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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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승훈은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사제로서,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이다. 신당동 성당 보좌신부, 서울소신학교 라틴어 교사 등을 역임했으며, 폐결핵 투병 중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의구현사제단에 참여하여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으며,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했다. 이후 북한을 방문하여 남북 화해를 위해 노력했으며, 민주화 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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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훈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김승훈 |
| 로마자 표기 | Gim Seung-hun |
| 직책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천주교인권위원회 고문 |
| 교회 | 신당동 성당, 혜화동 성당, 아현동 성당, 동두천 성당, 태종대 공소, 동대문 성당, 홍제동 성당, 왕십리 성당, 여의도동 성당 |
| 사제 서품 | 1962년 12월 21일 서울대교구 |
| 출생일 | 1939년 7월 6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평안남도 진남포 |
| 선종일 | 2003년 9월 2일 |
| 선종 장소 | 서울 여의도 성모 병원 |
| 안장지 | 용인 천주교 성직자 묘지 |
| 국적 | 대한민국 |
| 종교 | 천주교 |
| 부모 | 김구봉(부), 이신덕(모) |
| 형제자매 | 김승호 (형), 김정 (동생), 김승겸(동생), 김영희 (동생), 김보성 (동생) |
| 학력 | 성신대학 졸업 (= 현 가톨릭 대학교) |
| 기타 정보 | |
2. 생애
김승훈은 평안남도 진남포의 재력가이자 항일 운동가를 돕던 이경모의 외손자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이신덕은 대범하고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3] 1962년 12월 신당동 성당 보좌신부로 첫 미사를 집전했으며,[3] 1963년 9월 25일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을 잃었으나 20여일 만에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연탄가스 신부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3] 1964년 말 서울소신학교 라틴어 교사로 발령받았다.[3] 그는 호방하고 따뜻한 성격을 지녔지만, 말수가 적고 투박한 말투 때문에 오해를 받기도 했다.[3]
서울 혜화동 성당, 아현동 성당, 경기도 동두천 성당 등에서 사목 활동을 하던 중 폐결핵을 앓게 되었고, 갈멜수녀원과 부산 태종대 공소에서 요양하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사회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3] 그는 태종대를 '내 인생에서 하나의 징검다리 같은 곳'이라고 회상했다.[3] 특히 깡패에게 억울하게 맞은 노점상 할아버지가 오히려 경찰에 구속되는 사건을 보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3] 원주교구에서 5.16 장학회와 원주문화방송 관련 부정 규탄대회가 시작되자, 태종대 공소에서도 할아버지 구속에 항의하는 기도회를 매일 저녁 열었다.[3] 1972년 1월, 건강을 회복한 김승훈은 서울 신림동 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았다.[3]
1962년부터 3년간 계속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사회 정의와 평화 실현을 위해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장했다.[3] 한국 천주교회도 1966년 5월 〈바티칸공의회와 한국 교회〉라는 주교단 사목교서를 통해 이를 적극 지지했는데,[3] 이는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체제 하에서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3]
2. 1. 초기 생애와 사제 서품 (1933년 ~ 1962년)
김승훈은 평안남도 진남포의 재력가이자 항일 운동가를 돕던 이경모의 외손자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이신덕은 대범하고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3] 1962년 12월 신당동 성당 보좌신부로 첫 미사를 집전했으며,[3] 1963년 9월 25일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을 잃었으나 20여일 만에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연탄가스 신부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3] 1964년 말 서울소신학교 라틴어 교사로 발령받았다.[3] 그는 호방하고 따뜻한 성격을 지녔지만, 말수가 적고 투박한 말투 때문에 오해를 받기도 했다.[3]서울 혜화동 성당, 아현동 성당, 경기도 동두천 성당 등에서 사목 활동을 하던 중 폐결핵을 앓게 되었고, 갈멜수녀원과 부산 태종대 공소에서 요양하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사회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3] 그는 태종대를 '내 인생에서 하나의 징검다리 같은 곳'이라고 회상했다.[3] 특히 깡패에게 억울하게 맞은 노점상 할아버지가 오히려 경찰에 구속되는 사건을 보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3] 원주교구에서 5.16 장학회와 원주문화방송 관련 부정 규탄대회가 시작되자, 태종대 공소에서도 할아버지 구속에 항의하는 기도회를 매일 저녁 열었다.[3] 1972년 1월, 건강을 회복한 김승훈은 서울 신림동 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았다.[3]
1962년부터 3년간 계속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사회 정의와 평화 실현을 위해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장했다.[3] 한국 천주교회도 1966년 5월 〈바티칸공의회와 한국 교회〉라는 주교단 사목교서를 통해 이를 적극 지지했는데,[3] 이는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체제 하에서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3]
2. 2. 연탄가스 중독과 투병 (1963년 ~ 1971년)
2. 3. 사회 참여와 정의구현사제단 활동 (1972년 ~ 1979년)
