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토경고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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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가토 경고번역은 1274년 몽골의 일본 침략 이후 가마쿠라 막부가 나가토 지역의 고케닌들에게 몽골의 재침에 대비해 병력 동원 및 방어 시설 수리를 담당하도록 한 제도이다. 나가토 지역 고케닌만으로는 부족하여 주변 지역으로 확대되었으며, 1275년에는 산요도의 스오, 아키, 빈고 지역, 1276년에는 하리마, 비젠, 빗추, 미마사카 지역과 난카이도 6개 구니까지 확대되었다. 이 제도는 2차 일본 원정 이후에도 유지되었으며, 가마쿠라 막부 멸망 후에도 일부 존속되었다.
제1차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일본명 文永の役|분에이노에키일본어) 이후, 가마쿠라 막부는 몽골 제국의 재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나가토(長門) 지역의 방어를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막부는 나가토 지역의 고케닌(御家人, 막부 직속 무사)들에게 현지에 머물며 교대로 군사적 방비(병력 동원, 방어 시설 수리, 해안 경비 등)를 담당하는 警固番役|케이코반야쿠일본어(경고번역)을 명령했다.
2. 나가토 경고번역
1275년 6월 7일, 막부는 나가토 지역의 고케닌만으로는 방어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인근 스오(周防)와 아키(安芸)의 고케닌들에게도 나가토 경고번역 동참을 명령했으며, 곧이어 빈고(備後)까지 동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동원된 이들은 나가토 단다이(長門探題) 등의 지휘 아래 순번을 정해 경고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1276년에는 동원 범위가 더욱 확대되어 산요도의 나머지 구니들과 난카이도 소속 구니들의 고케닌, 그리고 기존 동원 지역 내 구게(公家)나 지샤(寺社) 영지에 속한 비(非)고케닌 무사들까지 동원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제2차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일본명 弘安の役|고안노에키일본어) 이후에도 유지되었으며, 일부는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한 뒤에도 존속되었다.
2. 1. 설치 배경
제1차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일본명 文永の役|분에이노에키일본어) 이후, 가마쿠라 막부는 몽골 제국의 재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적 준비를 강화했다. 막부는 먼저 나가토 지역의 고케닌(御家人, 막부 직속 무사)들에게 현지 방어를 위한 警固番役|케이코반야쿠일본어(경고번역)을 명령했다. 이는 고케닌들이 교대로 병력을 동원하고 방어 시설을 수리하며 해안 경비를 서는 임무였다.
그러나 나가토 지역의 고케닌만으로는 방어 병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막부는 동원 범위를 점차 확대했다. 겐지 원년 5월 12일(1275년 6월 7일)에는 나가토와 같은 산요도에 속한 인근 스오(周防)와 아키(安芸)의 고케닌들에게도 나가토 경고번역 동참을 명령했고, 8일 뒤에는 빈고(備後)의 고케닌들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나가토 단다이(長門探題) 등의 지휘 아래 순번을 정해 교대로 해안 및 군사적 요충지를 경비했다.
동원 범위는 계속 넓어져, 겐지 2년 8월 24일(1276년 10월 3일)에는 산요도의 나머지 4개 구니(하리마, 비젠, 빗추, 미마사카)와 난카이도 소속 6개 구니의 고케닌들에게도 나가토 경고번역 동원령이 내려졌다. 더 나아가, 이미 동원 대상이었던 나가토 등을 포함한 지역 내 구게(公家, 조정 귀족)나 지샤(寺社, 사찰 및 신사) 소유 영지(本所領|혼쇼료일본어, 혼쇼레이)에 속한 비(非)고케닌 무사들까지 동원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아키 국의 슈고(守護, 지방관)였던 다케다 노부토키(武田信時)에게 내려진 御教書|미교쇼일본어(어교서, 막부 명령서)나, 이즈모 다이샤(出雲大社) 소속 사람들이 나가토의 원구방루(元寇防塁, 몽골 침입 방어용 석축) 수축에 동원되었다는 기록(『이즈모 다이샤 천가문서』)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나가토 경고번역의 동원 대상 지역 확대 과정을 정리한 표이다.
시기 | 동원 대상 지역 (구니) | 비고 |
---|---|---|
1275년 6월 | 나가토 | 최초 명령 |
1275년 6월 | 스오, 아키 | 1차 확대 (산요도) |
1275년 6월 | 빈고 | 1차 확대 (산요도) |
1276년 10월 | 하리마, 비젠, 빗추, 미마사카 | 2차 확대 (산요도 나머지) |
1276년 10월 | 난카이도 6개 구니 | 2차 확대 (난카이도) |
1276년 이후 | 나가토 등 기존 동원 지역 내 구게(公家)・지샤(寺社) 소유 영지(本所領|혼쇼료일본어) 소속 비(非)고케닌 무사 | 동원 대상 신분 확대 |
이렇게 구축된 나가토 경고번역 체제는 제2차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일본명 弘安の役|고안노에키일본어) 이후에도 유지되었으며, 일부는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한 뒤에도 존속되었다.
2. 2. 대상 지역 및 동원 대상 확대
제1차 일본 원정(분에이의 역) 이후, 가마쿠라 막부는 나가토(長門) 지역의 고케닌(御家人)만으로는 몽골의 재침공에 대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나가토 지역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동원 대상 지역과 대상을 점차 확대했다.처음에는 나가토 지역의 고케닌에게만 부과되었던 경고번역(警固番役)은 겐지(建治) 원년(1275년 6월 7일)에 이르러, 같은 산요도(山陽道)에 속한 인근 스오국(周防)과 아키국(安芸)의 고케닌에게도 확대되었다. 8일 뒤에는 빈고국(備後)의 고케닌에게도 같은 명령이 내려졌다. 이들은 나가토 단다이(長門探題)의 지휘 아래 순번을 정해 교대로 해안 경비와 방어 시설 수리를 담당했다.
겐지 2년(1276년 10월 3일)에는 동원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산요도의 나머지 4개 구니(하리마, 비젠, 빗추, 미마사카)와 난카이도(南海道) 소속 6개 구니의 고케닌들도 나가토 경고번역에 동원되었다. 또한, 이미 동원 대상이었던 나가토 등을 포함한 여러 구니에 소재한 구게(公家)나 지샤(寺社) 소유 영지(장원)에 속한 비(非)고케닌 무사들까지 동원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동원 확대 사실은 아키국의 슈고(守護)였던 다케다 노부토키(武田信時)에게 내려진 막부의 어교서(御教書)와, 이즈모 다이샤(出雲大社) 관련 문서인 『이즈모 다이샤 천가문서』(出雲大社千家文書)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이즈모 다이샤 천가문서』에는 이즈모 다이샤 소속 인원들이 나가토의 원구방루(元寇防塁, 당시 명칭은 석축지구石築地構) 수축 작업에 동원되었다는 내용이 남아있다.
이렇게 확대된 나가토 경고번역 체제는 제2차 일본 원정(고안의 역) 이후에도 유지되었으며, 일부는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한 뒤에도 존속했다.
2. 3. 존속
나가토 경고번역은 제2차 일본 원정(일본명 고안의 역弘安の役) 이후에도 유지되었으며,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한 뒤에도 일부는 존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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