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 (1897년)
1. 개요
김우진은 1897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난 극작가로, 1924년 와세다 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0년대 극예술협회와 동우회순회연극단을 주도하며 표현주의 문예이론을 소개했다. 그는 윤심덕과 불륜 관계를 맺고 1926년 쓰시마 해협에서 함께 자살했으며, 그의 문학적 업적은 사후에 알려졌다. 김우진과 윤심덕의 이야기는 영화, 드라마, 소설 등으로 제작되었다.
| 이름 | 김우진 |
|---|---|
| 출생명 | 김우진 |
| 출생일 | 1897년 9월 19일 |
| 출생지 | 전라남도 장성군 |
| 사망일 | 1926년 8월 4일 |
| 사망지 | 대한해협 |
| 국적 | 조선 |
| 직업 | 극작가 시인 연극이론가 |
| 필명 | 초성(焦星) 수산(水山) |
| 교육 | 구마모토 농업학교 와세다대학교 |
|---|
| 활동 기간 | 1924년 - 19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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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 | 정점효(鄭點孝) |
|---|---|
| 부모 | 父 김성규(金星圭) |
| 자녀 | 김방한(金芳漢) |
| 주요 작품 | 《정오(正午)》 《이영녀(李永女)》 《산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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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살한 사람 -
윤심덕
윤심덕은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이자 배우로, 극작가 김우진과의 비극적인 동반 자살과 함께 발매된 '사의 찬미'로 유명하며, 그녀의 삶은 다양한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한국의 자살한 사람 -
호동
호동은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로, 낙랑공주와의 혼인, 자명고 파괴, 왕위 계승 다툼을 겪고 자살했으며, 다양한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익사 자살한 사람 -
이호성 (1967년)
이호성은 해태 타이거즈의 4번 타자로 한국시리즈 4회 우승에 기여하고 골든글러브를 2회 수상한 야구 선수였으나, 은퇴 후 사기 혐의로 구속되고 내연녀와 세 딸을 살해한 혐의로 수배 중 자살한 살인범이다. -
익사 자살한 사람 -
윤심덕
윤심덕은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이자 배우로, 극작가 김우진과의 비극적인 동반 자살과 함께 발매된 '사의 찬미'로 유명하며, 그녀의 삶은 다양한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극작가 -
송영 (극작가)
송영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극작가로, 카프 계열 연극인으로 등단하여 노동 운동 풍자 작품을 발표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 위원장을 지냈으며, 김일성 항일 무장 투쟁을 형상화한 희곡으로 알려졌으나 한설야 숙청 시기에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것으로 보아 복권된 것으로 추정된다. -
일제강점기의 극작가 -
주요한
주요한은 일제강점기 시인이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며, 친일 행위로 인해 논란이 있으며, 국회의원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2. 생애와 경력
김우진은 전라도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20년대에는 '극예술협회'와 '동우회순회연극단'을 주도했고, 서양의 표현주의 문예이론을 번역하여 소개했다.
일본 유학 중 소프라노 윤심덕을 만나 불륜 관계를 맺었다.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경, 윤심덕과 함께 쓰시마 해협에서 관부연락선 ‘덕수마루’에 투신하여 2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두 연인의 자살 소식은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김우진의 문학적 업적은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알려졌고 1983년에 출판되었다. 그의 방대한 서구 문학 지식과 서구 철학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이 주목받았다.
2.1. 유년 시절과 교육
김우진은 1897년 9월 19일 대한제국 전라남도 장성에서 무안군 감리였던 김성규(父)와 순천 박씨(母)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우진은 당시 조선 왕조의 전라도에서 거대한 토지 소유주 집안 출신이었다.
목포공립보통학교(현 목포북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구마모토 농업학교(현 구마모토현립 구마모토농업고등학교)를 거쳐 1924년 와세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그는 와세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연극 분야의 경력을 쌓기 위해 도쿄로 갔다. 김우진은 고향에 아내와 자녀가 있었다.
2.2. 연극 활동과 윤심덕과의 만남
김우진은 와세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연극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도쿄로 갔다. 김우진은 고향에 아내와 자녀가 있었다.
일본에서 김우진은 소프라노 윤심덕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불륜 관계를 맺었다. 김우진은 1920년대에 ‘극예술협회’와 ‘동우회순회연극단’을 주도했으며, 서양의 표현주의 문예이론을 번역하여 소개했다.
2.3. 죽음
김우진은 윤심덕과 1926년 시모노세키발 부산행 관부연락선 덕수마루에서 대한해협에 투신하여 2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들의 자살 소식은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3. 사후
김우진과 윤심덕의 이야기는 여러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 1991년 김호선 감독이 연출하고 장미희가 주연을 맡은 영화 《사의 찬미》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한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1991년 청룡영화상과 춘사영화예술상에서 수상하였다. 2018년에는 《사의 찬미》라는 제목의 미니 텔레비전 시리즈도 제작되었다. 한소진이 쓴 《사의 찬미》(In Praise of Death)라는 제목의 책도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4. 유산
김우진과 윤심덕의 이야기는 영화, 드라마, 책으로 만들어졌다. 1991년 김호선 감독, 장미희 주연의 영화 《사의 찬미》가 개봉되어 대한민국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2018년에는 드라마 《사의 찬미》가 제작되었고, 한소진의 책 《사의 찬미》도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4.1. 영화
김우진과 윤심덕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91년에 김호선 감독이 연출하고 장미희가 주연을 맡은 사의 찬미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한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1991년 청룡영화상과 춘사영화예술상에서 수상하였다. 2018년에는 《사의 찬미》라는 제목의 미니 텔레비전 시리즈도 제작되었다. 한소진이 쓴 《사의 찬미》(In Praise of Death)라는 제목의 책도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4.2. 드라마
김우진과 윤심덕의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1991년에 개봉된 사의 찬미는 김호선 감독이 연출하고 장미희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한 수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1991년 청룡영화상과 춘사영화예술상에서 수상하였다. 2018년에는 사의 찬미라는 제목의 미니 텔레비전 시리즈도 제작되었다.
5. 주요 작품
* 〈정오(正午)〉
* 〈이영녀(李永女)〉
* 〈산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