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집주
1. 개요
사서집주는 남송 시대 유학자인 주희가 사서(대학, 중용, 논어, 맹자)에 대해 저술한 주석서들을 묶어 총칭하는 책이다. 주희는 공자에서 맹자로 이어지는 도통론을 중시하여 사서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사서집주는 원나라에서 주자학이 국교화된 이후 조선, 베트남,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널리 수용되었다.
2. 사서(四書)의 구성
주희는 오경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로서 사서(『대학』, 『중용』, 『논어』, 『맹자』)를 중시했다. 주희는 '사서' 각각에 주석서를 저술했고, 이것을 통틀어 『사서집주』라고 한다. 『사서집주』는 원나라에서 주자학이 국교화(연우 2년<1315년>)되어 과거의 표준 해석으로 채용된 이후, 조선, 베트남,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널리 수용되었다. 다만, 원나라에서 주희의 주석이 과거에 채용된 것은 학문에 현저한 공리성을 낳았고, 원래 주자학의 형해화를 초래했다고도 할 수 있다.
2.1. 논어(論語)
주희는 공자에서 시작하여 맹자로 이어지는 도가 전해진다고 생각하여, 사서 중 하나인 논어를 중시했다. 주희는 사서 각각에 주석서를 저술했고, 이것들을 총칭하여 『사서집주』라고 한다.
2.2. 맹자(孟子)
주희는 공자에서 시작하여 맹자로 이어지는 도가 전해진다고 생각하여, 사서 중 하나인 『맹자』를 중시했다. 주희는 '사서' 각각에 주석서를 저술했는데, 이것이 『사서집주』로 총칭된다.
3. 사서집주(四書集註)
주희는 오경으로 가는 단계로서 공자에서 시작하여 맹자로 이어지는 도가 전해진다고 생각하여, 사서(『대학』, 『중용』, 『논어』, 『맹자』)를 중시했다. 주희는 사서 각각에 주석서를 저술했고, 이것을 『사서집주』로 총칭한다.
3.1. 간행 및 영향
주희는 사서(『대학』, 『중용』, 『논어』, 『맹자』) 각각에 주석서를 저술했고, 이것을 통틀어 『사서집주』라 한다. 원나라에서 주자학이 국교화되고 1315년(연우 2년) 과거의 표준 해석으로 채택된 이후, 조선, 베트남,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널리 수용되었다. 다만, 원나라에서 주희의 주석이 과거에 채용된 것은 학문에 지나치게 실용성을 추구하게 하였고, 본래 주자학의 형해화를 초래했다고도 할 수 있다.
3.2. 비판
원나라에서 과거 시험에 채택되면서 학문의 공리성을 심화시키고, 주자학의 형해화(形骸化)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나치게 주희의 해석에 의존하여 경전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제한한다는 비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