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화엄경》의 '화엄'에서 이름을 따왔다. 자장법사의 증축, 의상국사의 《화엄경》 보관 등 신라 시대에 여러 번 중수되었고, 고려 시대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조선 시대에는 선종 18사찰 중 하나로 존속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이후 재건과 중건을 통해 선교 양종의 대가람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 중 하나였으며, 한국 전쟁 당시 피해를 입었다. 주요 건물로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 국보 제12호인 각황전 앞 석등, 국보 제35호인 사사자 삼층석탑 등이 있으며, 다양한 보물과 천연기념물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화엄사 -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은 2층 기단과 1층 탑신으로 구성되고 사자 조각상이 기단을 받치는 독특한 형태의 석탑으로, 9세기 통일 신라 시대에 제작되어 대한민국의 보물 제300호로 지정되었다. - 화엄사 -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1634년에서 1635년 사이 조성된 현존 최대 크기의 목조불상으로, 삼신불 도상으로는 유일한 사례이며, 17세기 불상 양식의 기준이 되고 불교 미술 부흥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2021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 해제된 대한민국의 사적 및 명승 - 불국사
불국사는 김대성이 부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중창을 시작하여 신라시대에 완공된 경주시 토함산의 대표적인 사찰로, 석가탑과 다보탑 등 국보급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 복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러 신라 불교 건축의 정수이자 한국 문화유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해제된 대한민국의 사적 및 명승 - 선암사
선암사는 백제 시대에 창건되어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를 거치며 번성했으나 조선 시대 불교 탄압으로 폐사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태고종 사찰로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과 승선교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조계종과의 분쟁 역사를 가진 곳이다. - 구례군의 문화유산 - 방호정
방호정은 전라남도 구례군과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정자 건축물로, 구례군의 방호정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전통 정자이며 청송군의 방호정은 독특한 퇴적암 지층 위에 세워져 지질학적 경관을 자랑한다. - 구례군의 문화유산 - 구례 운조루 고택
구례 운조루 고택은 1776년에 지어진 조선시대 양반 가옥으로,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된 55칸의 목조 기와집이며, 풍수지리 명당에 위치하여 다양한 유물을 보존하고,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고택 체험 등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화엄사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 | |
이름 | 화엄사 (華嚴寺) |
로마자 표기 | Hwaeomsa |
영어 이름 | Flower Garland Temple |
위치 | 대한민국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
종교 | |
종파 | 조계종 |
창건자 | 연기 |
주요 신 | 비로자나불 |
역사 | |
창건 | 544년 (백제 성왕 22년, 신라 진흥왕 5년) |
중창 | 670년 (신라 문무왕 10년) |
중창자 | 의상 |
문화재 | |
지정 번호 (사적) | 505호 |
지정 번호 (명승) | 64호 |
지정 일자 (사적) | 2009년 12월 21일 |
지정 일자 (명승) | 2009년 12월 9일 |
중요 문화재 | 석등 (국보 제12호) 사사자 삼층석탑 (국보 제35호) 각황전 (국보 제67호) 서오층석탑 (보물 제133호) |
기타 정보 | |
소속 교구 | 조계종 제19교구 본사 |
과거 위상 | 조선삼십본산 (일제강점기) |
면적 | 25,994m² |
2. 역사
화엄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중수와 재건을 겪었다. 임진왜란 때 큰 피해를 보았으나, 이후 복구되어 선교 양종의 대가람으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31본산의 하나였다.
