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포분시
1. 개요
난포분시(南浦文之, 1555-1620)는 센고쿠 시대에 태어난 일본의 승려이자 유학자로, 사쓰마 번에서 활약했다. 그는 류겐지에서 선과 유학을 배우고, 교토에서 학문을 연마했으며, 시마즈 가문의 외교 문서를 담당했다. 게이안겐주를 계승하여 사쓰난 학파의 주자학을 발전시켰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알현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뎃포기》, 《난포문집》 등이 있다.
| 속세 성 | 탕천(湯淺) 씨 |
|---|---|
| 법명 | 현창(玄昌) |
| 자 | 기룡(耆龍) |
| 호 | 남포(南浦) |
| 시호 | 불통국사(佛統國師) |
| 출생 | 1555년 |
|---|---|
| 사망 | 1620년 2월 13일 |
| 직업 | 임제종의 승려 |
| 활동 시기 |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 에도 시대 초기 |
| 출신지 | 기이국 해초군 유아사 장 |
| 주요 업적 | 조선통신사의 모문룡과의 교섭 후시미 성에서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회견 |
|---|---|
| 저서 | 남포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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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국 사람 -
덴쇼 소년사절단
아리마 하루노부가 세운 세미나리오에서 선발된 네 명의 일본 소년들로 구성된 덴쇼 소년사절단은 알레산드로 발리냐노의 주도 하에 파견되어 로마 교황과 스페인, 포르투갈 양 국왕에게 일본 선교 지원을 요청하고 유럽의 기독교 문물을 일본에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유럽 각지를 순방하며 외교 활동을 펼쳤다. -
휴가국 사람 -
우에하라 유사쿠
우에하라 유사쿠는 일본 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공병 분야에 기여하여 "일본 공병의 아버지"로 불리며 원수 육군대장까지 올랐으나, 다이쇼 정변을 일으켜 군부의 정치 개입을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받는다.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승려 -
이신스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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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승려 -
미야베 게이준
미야베 게이준은 승려 출신 무장으로, 아사이 나가마사를 섬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귀순하여 주고쿠 지방 공략에 참여하고 돗토리성 성주를 역임했으며, 임진왜란에 참전하고 히데요시의 측근으로 활동하다 사망했다. -
일본의 선승 -
후지와라 세이카
후지와라 세이카는 1561년에 태어나 1619년에 사망한 일본의 유학자로, 주자학을 기반으로 다양한 학문을 수용하고 하야시 라잔 등을 제자로 두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유학을 강의하고 『촌철록』 등의 저서를 남겼다. -
일본의 선승 -
무소 소세키
무소 소세키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에서 남북조 시대에 걸쳐 활약한 선승이자 정원 디자이너로, 고다이고 천황과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신임을 받아 겐무 신정과 무로마치 막부의 성립에 기여했으며, 유서 깊은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며 선종을 알리고 독창적인 정원 디자인으로 일본 조경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및 경력
난포분시는 고지 원년(1555년)에 태어나 겐나(元和) 6년(1620년)에 사망한 사쓰난학파(薩南學派)의 승려이자 학자이다. 어릴 적부터 '문수동'이라 불릴 정도로 총명했으며, 선종과 유학, 송학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했다. 특히 주자학에 조예가 깊어 사서집주에 훈점을 개정하기도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알현하고 고미즈노오 천황에게 강의를 할 정도로 학식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시마즈 요시히사와 시마즈 이에히사의 귀의를 받아 사쓰마번의 외교 문서를 담당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뎃포기(鉄炮記)』, 『난포 문집(南浦文集)』, 『일주 평치기(日州平治記)』, 『결승기(決勝記)』 등이 있다. 사쓰마번 검술가 도고 시게카타(東郷重位)의 검술에 '시현류(示現流)'라는 유파명을 지어주었다.
2.1. 출생과 초기 수학
고지 원년(1555년) 휴가국 오비 난고토우라 (현재의 미야자키현 니치난시 난고)에서 태어났다. 호인 '난포(南浦)'는 그의 출생지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문수동(文殊童)'이라고 불렸다. 12세에 현재 니치난시 난고초에 있는 엔메이지(延命寺, 오늘날 사이메이지西明寺)라는 선문에 입적, 법명은 겐쇼(玄昌)로 하였다. 게이안겐주의 손제자(제자의 제자)에 해당하는 류겐지의 이치오겐신에게 선과 유학을, 명의 고카유켄에게 오경, 주역, 송학을 배웠다.
