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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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빗추국은 아스카 시대에 기비국에서 분리되어 설치된 옛 일본의 행정 구역이다. 현재의 오카야마현 대부분과 일부 지역에 해당하며, 7세기 후반에 비젠국, 빈고국과 함께 기비국에서 분할되었다. 빗추국은 철 생산지로 유명했고, 헤이안 시대에는 4개의 역이 설치되었으며, 이후 센고쿠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에는 여러 번으로 분할되어 통치되었다. 빗추국에는 국부, 국분사, 기비쓰 신사 등이 있었고, 1871년 폐번치현으로 현이 설치된 후 1875년 오카야마현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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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추국 - 빗추 다카마쓰성 전투
빗추 다카마쓰성 전투는 158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명을 받아 빗추국 다카마쓰성을 포위 공격하며 수공으로 성을 고립시켰으나,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하자 시미즈 무네하루의 할복을 조건으로 모리 가문과 화친하고 회군한 전투로,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빗추국 - 기노성
기노성은 '귀신의 성'이라는 뜻으로, 백강 전투 이후 왜가 큐슈 지역에 축조한 방어 시설이며, 백제 기술자 참여 가능성이 제기되고 현재는 사적지로 복원되어 활용되고 있다. - 산요도 - 빈고국
빈고국은 7세기 후반 기비국에서 분할되어 설치된 일본의 옛 국으로, 현재의 히로시마현, 오카야마현, 시마네현 일부 지역에 해당하며, 에도 시대에는 여러 번이 존재했고 메이지 유신 이후 히로시마현에 편입되었으며, 국분사, 신사 등의 시설과 안나군, 후카쓰군 등 여러 군으로 구성되었다. - 산요도 - 아키국
아키국은 7세기에 설치되어 쇼무 천황 시대에 국분사가 세워지고, 헤이안 시대에는 이쓰쿠시마 신사가 번성했으며, 센고쿠 시대에는 모리 씨와 아사노 가문이 지배했던 옛 일본의 행정 구역으로, 현재의 히로시마현 대부분에 해당한다. - 오카야마현의 역사 - 비젠국
비젠국은 7세기 후반 기비국에서 분할되어 성립된 오카야마현에 해당하는 일본의 옛 행정 구역으로, 농업, 철 생산, 해상 교통이 발달하고 일본도 제작이 활발했으며, 센고쿠 시대에는 우키타 나오이에가 다이묘로 군림하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오카야마현에 편입되었다. - 오카야마현의 역사 - 미마사카국
미마사카국은 오카야마현 북동부에 위치했던 옛 지방으로, 713년에 비젠국에서 분리되어 설치되었으며, 기비국 붕괴 이후 야마토 왕권의 통제를 받았고, 센고쿠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에는 쓰야마 번 등이 존재하다가 1876년 오카야마현에 통합되었다.