2. 1. 창건과 중수 (신라 시대)
544년(신라 진흥왕 5년, 백제 성왕 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5] 절 이름은 《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5]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법사가 증축하였고, 석존사리탑, 7층탑, 석등롱 등을 건립하였다.[5]
《봉성지》(鳳城志)에 따르면, 문무왕 때 의상국사가 왕명을 받아 석판에 《화엄경》 80권을 새겨 절에 보관하였다.[5]
875년(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이 다시 증축했다.[5]
2. 2. 고려 시대
943년(고려 태조 26년) 도선의 유지에 따라 오백선찰을 먼저 건립하고 뒤에 삼천팔백사를 세우는 일을 시작하면서 기존 사찰 중 화엄사가 제일 먼저 중수되었다.[6] 이후 광종, 문종, 인종, 충숙왕 대에 걸쳐 총 네 차례에 걸친 중수가 더 있었다.[6]2. 3. 조선 시대
조선 태종 시대인 1407년(태종 7년)의 불교 탄압 당시 존속이 허용된 88개 사찰 명단에는 화엄사가 없어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종 시대인 1424년(세종 6년)의 불교 탄압 때에는 존속이 허용된 36개 사찰 안에 화엄사의 이름이 있어, 선종 18사찰 중 하나로 존속했다.[5]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년)에 불타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5] 당나라 초기의 글씨체를 보인다고 하는 청석 조각을 지금도 간혹 볼 수 있다고 한다.[5] 이후 벽암선사가 인조 8년(1630년)부터 14년(1636년)에 걸쳐 대웅전을 비롯한 일부 건물을 재건하였고, 재건 후에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7]
숙종 27년(1701년)에 화엄사 중건을 완성하고 선교 양종의 대가람(大伽藍)으로 하였다.[5]
2. 4. 일제 강점기와 현대
1924년 화엄사는 1911년 시행된 조선 30본산에 추가되어 조선 31본산이 되었다.[5] 한국 전쟁과 조선인민유격대 토벌 작전으로 인해 암자들이 퇴락하였다.3. 주요 건물 및 배치
화엄사는 여러 건물들이 독특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절 앞쪽에는 일주문이 있고, 금강역사, 문수보살, 보현보살 상이 있는 금강문, 사천왕 상이 있는 천왕문이 차례로 나타난다.
화엄사의 중심 건물인 각황전(국보 제67호)은 "깨달은 왕이 머무는 건물"이라는 뜻으로, 조선 숙종 때 지어졌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던 시대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는 왕이 공식 업무를 보던 경복궁 근정전 다음으로 크다.
각황전 앞에는 국보 제12호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이 있다. 이 석등은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6.4m, 지름 2.8m로 현존하는 석등 가운데 가장 크다.
각황전 위쪽에는 국보 제35호인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이 있다. 네 마리의 사자가 탑을 받치고 있는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는 연기조사의 어머니가 차를 공양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특이한 형태의 석탑 중 완성도가 높은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외에도 화엄사에는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국보 제301호), 동 오층 석탑(보물 제132호), 서 오층 석탑(보물 제133호), 구례 화엄사 대웅전(보물 제299호),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등 다양한 문화재들이 있다. 또한, 겨울 연꽃(천연기념물 제38호)과 매화나무(천연기념물 제485호) 등 두 그루의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3. 1.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
절 앞쪽에 1칸 1호의 일주문이 있고 ‘지리산 화엄사(智異山 華嚴寺)’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금강문에는 금강역사, 문수보살, 보현보살 상이 안치되어 있고, 조금 서쪽에는 사천왕 상을 안치한 천왕문이 있다.[5]3. 2. 대웅전 (보물 제299호)
구례 화엄사 대웅전은 보물 제299호이다. 1636년(인조 14년)에 벽암선사가 중건한 건물로, 건평 35평, 높이 35자의 목조 건물이다. 총 15칸· 5칸· 3칸의 단층으로 된 매우 드문 구조 양식의 건축물이며, 내부의 불화 및 돌층계 등도 특수하다. 원래의 건물은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에 불타 버렸다.3. 3. 각황전 (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華嚴寺覺皇殿)은 국보 제67호이다. 석가모니, 아미타불, 약사불의 삼존불과 법화경의 사보살인 문수보살, 보현보살, 양왕보살, 관음보살의 상을 안치한 화엄사의 중심 법당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장육전 자리에 숙종 25년(1699년)부터 28년(1702년)까지 새로 지었다. 법당을 지은 후 숙종이 각황전이라는 이름을 사액하였다. 각황전의 사액에는 거지가 숙종의 공주로 환생하여 시주하였다는 민간 설화가 전해지나, 숙종에게는 공주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 역사는 아니다.[10]조선시대 중기 및 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사찰 건물로, 규모에 있어서도 경복궁 근정전 다음으로 크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조선시대 양식의 웅대한 중층 불전으로, 내부에는 청판을 깔고 중앙의 5칸 3면에 기둥을 세웠다.[5][4] 문자 그대로 "깨달은 왕이 머무는 건물"을 의미한다.
