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타니 다케히데
1. 개요
나카타니 다케히데는 일본의 유도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유도 남자 경량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올림픽 유도 종목 사상 첫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으며, 1967년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미쓰비시 레이온에서 근무하며 서독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를 역임했고, 귀국 후에는 가업인 보석점을 운영하며 일본 유도 발전에 기여했다. 2021년에는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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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일 | 1941년 7월 9일 |
|---|---|
| 출생지 | 히로시마현히로시마시 |
| 신장 | 1.65m |
| 국적 | 일본 |
|---|---|
| 체급 | 68kg, 70kg |
| 단 | 9단 |
| 소속 | 미쓰비시 |
| 올림픽 | 금메달 (1964, 68kg) |
|---|---|
| 세계 선수권 대회 | 동메달 (1967, 70k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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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쌍광장 수훈자 -
세키네 시노부
세키네 시노부는 1972년 뮌헨 올림픽 유도 남자 중량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 선수로, 도쿄도 경찰청 소속으로 활동하며 올림픽 금메달 이후 일본 유도 발전에 기여했고 헤이세이 국제대학 강사를 역임했으며 2018년 사망 후 정육위가 추서되었다. -
196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 -
박청삼
박청삼은 대한민국의 레슬링 및 복싱 선수로, 1964년 도쿄 올림픽 복싱 라이트급 5위, 1967년 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경중량급 동메달, 그리고 같은 해 하계 유니버시아드 경중량급 은메달 및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
196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 -
이노쿠마 이사오
이노쿠마 이사오는 일본의 유도 선수이자 지도자, 경영인으로,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은퇴 후 유도 발전에 기여하다가 경영 부진으로 자결했다. -
1941년 출생 -
신영복
신영복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사회운동가, 대학교수, 저술가로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 생활 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집필하여 반향을 일으켰고, 출소 후 관계론을 중심으로 사상을 발전시키며 독특한 서체로 민중과 소통했으며,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
1941년 출생 -
도정일
도정일은 영문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 경희대학교 교수, 도서관장,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문화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으나, 2016년 학력 위조 논란 이후 이를 인정했고, 저서로는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등이 있다.
2. 경력
히로시마시에서 유도인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으며, 형제 4명 모두 유도 유단자였다. 12세에 유도를 시작하여 히로시마 시립 후쿠로마치 소학교, 히로시마 시립 고쿠타이지 중학교, 교료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료 고등학교 시절에는 '히로시마의 스가타 산시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메이지 대학에 진학했으나, 당시 황금 세대로 불린 선수들에게 밀려 주전 선수가 되지는 못했다. 균형 잡힌 유도 스타일과 소토가리 기술이 뛰어났으며, 업어치기, 발기술, 굳히기에도 능숙했다.
2.1. 올림픽 금메달 획득 (1964년)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라이트급(-68kg)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당시 일본 유도계는 무차별급을 중시하는 분위기였고, 나카타니는 첫 경기, 외국인 상대라는 불리함 속에서도 대표팀에 합류했다.
올림픽 본선에서 미국의 폴 무라야마, 소련의 올레크 스테파노프, 영국의 브라이언 잭스, 태국의 우돔 랏사멜롱꼰, 스위스의 에리크 헤니를 모두 한판으로 꺾으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올림픽 유도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이었다. 특히, 결승전을 포함한 세 경기를 치르는 데 총 9분도 채 걸리지 않아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유도계는 "무차별이야말로 유도"라는 분위기가 강했고, 무차별급에서 가미나가 아키오가 안톤 헤이싱크(네덜란드)에게 패했기 때문에 나카타니의 금메달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2. 선수 경력 및 서독 대표팀 코치 (1964년 ~ 1972년)
1964년 하계 올림픽 이후 나카타니 다케히데는 미쓰비시에 실업 선수 겸 직원으로 입사하여 5년 동안 근무했다. 1967년에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1967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대한민국의 박청삼과 함께 동메달을 획득했다. 1969년부터 1972년 하계 올림픽이 열릴 때까지 서독 유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파울 바르트, 클라우스 글란 같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지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