빗추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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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정보 | |
소속 | 산요도 |
영역 | 오카야마현의 서부 |
일반 정보 | |
국명 | 빗추국 (備中国) |
별칭 | 비슈 (備州)별칭 '비슈'는 비젠국, 빗추국, 빈고국의 총칭이다. |
로마자 표기 | Bicchū no kuni |
기타 표기 | 비슈 (備州) |
역사 | |
설치 시기 | 불명 |
폐지 시기 | 메이지 시대 |
행정 구역 | |
국부 | 오카야마현 총사시 |
군 | 9군 72향 |
문화 | |
이치노미야 | 기비쓰 신사(오카야마시) |
국분사 | 비추국분사 터(오카야마현 총사시) |
국분니사 | 비추국분니사 터(오카야마현 총사시) |
국력 | |
등급 | 상국 |
2. 명칭
아스카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목간에는 "기비도 중국(吉備道中国)"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는 빗추국이 기비국의 일부였음을 시사한다.[1]
빗추국은 현재의 오카야마현 이바라시, 소자시, 다카하시시, 니이미시, 아사쿠치시, 쓰쿠보군(하야시마정), 아사쿠치군(사토쇼정), 오다군(야카게정) 전역 및 오카야마시 일부 (기타구 중 대체로 노소, 가와이리, 히가시하나지리, 니시하나지리, 히라노, 노부토보다 남서쪽[4] 및 마호시, 가미타카다, 야마가미, 이시즈마, 스기타니, 히치카, 아시모리, 시모아시모리, 다카마쓰이나리, 히라야마, 릿타, 가모보다 남서쪽[5], 미나미구 오오후쿠, 고신덴, 세노자키, 야마다, 세노, 미노시마), 구라시키시 대부분 (미즈시마 후쿠자키정, 미즈시마 히가시치도리정, 미즈시마 히가시토키와정, 미즈시마 히가시사카에정, 미즈시마 히가시야요이정, 미즈시마 히가시코토부키정, 미즈시마아이오이정, 후쿠다정 우라타, 우라타, 구로이시, 쓰부우라, 아리키, 후지토정 아마기, 후지토정 후지토보다 남동쪽 제외), 가사오카시 대부분 (요노에 일부 제외), 마니와시 일부 (아구치, 고묘, 야마다, 미야지 이남[6]), 가가군 기비추오정 일부 (도요노, 덴치, 유야마, 깃카와, 가미노, 다케베 이서)에 해당한다.
7세기 후반, 기비국이 비젠국, 빗추국, 빈고국으로 분할되어 설치되었다. 처음에는 '기비도중국(きびのみちの나かくに)'이라고 불렸으며, 헤이안 시대의 『와묘류취초』에서도 빗추국의 와훈을 '기비노미치노나카쿠니(きびのみちの나かくに)'라고 기록하고 있다.
3. 영역
기타나가세역과 니와세역 사이에는 비젠·비츄 국경선이 그어져 있었다.
4. 연혁
고대부터 개발이 진행된 선진 지역으로, 철 생산지이기도 했다. 조잔 고분과 사쿠야마 고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비의 유력 호족의 거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도 세토 내해에 접한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덴지 천황 시대에 오니노성이 축조되었다. 율령제에서는 상국으로 지정되었다.
관할 하에 도우, 구보야, 아사쿠치, 오다, 고게쓰, 시모미치, 가야, 에이카, 테쓰타의 9군이 설치되었다. 후에 가마쿠라 시대 무렵, 가야군의 일부를 할애하여 조보군, 시모미치군의 일부를 할애하여 가와카미군이 설치되어 11군이 되었다.
빗추국에는 산요도의 역참으로서 쓰사카(津峴), 가와노베(河辺), 오다, 시쓰키(後月)의 4개 역이 설치되었다(『엔기시키』 병부).
헤이안 시대 말기, 세노 가네야스가 십이향 용수를 개발하여 마을을 윤택하게 했다. 가네야스는 중앙 정치에서 헤이케의 가신으로 활약했으며, 빗추국 이타쿠라에서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에게 패하여 죽었다.
무로마치 시대에 빗추국은 호소카와 씨가 수호였으나,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수호다이, 쇼 씨, 이시카와 씨, 우에노 씨, 미무라 씨 등 유력 지두와 국인들의 독립성이 강했다. 센고쿠 시대 중기에는 아마고 씨와 오우치 씨의 분쟁지가 되었지만, 1560년경 모리 씨와 동맹한 미무라 씨(비추 마쓰야마성을 본거지로 함)가 빗추국 지배를 거의 손에 넣었다. 그러나 1575년, 미무라 씨는 오다 노부나가의 유혹을 받아 모리 씨와 대립하다 멸망했다(비추 병란). 하시바 히데요시를 선봉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진출하자, 빗추국 다카마쓰성이 오다·모리 양군의 대치 장소가 되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에 따른 강화로 모리 데루모토는 빗추의 세 군을 양보하고 나머지를 보유하게 되었다.