3. 4. 각황전 앞 석등 (국보 제12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은 국보 제12호이다. 각황전 바로 앞에 있으며 높이 6.4m, 지름 2.8m인 큰 석등이다. 기석(基石)은 8각, 간석(竿石)은 병 모양으로 중간에 띠를 둘렀고, 각 면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현존하는 석등 가운데 가장 크며 신라 시대 불교 전성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5] 통일 신라 시대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된다.[1]3. 5. 사사자 삼층석탑 (국보 제35호)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은 국보 제35호이다. 높이는 7.17미터이다. 하단에는 각 면에 3구씩, 총 12구의 천인상이 양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상성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앉아 있는 암수 사자를 기둥처럼 세우고, 그 중앙에 서 있는 스님상을 두어 위쪽의 무게를 받치게 하였다. 탑신은 기단에 비해 비율이 작은 느낌이 들지만, 층급(받침)은 5단이고 조층에는 각 면마다 문비(문짝)의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그 양옆에 인왕상이 배치되어 섬세한 효과를 낸다. 독창적인 발상과 특이한 형식을 갖춘 점에서 불국사 다보탑과 쌍벽을 이룬다.[11]특수한 형태의 석탑 중에서는 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네 마리의 사자가 기단을 이루어 탑 전체를 받치고 있다. 네 마리의 사자 가운데에는 연기조사의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앉아 깊은 효심으로 차를 공양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1]
3. 6. 딸린 암자
한국 전쟁과 조선인민유격대 토벌 작전으로 인해 대부분 퇴락하였고, 현재는 구층암, 금정암, 지장암, 연기암, 내원암, 미타암, 보적암, 남암 등이 남아있다.[6]4. 중요 문화재
화엄사는 신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중요한 문화재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5] 특히, 조선 시대 건물인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과 통일 신라 시대의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 등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국보 제301호),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보물 제132호),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제133호), 구례 화엄사 대웅전(보물 제299호),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보물 제1348호),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보물 제1363호),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보물 제1548호, 이후 국보 제336호로 승격) 등 다양한 보물들이 있다.
또한,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천연기념물 제38호)와 홍매화(천연기념물 제485호)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4. 1. 국보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은 "깨달은 황제가 산다는 뜻"으로, 조선 숙종 때 지어진 건물이지만 숭유억불의 기조 속에서도 임금이 정사를 보던 근정전 다음으로 큰 규모의 법당이다.[5] 본래 장육전이라는 건물이 소실된 곳에 복원하면서 숙종이 현판을 <각황전>이라 사액해서 각황전으로 부른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은 각황전 규모에 걸맞은 거대한 석등이다. 통일 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높이가 6.4m, 직경이 2.8m에 달한다.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은 각황전 왼쪽 뒤편 탑전에 있다. 이형탑 가운데 불국사 다보탑과 더불어 가장 완성도가 높은 탑으로 알려졌다. 사자 네 마리가 기단부를 대신해서 탑 전체를 받치고 있는 모양으로 안에는 연기조사의 출가한 어머니가 새겨져 있고 탑 건너편 석등 아래에는 효심 깊었던 연기조사가 무릎을 꿇은 채 차 공양을 올리는 모양을 띠고 있다.[1]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국보 제301호)은 가로 7.76m, 세로 11.95m에 이르는 거대한 화면에 석가모니불과 문수 '''·''' 보현 보살을 중심으로 사천왕과 십대제자, 2구의 분신불, 십장제불 등이 적절하게 배치된 군집도 형식이다. 사천왕 가운데 2구는 상단에 나머지 2구는 하단에 그려 사방을 수호하는 것을 묘사하였다.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국보 제336호)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교조각 중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로 이루어진 ‘삼신불(三身佛)’로 구성된 유일한 작품으로 조선 시대 불교사상과 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아 2021년 6월 23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은 1962년에,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은 1997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8][9]
