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홍 (19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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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덕홍은 1938년 평안북도 의주군 출생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군 복무, 무역회사 사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실장을 거쳐 황장엽의 비서를 지냈다. 1997년 황장엽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여 국가정보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고문을 역임했으나 햇볕정책을 비판하여 해임되었다. 이후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11년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에 의한 암살 시도 위협을 받았다. 저서로 《나는 자유주의자이다》가 있다.

김덕홍 (1938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김덕홍
로마자 표기Gim Deok-hong
한자 표기金德弘
가타카나 표기기무 도코
조선글 표기김덕홍
한글 표기김덕홍
인물 정보
출생일1938년 12월 3일
출생지일제 강점기 조선 평안북도 의주
본관수안(遂安)
종교불교
정당무소속
군 복무 정보
군복무조선인민군
학력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평양 김일성종합대학교 정치경제학과
복무 기간1961년 3월 2일 ~ 1974년 3월 31일
계급조선인민군 지상군 중사
근무조선인민군 지상군 예하 륙군 련대
지휘분대장
조선로동당 정보
직책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임기1974년 5월 31일 ~ 1976년 2월 29일
주석김일성 북조선 국가주석
총리김일 북조선 총리
박성철 북조선 총리
직책2로동당 자료연구실 차장
임기21976년 2월 29일 ~ 1981년 4월 30일
주석2김일성 북조선 국가주석
총리2박성철 북조선 총리
리종옥 북조선 총리
경력
경력평양조선려광무역련합총회사 사장
재경 북조선국민주화위원회 전임위원
탈북자 동지회 회장
웹사이트
웹사이트재경 북조선국민주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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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38년 일본 통치하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나, 평안남도 순천군강동군을 거쳐 평양직할시에서 성장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인민군 육군에서 13년간 복무한 후 하사로 전역했다. 려광무역사 사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자료연구실 부실장을 거쳐 황장엽의 비서로 활동했다.

1997년 황장엽과 함께 베이징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하여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왔다.

국가정보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고문을 맡았으나,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다 해임되었다. 2007년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에 취임했다. 2011년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이 포섭한 탈북자를 이용한 암살 시도가 있었으나, 경비 강화로 인해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로 암살 대상을 변경하려다 사전에 체포되었다. 2010년 황장엽 사망 당시 조문을 고려했으나, 2002년부터 소원해진 관계와 2009년 "황원(黃元) 비서는 아직도 주체사상에 미련을 두고 있는 듯하다"는 비난 등으로 인해 방문하지 않았다.

2.1. 북한에서의 삶 (1938년 ~ 1997년)

1938년 일본 통치하의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났다. 평안남도 순천군을 거쳐 강동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평양직할시에 있는 김일성종합대학에 진학했다. 196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평양 김일성종합대학교 정치경제학과학사 졸업하고, 1974년까지 13년간 조선인민군 육군에서 복무했다. 하사로 전역한 후 려광무역사 사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자료연구실 부실장을 거쳐 주체사상의 사상가이자 조선로동당 국제 담당 비서였던 황장엽의 비서가 되었다.

2.2. 대한민국 망명 (1997년)

1997년 황장엽과 함께 일본 강연에 동행했다가, 2월 12일 귀국길에 베이징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했고, 4월 20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2.3. 대한민국에서의 활동 (1997년 ~ 현재)

1997년 망명 후 국가정보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고문을 맡았지만, 2000년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을 비판하여 해임되었다. 2007년 황장엽이 주도하여 탈북자 단체를 통합한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에 취임했다. 대한민국 탈북자 동지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0년 10월 9일 황장엽이 사망했을 때 조문을 하려 했으나 방문하지 않았다. 2002년부터 소원해졌으며, 2009년에는 "황원(黃元) 비서는 아직도 주체사상에 미련을 두고 있는 듯하다"고 비난했다.

3. 황장엽과의 관계

황장엽의 비서로 활동하다가 함께 대한민국으로 망명했다. 1997년 황장엽의 일본 강연에 동행했으며, 2월 12일 귀국길에 베이징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했고, 4월 20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2002년부터 황장엽과 소원해졌으며, 2009년에는 "황원(黃元) 비서는 아직도 주체사상에 미련을 두고 있는 듯하다"고 비난했다. 2010년10월 9일 황장엽이 사망했을 때 조문하지 않았다.

4. 암살 시도 위협

2011년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이 포섭한 탈북자를 이용하여 김덕홍을 암살하려 했으나, 경비 강화로 인해 자유북한운동연합박상학 대표로 암살 대상을 변경하려다 사전에 체포되었다.

5. 저서

我是自由主義者중국어 (2015년, 집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