에도 시대의 빗추국은 여러 영지로 분할 통치되었다. 1617년까지 막부는 빗추 구니부교를 파견하여 광역 통치를 맡겼다. 이후 빈고 후쿠야마번 미즈노 씨의 영지로 현재의 가사오카시나 이바라시 대부분이 영지였고, 그 외 빗추국의 소번으로는 비추 마쓰야마번(이케다 씨, 미즈타니 씨를 거쳐 이타쿠라 씨), 나리와번(야마자키 씨), 오카다번(이토 씨), 아시모리번(기노시타 씨), 니와세번(도가와 씨, 후에 이타쿠라 씨), 아사오번(마키타 씨)이 있었다. 이들은 단절되거나 전봉되는 등 변천이 많았다. 현재의 다카하시시에 있는 마쓰야마성이 빗추국 유일의 성이었고, 나머지는 진야를 설치했다. 마쓰야마 성하는 에도 시대 초기에 빗추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다.
구라시키는 성읍은 아니었지만, 도쿠가와 씨 정권의 직할지로서 다이칸쇼가 설치되었고, 비젠국에서 사누키국으로 이관된 쇼도시마 등도 통치했다. 구라시키는 에도 시대를 거치며 발전하여 마쓰야마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이후에는 빗추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현재의 구라시키시 서부인 다마시마는 세토 내해 유통과 연결된 빗추 마쓰야마 번의 항구로 번성했다. 빗추에서는 면직물 생산이 활발했고, 에도 시대 후기에는 가공도 성행했다. 제철도 여전히 중요한 산업이었다.
막부 조사에 의한 1822년 인구는 33만 7155명이었다. 메이지 정부의 임신호적(1872년) 조사에 의한 인구는 39만 6880명이었다.
메이지 초년 시점의 국내 지배는 다음과 같다.군명 석고 지배 도우군 35,935석 여 막부령, 기본령, 오카야마 신덴번 (이쿠사카), 니와세번 구보야군 44,857석 여 막부령, 기본령, 오카야마 신덴번 (이쿠사카), 오카야마 신덴번 (가모가타), 아사오번, 비젠 오카야마번 오다군 37,687석 여 막부령, 기본령, 잇키 도쿠가와가령, 니와세번, 니이미번, 오카야마 신덴번 (가모가타), 세츠 아사다번 아가군 33,232석 여 막부령, 기본령, 니이미번, 마쓰야마번, 이세카메야마번 고게츠군 18,432석 여 막부령 (일부는 오모리 대관소가 관할), 기본령, 잇키 도쿠가와가령, 세츠 아사다번 아사쿠치군 58,447석 여 막부령, 기본령, 오카야마 신덴번 (카모가타), 아사오번, 니이미번, 마쓰야마번, 단바카메야마번, 세츠 아사다번, 비젠 오카야마번 가야군 50,551석 여 막부령, 기본령, 아시모리번, 니와세번, 아사오번, 마쓰야마번, 비젠 오카야마번 시모미치군 26,253석 여 오카다번, 마쓰야마번, 비젠 오카야마번 가미보군 24,735석 여 잇키 도쿠가와가령, 마쓰야마번, 이세카메야마번 테쓰타군 22,949석 여 막부령, 마쓰야마번, 니이미번 가와카미군 31,196석 여 막부령 (일부는 오모리 대관소가 관할), 기본령, 마쓰야마번, 빈고후쿠야마번 4. 1. 고대
7세기 후반, 기비국이 비젠국, 빗추국, 빈고국으로 분할되어 설치되었다.[2] 율령제 하에서 빗추국은 상국(上国)으로 지정되었다.[2] 기비쓰 신사가 빗추국의 이치노미야로 지정되었다.[2]
빗추국에는 도우, 구보야, 아사쿠치, 오다, 고게쓰, 시모미치, 가야, 에이카, 테쓰타의 9개 군이 설치되었다. 이후 가마쿠라 시대 무렵, 가야군의 일부를 할애하여 조보군, 시모미치군의 일부를 할애하여 가와카미군이 설치되어 11군이 되었다.