4. 2. 보물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보물 제132호)은 높이 6.4m, 대석(臺石) 1변의 길이 2.8m이며, 대웅전 아래 광장에 동·서 두 탑이 서로 마주 서 있다. 동 오층석탑은 서 오층석탑에 비하면 기교가 없다.[5]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보물 제133호)은 높이 6m이며, 2층 기단 위에 세워져 있는데 하단 4면에 각 3구의 십이지상을, 상단 각 면에는 사천왕, 인왕 등의 상을 2구씩 각각 새겼다. 탑신은 비교적 좁고, 처마 끝이 나와 있는 등 웅건한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5]
구례 화엄사 대웅전(보물 제299호)은 건평 35평, 높이 약 10.67m의 목조 건물이다. 원래의 건물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타 버렸고, 현재의 건물은 1636년(인조 14) 벽암선사가 중건한 것이다. 총 15칸· 5칸· 3칸의 단층으로 된 매우 드문 구조 양식의 건축물이며, 내부의 불화 및 돌층계 등도 특수하다.[5]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은 높이 약 3.14m, 폭 약 1.92m의 화강암 재질로, 평방 4각형으로 아래에는 사천왕을 조각하였으며, 가운데에는 4마리의 사자가 감로수를 받들고 있는 형상으로 되었다.[5]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은 엷은 청색 돌에 화엄경을 새긴 것이다. 신라 문무왕 17년 의상대사가 화엄사에 경각을 세우고 비치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장육전이 소실되면서 함께 부서졌다. 지금은 약 9천여 개의 파편이 발견되어 보관 중이며, 비록 파편이기는 하나 신라 하대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다.[12]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보물 제1348호)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보물 제1363호)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보물 제1548호, 이후 국보 제336호로 승격)은 조선 시대의 불상으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교조각 중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로 이루어진 ‘삼신불’로 구성된 유일한 작품이다. 조선 시대 불교사상과 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아 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국보로 승격되었다.
4. 3. 천연기념물
화엄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 그루의 나무가 있다.- 구례 화엄사 올벚나무: 천연기념물 제38호이다.
- 구례 화엄사 매화: 천연기념물 제485호이다. 부용영관 선사가 이 나무를 보고 시를 읊었다고 하여 '부용매'라고도 불리며, 붉은 꽃이 피는 '''홍매화'''이다.[5]
5. 템플스테이 및 사진
화엄사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2]
화엄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참조
[1]
웹사이트
Search: Hwaeomsa
http://jikimi.cha.go[...]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14-04-28
[2]
웹사이트
Hwaeomsa Temple stay program
http://eng.templesta[...]
2015-12-20
[3]
문서
구례화엄사화엄석경 (求禮華嚴寺華嚴石經)
문화재청
[4]
간행물
화엄사
글로벌 세계 대백과
[5]
간행물
화엄사
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한국사/고[...]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6]
서적
한국의 사찰 8 화엄사
일지사
1994-01-20
[7]
웹사이트
보제루
http://www.hwaeomsa.[...]
[8]
뉴스
새國寳百9點지정
경향신문
1962-11-23
[9]
뉴스
나주신촌리 금동관등 문화재 8점 국보 지정
경향신문
1997-09-23
[10]
웹사이트
화엄사 각황전
http://www.koreatemp[...]
2014-02-02
[11]
간행물
화엄사 사자석탑
글로벌 세계 대백과
[12]
웹사이트
화엄사 화엄석경
http://www.cha.go.kr[...]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