광성부원군에 책봉되었다. 예조판서, 이조판서, 우찬성, 좌찬성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김안로의 모함으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우의정까지 올랐다. 시호는 충정이다. 학문과 글씨에 능했으나, 사림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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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김극성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98년(연산 4)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헌납, 전적(典籍), 병조정랑, 사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에 녹훈되고 장례원판결사, 병조참의, 우승지를 역임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에 책봉되었다. 1518년(중종 13) 삼공(三公)에 문무 겸비의 인물로 천거되었다.

이후 동지중추부사, 예조참판, 경상우병사, 경상도관찰사,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공조참판으로 정조사(正朝使)에 임명되어 북경을 다녀왔다. 1523년 예조판서, 우참찬, 이조판서,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다시 이조판서, 예조판서로 특진관을 겸하고 우찬성이 되었다. 이후 지중추부사로 물러났다가 다시 예조판서, 대사헌, 우찬성, 좌찬성,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531년(중종 26) 좌찬성에 올랐으나 권신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정광필과 함께 흥덕(興德)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김안로가 죽자 귀양에서 풀려나 우의정에 발탁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2.1. 관직 진출과 중종반정

1498년(연산 4)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헌납, 전적(典籍), 병조정랑, 사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에 녹훈되고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 병조참의, 우승지를 역임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에 책봉되었다.

2.2. 주요 관직 역임

1518년(중종 13) 동지중추부사, 예조참판, 경상우병사, 경상도관찰사,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공조참판으로 정조사(正朝使)에 임명되어 북경을 다녀왔다.

1523년 예조판서, 우참찬, 이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다시 이조판서, 예조판서, 특진관, 우찬성, 지중추부사, 대사헌, 좌찬성,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2.3. 김안로와의 갈등과 유배

1531년(중종 26) 좌찬성에 올랐으나 권신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그 일파에게 모함을 당해 정광필과 함께 흥덕(興德)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김안로가 죽자 귀양에서 풀려났다.

2.4. 유배 이후 복귀와 사망

1531년(중종 26) 권신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그의 일파에게 모함을 당하고 정광필과 함께 흥덕(興德)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1532년 김안로가 죽자 귀양에서 풀려나 우의정에 발탁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3. 평가

비교적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학문이 높고 글씨를 잘 썼으나, 당시 사림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