고대부터 개발이 진행된 선진 지대로, 철 생산지이기도 했다. 조잔 고분과 사쿠야마 고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비의 최유력 호족의 거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도 세토 내해에 면한 교통의 요지를 차지했으며, 덴지 천황 시대에 오니노성이 축조되었다.
4. 2. 중세
헤이안 시대 말기, 세노 가네야스라는 무사가 나타나 십이향 용수를 개발하여 마을을 윤택하게 했다. 가네야스는 중앙 정치에서 헤이케의 충실한 가신으로 활약했으며, 최후에는 비추국 이타쿠라에서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에게 패하여 죽었다.[1]
무로마치 시대에 비추국은 호소카와 씨가 대대로 수호였으나,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수호다이, 쇼 씨, 이시카와 씨, 우에노 씨, 미무라 씨 등 유력 지두와 국인(国人)들의 독립성이 강했다.[1] 센고쿠 시대 중기에는 아마고 씨와 오우치 씨의 분쟁지가 되었지만, 1560년경 모리 씨와 동맹한 미무라 씨(비추 마쓰야마성을 본거지로 함)가 비추국 지배를 거의 손에 넣었다.[1] 그러나 1575년, 미무라 씨는 오다 노부나가의 유혹을 받아 모리 씨와 대립하다 멸망했다(비추 병란).[1] 하시바 히데요시를 선봉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진출하자, 비추국 다카마쓰성이 오다·모리 양군의 대치 장소가 되었다.[1]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에 따른 강화로 모리 데루모토는 비추의 세 군을 양보하고 나머지를 보유하게 되었다.[1]
4. 3. 근세
에도 시대 빗추국은 여러 지역으로 분할 통치되었다. 1617년까지 막부는 빗추 구니부교를 파견하여 광역 통치를 맡겼다. 이후 빗추 마쓰야마 번(이케다 씨, 미즈타니 씨를 거쳐 이타쿠라 씨), 나리와 번(야마자키 씨), 오카다 번(이토 씨), 아시모리 번(기노시타 씨), 니와세 번(도가와 씨, 후에 이타쿠라 씨), 아사오 번(마키타 씨) 등이 설치되었다. 이들 번은 단절되거나 전봉되는 등 변천이 많았다. 현재의 다카하시시에 있는 마쓰야마 성이 빗추국 유일의 성이었고, 나머지는 진야를 설치했다. 마쓰야마 성하는 에도 시대 초기에 빗추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다.
구라시키는 도쿠가와 씨 정권의 직할지(천령)로서 다이칸쇼(代官所)가 설치되었고, 비젠국에서 사누키국으로 이관된 쇼도시마 등도 통치했다. 에도 시대를 거치며 발전한 구라시키는 마쓰야마와 어깨를 나란히 했고, 이후에는 빗추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현재의 구라시키시 서부인 다마시마는 세토 내해 유통과 연결된 빗추 마쓰야마 번의 항구로 번성했다. 빗추에서는 면직물 생산이 활발했고, 에도 시대 후기에는 가공도 성행했다. 제철도 여전히 중요한 산업이었다.
4. 4. 근대 이후
5. 시설
빗추국(일본어: 備中国)의 시설은 다음과 같다.
- 국부(国府): 가야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소자시 카나이도 부근에 국부, 북국부, 남국부, 국부 서 등의 지명이 남아 있어 그곳으로 추정된다.[7] 전승지는 "전비중국부 터"로 소자시 지정 사적이다.