2.2. 교토 유학과 시마즈 가문과의 인연
15세에 교토 도후쿠지(東福寺) 류긴안(龍吟庵) 기슌류키(煕春竜喜)의 법사(法嗣)가 되었다. 운쿄(雲興), 라이운(懶雲), 교운(狂雲) 등으로도 불렸다. 게이초(慶長) 7년(1602년), 시마즈 이에히사(島津家久)가 창건한 다이류지(大竜寺)의 개산조(開山祖)가 되었다. 이듬해인 게이초 8년(1603년), 시마즈씨(島津氏)의 사절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알현하였고, 이에야스의 추천으로 겐초지(建長寺)에서 죠도힌보츠(上堂秉払) 의식을 수행했다. 고미즈노오천황(後水尾天皇)에게 초청되어 궁중에서 사서(四書)의 신주(新註) 강의를 하는 등, 학식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義久)와 시마즈 이에히사 등도 불가에 대한 깊은 귀의를 보여, 사쓰마번(薩摩藩)의 명 혹은 류큐(琉球)와의 외교 문서를 맡았다.
2.3. 사쓰난 학파 계승과 외교 활동
게이안겐주(桂庵玄樹)를 시조로 하는 사쓰난학파(薩南學派) 주자학(朱子學)을 계승하여, 『사서집주(四書集註)』에 겐주가 찍은 훈점(訓點)을 개정하였다.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義久)와 시마즈 이에히사(島津家久) 등의 깊은 귀의를 받아, 사쓰마번(薩摩藩)의 명나라(明) 및 류큐 왕국(琉球)과의 외교 문서를 담당했다.
2.4. 사망
겐나(元和) 6년(1620년) 9월 30일, 66세로 사망했다. 묘소는 가고시마현 아이라시 다이헤이산(太平山) 안코쿠지(安国寺)이며, 일본 국가 사적(史跡)으로 지정되었다.
3. 사상과 영향
난포 분슌은 게이안겐주(桂庵玄樹)의 손제자(제자의 제자)인 이치오겐신(一翁玄心)에게서 선(禪)과 유학(儒學)을 배웠고, 명(明)의 고카유켄(江夏友賢)에게는 오경주역(五経周易)의 송학(宋學)을 배웠다. 장구훈고(章句訓詁)에 뛰어났으며, 15세에 교토(京都) 도후쿠지(東福寺)의 류긴안(龍吟庵) 기슌류키(煕春竜喜)의 법사(法嗣)가 되었다.
게이쵸(慶長) 7년(1602), 시마즈 이에히사(島津家久)가 창건한 다이류지(大竜寺)의 개산조(開山祖)가 되었다. 다음 해인 1603년에는 시마즈씨(島津氏)의 사절로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알현했고, 이에야스의 추천으로 겐쵸지(建長寺)에서 죠도힌보츠(上堂秉払) 의식을 수행했다. 고미즈노오천황(後水尾天皇)에게 초청되어 궁중에서 사서(四書)의 신주(新註) 강의를 하는 등 학식의 깊이를 보였다.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義久)와 시마즈 이에히사(島津家久) 등도 그에게 깊이 귀의하여, 사쓰마번(薩摩藩)의 명이나 류큐(琉球)와의 외교 문서를 맡기기도 했다.
3.1. 사쓰난 학파
난포 분슌은 게이안겐주(桂庵玄樹)를 시조로 하는 사쓰난 학파(薩南學派)의 주자학(朱子學)을 계승했다. 사쓰난 학파는 주자학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난포 분슌은 『사서집주(四書集註)』에 겐주가 찍은 훈점(訓點)을 개정하기도 했다.
3.2. 시현류 명명
사쓰마번(薩摩藩)의 검술가 도고 시게카타(東郷重位)에게 시현류(示現流)라는 유파명을 부여하였다.
4. 주요 저서
난포분시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 뎃포기(鉄炮記)
* 난포문집(南浦文集)
4.1. 뎃포기(鉄炮記)
1614년 가고시마현 니시노오모테시의 사이렌지(西来寺) 주지 난포분시가 저술한 화승총 전래에 관한 기록이다.
난포분시는 묘에쓰(明悦)라고도 하며, 사이렌지(西来寺)의 주지였다. 1543년 다네가시마에 표착한 포르투갈 상인으로부터 뎃포(鉄炮)가 전래된 경위와 그 제법, 도키타카(種子島時堯)의 뎃포 구입, 뎃포 제작 기술 전파 과정 등을 기록하고 있다.
뎃포기(鉄炮記)에서 도키타카는 포르투갈 상인에게서 뎃포 두 자루를 구입하고, 야이타 킨베에(八板金兵衛)에게 명하여 뎃포 제작 기술을 배우게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뎃포 제작 기술이 일본 각지로 전파되는 과정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뎃포기(鉄炮記)는 일본의 뎃포 도입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4.2. 난포문집(南浦文集)
난포문집은 난포분시의 시문과 서한 등을 모은 문집이다.
4.3. 기타 저서
* 뎃포기(鉄炮記)
* 난포문집(南浦文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