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선
1. 개요
김삼선은 1960년대 계획된 총 연장 160km의 철도 노선으로, 김천과 진주를 연결할 예정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계획되었으나 여러 차례 무산되었으며, 1965년 박정희 정부의 철도 건설 계획에 포함되어 기공식까지 진행되었으나, 국제부흥개발은행의 경제성 평가와 재원 조달의 어려움으로 1968년경 건설이 백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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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된 철도 노선 -
충남선 (1966년)
충남선은 1966년 기공식을 시작했으나 재원 부족으로 2.6%의 공정률을 보인 채 1968년 건설이 포기된 철도 노선이다. -
취소된 철도 노선 -
탄환열차
탄환열차 계획은 1930년대 말 일본 제국이 만주국 수송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도쿄와 시모노세키를 잇는 고속철도 건설을 목표로 추진한 프로젝트로, 태평양 전쟁 발발로 중단되었으나 일부는 도카이도 신칸센 건설에 활용되어 '신칸센'이라는 용어의 기원이 되었다. -
대한민국의 철도 노선 -
경원선
경원선은 일제강점기에 개통된 서울과 원산을 잇는 철도 간선으로, 광복 후 남북 분단으로 인해 현재는 남한 구간만 운행 중이며, 남북 관계 개선에 따라 북한 구간 운행 재개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
대한민국의 철도 노선 -
병점기지선
병점기지선은 경기도 화성시 병점역과 오산시 서동탄역을 잇는 2.2km의 한국철도공사 노선으로,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운행되며, 향후 동탄인덕원선 및 수도권고속철도와의 연결이 추진 중이다.
2. 노선 정보
1960년대의 계획에 따른다.
* 노선 거리: 160km
* 궤간: 1435 mm (표준궤)
* 역 수: (미정)
3. 역사
일제 강점기에 김천과 삼천포를 잇는 철도 계획이 등장하여 여러 차례 논의되었으나, 1944년 공사가 중단되기까지 민령 터널 굴착 등 일부 진척이 있었다. 광복 이후 박정희 정부에서 다시 추진되었으나, 경제성 문제로 1968년경 건설이 백지화되었다.
| 시기 | 내용 |
|---|---|
| 1927년 | 김천-삼천포 간 철도 노선 실측 |
| 1936년 | 연선의 지역 유지들이 왕십리·이천·충주·김천·진주·삼천포를 거치는 경삼철도(京三鐵道) 부설 요구 |
| 1941년 6월 | 대전의 지역 단체에서 대삼선 부설 요구 |
| 1941년 | 대전-삼천포 간 대삼선 확정, 김삼선은 대삼선에 통합 |
| 1941년 9월 | 대삼선 진주-삼천포 간 노반 공사 착공 |
| 1943년 말 | 대삼선 진주-삼천포 간 노반 공사 준공 |
| 1943년 8월 15일 | 대삼선 민령터널 착공 |
| 1943년 9월 | 삼천포공사구·장계공사구를 진주건설사무소 소관으로 편입 |
| 1943년 11월 하순 | 대삼선 대전 쪽 도갱 굴삭 착수 |
| 1944년 9월 10일 | 대삼선 공사 중지 |
| 1945년 1월 6일 | 진주건설사무소 장계공사구 폐쇄 |
| 1965년 | 철도 건설 7개년 계획에 김삼선 포함 |
| 1966년 11월 9·10일 | 김삼선 기공식 |
| 1968년 경 | 김삼선 건설 백지화 |
3.1. 일제 강점기
1927년 김천-삼천포 간 철도 노선이 실측되었으나, 착공되지는 않았다. 1936년에는 연선의 지역 유지들이 왕십리·이천·충주·김천·진주·삼천포를 거치는 경삼철도(京三鐵道) 부설을 요구하였고, 1941년 6월에는 대전의 지역 단체에서 대삼선 부설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결국 경부선과 중앙선에 이은 제3의 종관축으로 대삼선이 결정되었다.
1941년 대전에서 금산·진안·장계·함양·청산·개양을 지나 삼천포로 이어지는 212km 길이의 대삼선이 최종 확정되어, 김천에서 진주로 향하는 172km의 김삼선은 대삼선에 통합되었다. 1943년까지 노반이 준공된 진삼선 구간과는 달리 민령을 관통하는 약 5km 길이의 터널은 난공사가 예상되어 남쪽의 금당리와, 북쪽의 오동리를 잇는 8.2km 구간의 노반 공사가 미리 착공되었다. 대전 쪽 갱구·진주 쪽 작업갱·사갱을 716m 굴착하고 일부 구간의 산지를 절개하였으나, 1944년 결전비상조치법이 발효되고 공사가 중단되어 대전 쪽 갱구 93m를 보안을 위하여 다시 메웠다. 그 당시 총 공사율은 토공이 41%, 터널이 8%, 전체적으로는 13%에 불과하였다.
3.2. 박정희 정부
1965년 철도 건설 7개년 계획에 김천~거창~합천~함양~산청~진주를 잇는 김삼선이 포함되었다. 이 노선은 김천역에서 분기하여 진주역까지 연결된 후, 개양역에서 진삼선과 직결될 계획이었다. 특히 우두령을 통과하는 5,060m의 장대 터널이 계획되었으며, 무연탄, 비료, 시멘트의 남해안 직송과 연안 사업 개발이 건설 목적으로 제시되었다.
1966년 11월, 김천과 진주 양쪽에서 박정희 대통령 주최로 김삼선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은 김삼선의 경제성에 대해 회의적인 평가를 내렸고, 이로 인해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1년 후 공정률은 0.8%에 불과했다. 결국 1968년경 공사가 중지되고 건설이 포기되었다. 김삼선은 백남억과 구태회 의원이 정치적으로 추진한 노선이기도 하였다.
4. 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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