- 국분사(国分寺)・국분니사(国分尼寺)
- 비추국 분사 터: 소자시 카미바야시에 있는 국가 사적이다. 국부 추정지에서 남쪽으로 2km 떨어져 있다. 동서 160m, 남북 180m 크기의 사찰 구역에서 금당, 탑, 강당, 중문, 남문 등 주요 건물 유구가 발견되었다. 중세 시대에 폐사되었으나, 에도 시대에 닛쇼잔 소지인 국분사가 재건되어 법등을 이어가고 있다.[1]
- 비추국 분니사 터: 소자시 카미바야시 아자 코우즈카에 있는 국가 사적이다. 승려 사찰 동쪽에 위치하며, 동서 108m, 남북 216m 크기이다. 금당, 강당, 중문, 남문 등 주요 건물 유구가 발견되었으나, 승려 사찰보다 먼저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2]
- 신사(神社)
- 이치노미야(一宮): 기비쓰 신사[2]
- 소샤(総社): 비추쿠 소샤궁 (소자시 소샤 2초메)
- 『엔기시키 진묘초』에 기록된 신사: 대사 1좌 1사(묘신대사: 가야군 기비쓰 신사), 소사 17좌 17사 (총 18좌 18사) ("비추쿠의 식내사 일람" 참조)
- 비정사: 기비쓰 신사 (오카야마시 기타구 기비쓰)
- 이궁(二宮) 이하는 없으나, 고 신사(오카야마시 가미타카다)에서는 동사를 이궁으로 칭한다.[8]
5. 1. 국부(国府)
빗추 국부(国府)는 문헌에 따르면 가야군(賀夜郡)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자시(総社市) 카나이도(金井戸) 부근에 국부, 북국부, 남국부, 국부 서 등의 지명이 남아 있어 그곳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소재지는 불명이다.[7] 전승지는 "전비중국부(伝備中国府) 터"로 소자시 지정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5. 2. 국분사(国分寺)・국분니사(国分尼寺)
- 비추국 분사 터 (소자시 카미바야시)[1]: 국가 사적. 국부 추정지의 남쪽 2킬로미터에 위치한다. 사찰 구역은 동서 160미터, 남북 180미터로, 금당, 탑, 강당, 중문, 남문 등의 주요 가람 유구가 발견되었다. 중세에 폐사되었지만, 에도 시대에 고대 국분사 터에 중복되어 닛쇼잔 소지인 국분사(日照山總持院国分寺)가 재건되어 법등을 전승한다.
- 비추국 분니사 터 (소자시 카미바야시 아자 코우즈카)[2]: 국가 사적. 승려 사찰의 동쪽에 위치한다. 사찰 구역은 동서 108미터, 남북 216미터로, 금당, 강당, 중문, 남문 등의 주요 가람 유구가 발견되었다. 승려 사찰보다 빨리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5. 3. 신사(神社)
기비쓰 신사는 빗추의 주요 신사(''이치노미야'')였다.[2]『엔기시키 진묘초』에는 대사 1좌 1사·소사 17좌 17사의 총 18좌 18사가 기재되어 있으며("비추쿠의 식내사 일람" 참조), 대사 1사는 묘신대사인 가야군 기비쓰 신사이다.
『중세 제국 일궁제의 기초 연구』에 근거한 일궁 이하의 일람은 다음과 같다.[7]
이궁 이하는 없으나,[7] 고 신사(오카야마시 가미타카다)의 사전에서는 동사를 이궁으로 한다.[8]
6. 지역
빗추국은 현재의 오카야마현 서부에 해당하며, 여러 군(郡)과 번(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위 행정 구역으로는 도우 군, 구보야 군, 가야 군, 시모쓰미치 군, 아사쿠치군, 오다군, 시쓰키 군, 뎃타 군, 아카 군, 조보군, 가와카미 군 등이 있었다. 조보군은 가야 군에서, 가와카미 군은 시모쓰미치 군에서 분리되어 설치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빗추 마쓰야마 번, 나리와 번, 아사오 번, 아시모리 번, 오카다 번, 니와세 번, 이쿠사카 번, 가모가타 번, 니시에하라 번 등 다양한 번이 설치되어 각기 다른 가문이 통치했다.
6. 1. 군(郡)
(가요 군)(데쓰타 군, 데타 군)
(아가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