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읍성
1. 개요
나주읍성은 1404년(태종 4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긴급히 수축되었으며, 이후 조선 시대에 세 차례의 증·개축을 거쳤다. 일제강점기에는 4대문과 성벽이 훼철되었고, 해방 이후 도시화 과정에서 훼손이 심화되었다. 1993년 남고문을 시작으로 2018년 북망문까지 복원 사업이 진행되었다.
| 이름 | 나주읍성 |
|---|---|
| 한자 표기 | 羅州邑城 |
| 유형 | 사적, 문화재자료 |
| 지정 번호 (사적) | 337 |
| 지정 번호 (문화재자료) | 173 |
| 지정일 (사적) | 1990년 10월 31일 |
| 지정일 (문화재자료) | 1990년 2월 24일 |
| 해제일 (문화재자료) | 1990년 10월 31일 |
| 주소 | 전라남도 나주시 남내동 2-20번지 외 |
| 시대 | 고려시대 |
| 소유 | 미상 |
| 참고 | 미상 |
| 면적 | 349필지, 43,799m² |
| 문화재청 | 13,0337000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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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년 완공된 건축물 -
안동 개목사 원통전
안동 개목사 원통전은 조선 세조 때 지어진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건물로, 조선 초기의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
해제된 전라남도의 문화재자료 -
화엄사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하고 《화엄경》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중수되었고, 국보와 보물을 보유한 선교 양종의 대가람으로 현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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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선암사는 백제 시대에 창건되어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를 거치며 번성했으나 조선 시대 불교 탄압으로 폐사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태고종 사찰로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과 승선교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조계종과의 분쟁 역사를 가진 곳이다. -
대한민국의 폐성 -
순천왜성
순천왜성은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호남 공략 거점으로 삼아 순천에 약 3개월 만에 축조한 왜성으로, 남해안 왜성들을 연결하는 군사 요충지였으며 현재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왜교성 전투와 축성 방식으로도 주목받는다. -
대한민국의 폐성 -
울산왜성
울산왜성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울산에 축성한 왜성으로, 도산왜성이라고도 불렸으며 현재는 학성공원으로 조성되어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석축 일부가 남아 있는 곳이다.
2. 역사
고려 시대에 쌓은 성으로 조선 세조 3년(1457)에 성을 확장했고, 임진왜란(1592) 이후에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있었다.
돌을 쌓아 만든 것으로 둘레는 940m, 높이는 2.7m이며, 대포를 쏠 수 있는 포루가 3개, 우물이 20여 개 있었다고 한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없어지고 북문터에 기초석만 남아있다. 1993년 남문터에 남고문을 복원하였는데, 2층 누각은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어 나주읍성의 옛 모습 일부분을 보여준다. 남문터의 석축은 비록 적게 남아있지만 역사적 차원에서 보존해야 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2.1. 조선 시대
조선시대에 나주읍성은 세 차례에 걸쳐 증축 및 개축되었다. 보성읍성과 함께 읍성 축조론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1404년(태종 4년)에 긴급 수축(修築)되었는데, 이는 같은 해 7월에 왜선 33척이 전라도로 침입해 오자 수군지휘관인 김영렬(金英烈)을 보내 격퇴한 뒤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불과 3개월 만인 같은 해 10월에 완공되었는데, 이때의 나주읍성 수축은 계획적인 읍성 축조라기보다는 기존의 토축(土築) 부분을 석축화하는 정도에 그쳤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후에도 나주읍성에 대한 본격적인 수축 논의는 계속되었다.
한말까지 나주읍성은 그 골격을 유지해 오다가, 1910~1920년 사이에 일제에 의해 4대문(동점문, 영금문, 남고문, 북망문)과 성벽에 대한 철거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읍성터는 식민 통치 건물 부지, 일반 대지, 또는 도로 등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 나주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훼손이 더욱 심해져 오늘에 이르렀다.
2.2. 일제강점기
조선시대에 세 차례에 걸쳐 증·개축이 이루어진 나주읍성은 한말까지 그 골격을 유지해 오다가 1910~1920년 사이에 일제에 의해 4대문(동점문, 영금문, 남고문, 북망문)과 성벽에 대한 훼철작업이 빠른 속도로 행해졌다. 읍성터는 식민통치 건물지, 일반대지, 혹은 도로망 등으로 전용되었다.
2.3. 해방 이후
조선시대에 세 차례에 걸쳐 증·개축이 이루어진 나주읍성은 한말까지 그 골격을 유지해 오다가 1910~1920년 사이에 일제에 의해 4대문(동점문, 영금문, 남고문, 북망문)과 성벽에 대한 훼철작업이 빠른 속도로 행해졌다. 그 읍성터는 일제의 식민통치 건물지, 일반대지, 혹은 도로망 등으로 전용되었다. 해방 이후 나주의 도시화가 촉진되면서 훼손이 더욱 심해져 오늘에 이르렀다.
3.1. 성문
나주읍성은 고려시대에 처음 쌓은 성으로, 조선 세조 3년(1457)에 확장되었고, 임진왜란(1592) 이후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있었다. 성문은 동, 서, 남, 북 4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없어지고 북문터에 기초석만 남아있다.
1993년 남문터에 복원한 남고문은 2층 누(樓)로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화려하다.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어 나주읍성의 옛 모습 일부분을 보여준다. 남문터의 석축은 비록 적게 남아있지만 역사적 차원에서 보존해야 하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