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 (야구 선수)
1. 개요
김상태는 LG 트윈스 소속으로 활동했던 전 야구 선수이다. 덕수상업고등학교 시절 유망한 투수로 활약하며 황금사자기 우수투수상과 봉황대기 최우수선수상을 받았으며, 중앙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국가대표로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1999년 LG 트윈스에 입단했으나, 이후 어깨 부상 등으로 인해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여러 팀을 거쳐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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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카페얀은 미국과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으며, 메이저 리그와 KBO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15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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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야구 선수)
이상민은 2013년 NC 다이노스에서 데뷔하여 넥센 히어로즈를 거쳐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하는 대한민국 야구 선수이며, 2024년 기준 통산 194경기 출장, 5승 5패, 1세이브, 24홀드를 기록하고, 배우자는 최송이이다.
2. 아마추어 시절
덕수상고 시절에는 초고교급 투수였다. 1994년 덕수상고 3학년 때는 팀의 에이스로서 황금사자기 우수투수상과 봉황대기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이후 중앙대학교에 입학하여 에이스 노릇을 했고 대학 시절에는 국가대표로 이탈리아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3. 프로 선수 시절
김상태는 1999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310을 받고 입단했다. 당시 LG는 김태원, 김용수, 이상훈 등 주축 투수들이 은퇴하거나 해외로 진출하여 투수진 리빌딩이 절실했다. 김상태는 190cm, 100kg이 넘는 체격에 150km/h에 가까운 강속구를 던져 에이스감으로 주목받았으나, 1999년 9승 15패, 평균자책점 6.17로 불안정한 투구를 보였다. 이후 아마 시절 혹사로 인한 어깨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고, 2001년에는 15경기 3패, 평균자책점 4.91의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3.1. LG 트윈스 시절
LG Twins영어 시절 [서승화], [이정길], [이동현(1983)|이동현]과 함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LG의 가장 큰 문제점을 보여준 선수였다.
1999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310을 받고 입단했다. 당시 LG는 [김태원(야구)|김태원], [김용수(야구)|김용수], [이상훈(야구)|이상훈] 등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투수들이 대거 은퇴했거나 해외로 진출했기 때문에 마운드의 리빌딩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심재학]을 투수로 전향시킬 정도로 LG의 투수진은 좋지 못했다. 190cm와 100kg이 넘는 거구에 150km/h 근처의 강속구를 가진 김상태는 장래 에이스감으로 점찍혀서 많은 기회를 보장받았다. 당시 [이광은] 감독이 총애했다고도 한다. 1999년 1군 31경기 147⅓이닝 9승 15패, 방어율 6.17을 기록하여 투구가 매우 불안정했다. 이듬 해에는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2001년에는 15경기 22이닝 3패, 평균자책점 4.91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아마 시절의 혹사로 인해 어깨 수술을 받았다.
3.2. 방출 이후
김상태는 팔꿈치 수술과는 달리 어깨 수술 후 예후가 좋지 않아 2군에 머물렀고, 2004년 자유계약선수로 풀려났다. 이후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에 입단했으나 1군에 오르지 못했다. 혹사로 인한 어깨 부상 외에도 자기 관리에 소홀해 재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알려져 있다.
2009년 다시 LG 트윈스에 입단했지만, 결국 어느 팀에서도 1군에 다시 오르지 못하고 은퇴했다. 김상태는 LG 1차 지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4. 선수 평가 및 비판
LG 트윈스영어 소속의 야구 선수였다. 서승화, 이정길, 이동현과 함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LG의 가장 큰 문제점을 보여준 선수였다.
1999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310을 받고 입단했지만, 아마 시절 혹사로 인한 어깨 수술과 본인의 자기 관리 문제로 재활에 소홀하여 성공하지 못했다. 1999년 1군 31경기 147⅓이닝 9승 15패, 방어율 6.17로 투구가 매우 불안정했고, 2001년에는 15경기 22이닝 3패 평균자책점 4.91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어깨 수술 후에도 2군에 머물다가 2004년 자유계약선수로 풀려 두산과 SK에 입단했으나 1군에 오르지 못했다. 2009년 다시 LG에 입단했지만, 결국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은퇴했다.
LG 1차 지명의 실패 사례로 대표적으로 언급되며, 최경환, 김광희, 박병호 등 실패한 지명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5. 통산 기록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빨간 글씨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기록
6. 출신 학교
* 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
* 중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