김승훈은 1962년 12월 신당동 성당 보좌신부로 첫 미사를 집전했다.[3] 1963년 9월 25일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을 잃었으나 20여일 만에 회복하여 ‘연탄가스 신부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3] 1964년 말 서울소신학교 라틴어 교사로 발령받았다.[3]부산 태종대 공소에서 휴양하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원주교구에서 5.16 장학회와 원주문화방송 관련 부정 규탄대회가 열리자 태종대 공소에서도 항의 기도회를 열었다.[3] 1972년 1월, 건강을 회복하고 서울 신림동 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았다.[3]
1962년부터 3년간 계속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사회 정의와 평화 실현을 위해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장했고, 한국 천주교회도 이를 지지했다.[3] 1974년 7월 6일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면서, 1974년 9월 23일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정의구현사제단이 공식 출범했고 김승훈도 참여했다.[3]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이 멸망하고 긴급조치 9호가 발표된 후,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구속자 석방과 3.1정신 실현을 위한 신구교 합동미사에서 김승훈은 긴급조치 9호 철폐와 유신정권 종식을 주제로 강론했다.[3] 문동환 목사의 설교와 이우정 교수의 구국 선언이 이어졌다.[3] 구국 선언에 서명했던 함석헌, 함세웅 등 11명은 구속되고, 김승훈 등 7명은 불구속 입건되었는데, 이후 사제단의 공백을 메우게 되었다.[3]
1979년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구속되었다.[3]
2. 4. 민주화 운동 투신과 6월 항쟁 (1980년 ~ 1987년)
김승훈은 외할아버지 이경모가 평안남도 진남포 재력가로 항일 운동가를 돕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3] 1962년 12월 신당동 성당 보좌신부로 첫 미사를 집전했고, 1963년 9월 25일 연탄가스를 마시고 의식을 잃었으나 20여일 만에 깨어나 ‘연탄가스 신부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3] 1964년 말에는 서울소신학교 라틴어 교사로 발령났다.[3]서울 혜화동 성당, 아현동 성당, 경기도 동두천 성당으로 부임지를 옮기는 동안 폐결핵에 걸렸고, 갈멜수녀원과 부산 태종대 공소에서 요양하며 사회 문제에 눈을 뜨게 된다.[3] 원주교구에서 5.16 장학회와 원주문화방송과 관련한 부정 규탄대회가 시작되자, 태종대 공소에서도 할아버지 구속에 항의하는 기도회를 열었다.[3]
1962년부터 3년간 계속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사회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장했고, 한국 천주교회도 이를 적극 지지했다.[3] 1974년 7월 6일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면서 1974년 9월 23일 정의구현사제단이 공식 출범했고, 김승훈도 참여한다.[3]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이 멸망하고 긴급조치 9호가 발표된 후,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구속자 석방과 3.1정신 실현을 위한 신구교 합동미사에서 김승훈은 긴급조치 9호 철폐, 유신정권 종식을 주제로 강론했다.[3] 함석헌, 함세웅 등이 구속되고 김승훈은 불구속 입건되었는데, 사제단 최연장자인 신현봉과 실질적인 지도자 함세웅이 구속되어 생긴 공백을 자연스레 메우게 되었다.[3]
1979년에는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구속되고,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과 관련되어 54일간 구금되었으며, 1982년 반미성명서 사건으로 구속되었다.[3] 1985년 민주제도쟁취 국민선언 연명 및 발표를 하고, 민주화실천가족운동 협의회 고문을 맡았다.[3]
1987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7주기 기념미사 중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박종철군 고문 치사사건은 조작되었다”는 제목으로 성명을 발표하여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조작된 사실을 밝혀 1987년 6월 항쟁이 시작된 사실로 유명하다.[4]
2. 5. 방북과 남북 화해 노력 (1988년 ~ 2003년)
김승훈은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를 역임하였다.[4] 1998년에는 장충성당 10주년 기념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사제 8명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다.3. 사후
장례는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집전으로 장례미사에 이어 민주사회장으로 치뤄졌다. 문규현 신부가 호상인사를 하고, 고은 시인이 추모시를 읽었다. 서울대교구 용인 천주교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리스도정신을 바탕으로 노동·인권운동 및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공을 기려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4. 약력
- 천주교인권위원회 고문이다.[5]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를 맡았다.
- 지학순주교기념사업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박종철기념사업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 천주교조작간첩사건 진상규명위원장을 맡았다.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후원회장을 역임하였다.[6]
- 민주개혁국민연합 감사를 맡았다.
- 노동일보 종교계 담당이사를 역임하였다.
-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 농민보호를 위한 범국민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역임하였다.
5. 저서
김승훈의 저서로는 1999년 11월 29일 빛두레에서 출판한 강론모음집인 "당신께서 다 아십니다"가 있다.
참조
[1]
뉴스
천주교 김승훈 신부, 숙환으로 별세
http://legacy.www.ha[...]
한겨레
2003-09-02
[2]
웹인용
고(故) 김승훈 신부에 국민훈장모란장 추서
http://www.mct.go.kr[...]
문화체육관광부
2003-09-02
[3]
웹인용
신부님, 우리 신부님 김승훈
http://www.catholicn[...]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3-03-08
[4]
뉴스
꽃이 되신 적이 없는 분, 김승훈 신부
http://www.catholicn[...]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3-03-08
[5]
뉴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초대 대표 김승훈신부 선종
https://news.naver.c[...]
[6]
뉴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일행 평양도착
https://news.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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