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익
1. 개요
김풍익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서 복무하고 육군 소령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전차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군인이다.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육군포병학교, 육군보병학교를 졸업했다. 한국 전쟁 발발 후 육군포병학교 제2교도대대 대대장으로 의정부 전선에서 북한군 전차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여 육군 중령으로 추서되고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육군포병학교에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의정부 축석령에 전적비가 세워졌다. 2022년에는 K105A1 자주포의 별칭으로 그의 이름을 따 '풍익'으로 제정되었다.
-
1921년 출생 -
낸시 레이건
낸시 레이건은 배우로 활동하다 로널드 레이건과 결혼하여 캘리포니아 주지사 부인과 영부인으로 활동하며 백악관 개조, 패션, 마약 퇴치 캠페인을 주도했고 남편의 정치 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2016년에 사망했다. -
1921년 출생 -
진의종
진의종은 일제강점기 홋카이도청 농무과장을 거쳐 대한민국 상공부 차관, 보건사회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며,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
을지무공훈장 수훈자 -
백선엽
백선엽은 일제강점기 만주군에서 복무하고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육군 대장까지 오른 군인으로, 다부동 전투 등을 지휘했으며 5·16 군사정변 이후 외교관과 장관을 역임하다가 2020년에 사망했다. -
을지무공훈장 수훈자 -
윤필용
윤필용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으로, 군 요직을 거쳐 수도경비사령관을 역임했으나 윤필용 사건으로 강제 예편된 후 한국도로공사 사장, 한국담배인삼공사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윤필용 사건은 박정희 정권 말기 군 내부 권력 암투와 신군부 세력의 등장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
육군사관학교 동문 -
김용현 (군인)
김용현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대통령경호처장과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2024년 12월 10일 내란 혐의로 구속되었다. -
육군사관학교 동문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2. 학력
* 1936년 4월 경성 선린고등상업학교 입학
* 1941년 3월 경성 선린고등상업학교 졸업
* 1948년 8월 육군사관학교 특7기 졸업
* 1949년 12월 육군포병학교 졸업
* 1950년 2월 육군보병학교 졸업
3. 생애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1936년 4월 5년제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여 1941년 3월 31일 졸업했다. 이후 1944년 12월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광복군에서 부사관 하사로 복무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사관학교 제7기 특임 과정을 거쳐 1948년 10월 12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950년 5월 육군 소령으로 진급하고 육군포병학교 제2교도대대 대대장으로 부임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의정부 전투에 참전하여 1950년 6월 26일 조선인민군의 T-34 전차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사후 1950년 8월 24일 육군 중령으로 1계급 특진되었고, 같은 해 12월 30일 을지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1980년 6월 25일에는 육군포병학교에 그의 동상이 건립되었고, 서울특별시 동작동 국립현충원 유패봉안소에 유패가 봉안되었다. 1988년 10월 25일에는 전사 장소인 의정부 축석령에 전적비가 세워졌다. 1995년 6월에는 전쟁기념사업회의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다. 2022년 6월에는 K105A1 자주포의 별칭이 그의 이름을 딴 풍익으로 제정되었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석환(金奭煥) 씨가 있다.
3.1. 군 복무
1944년 12월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광복군에서 부사관 하사로 복무하다가 광복군을 떠났다. 이후 1948년 8월 17일 육군사관학교 제7기 특임으로 입교하여 군사 교육과 훈련을 받고 1948년 10월 12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1950년 5월 1일 육군 소령으로 진급했고, 5월 5일에는 육군포병학교 제2교도대대 대대장으로 부임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작전명령 제95호에 따라 제2교도대대는 6월 26일 새벽 1시에 제2사단에 배속되어 서울 용산동 본부를 출발해 의정부 전선으로 향했다. 김풍익 소령은 1포대를 동두천 방면에, 제3포대를 송우리 부근에, 제2포대를 의정부 북방 25km 지점인 금오리에 배치하고 자일리 부근 전선에 집중 포격을 가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군이 사용하던 구형 105mm M3 야포는 원거리에서 발사할 경우 조선인민군의 T-34 전차의 전진을 막기에는 화력이 부족했다.
이에 김 소령은 적 전차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야포로 직접 조준하여 사격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금오리에 배치된 제2포대 진지로 가서 전포대장 최진식 중위에게 기준포를 앞으로 끌어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기준포가 고장으로 움직이지 않자, 6번포를 대신 끌어내 포대장 장세풍 대위와 포대원들을 이끌고 적진으로 향했다. 이들은 자일리 서남쪽 1km 지점까지 전진했다. 6월 26일 오전 9시 40분경, 조선인민군의 선두 전차가 산모퉁이를 돌아 50m 전방까지 접근했다. 김 소령이 이끄는 6번포 포반원들은 직접 조준 사격으로 첫 번째 포탄을 발사하여 명중시켰다. 그러나 두 번째 포탄을 장전하는 순간, 적 전차에서 발사된 포탄에 맞아 김 소령을 포함한 포반원 전원이 현장에서 전사했다.
3.2. 한국 전쟁 참전과 전사
1950년 5월 1일 육군 소령으로 진급하였고, 같은 해 5월 5일 육군포병학교 제2교도대대 대대장으로 부임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작전명령 제95호에 따라 제2교도대대는 6월 26일 새벽 1시에 대한민국 육군 제2사단에 배속되었다. 김풍익 소령은 부대를 이끌고 서울 용산동 본부를 출발하여 의정부 전선으로 향했다. 그는 제1포대를 동두천 방면에, 제3포대를 송우리 부근에, 제2포대를 의정부 북방 25km 지점인 금오리에 배치하고, 자일리 부근 전선에 집중 포격을 가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육군이 보유한 구형 105mm M3 야포의 화력으로는 조선인민군의 T-34 전차의 남하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에 김 소령은 적 전차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야포의 직접 조준 사격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즉시 금오리에 배치된 제2포대로 달려가 전포대장 최진식 중위에게 기준포를 앞으로 끌어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기준포가 고장으로 움직이지 않자, 6번포를 대신 끌어내어 포대장 장세풍 대위와 포대원들을 이끌고 직접 적진으로 향했다. 김 소령과 포대원들은 자일리 서남쪽 1km 지점까지 포를 끌고 전진했다.
1950년 6월 26일 오전 9시 40분경, 조선인민군의 선두 전차가 산모퉁이를 돌아 50m 전방까지 접근했다. 김 소령이 이끄는 6번포 포반원들은 즉시 직립 조준사격으로 제1탄을 발사하여 선두 전차를 명중시켰다. 그러나 제2탄을 장전하는 순간, 적 전차에서 발사된 직사탄이 포탄에 명중하면서 김풍익 소령을 비롯한 포반원 전원이 현장에서 전사하였다.
4. 사후 추서 및 기념
사후 1950년 8월 24일 육군 중령으로 1계급 특진되었고, 같은 해 12월 30일에는 을지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1980년 6월 25일에는 육군포병학교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으며, 같은 날 동작동 국립현충원 유패봉안소에 그의 유패가 봉안되었다.
1988년 10월 25일에는 그가 전사한 장소인 경기도 의정부시 축석령에 전적비가 건립되었다. 1995년 6월에는 전쟁기념사업회가 선정한 '이달의 호국 인물'(전쟁영웅)이 되었다.
2022년 6월에는 K105A1 자주포의 별칭이 그의 이름을 딴 풍익으로 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