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균
1. 개요
노환균은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변호사이다. 1957년 경상북도 상주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임용되었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 대검찰청 공안부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법무연수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퇴임 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변호사, 현대미포조선 사외이사, CJ 고문 등을 지냈으며, 2023년부터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개방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이름 | 노환균 |
|---|---|
| 원어명 | 盧丸均 |
| 로마자 표기 | Noh Hwan-kyun |
| 출생일 | 1957년 |
| 직업 | 법조인 |
| 배우자 | 연혜선 |
| 직책 | 제42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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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출생 -
노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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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출생 -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는 2007년부터 2022년까지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재임 기간 동안 인권 탄압 등의 비판을 받았고, 퇴임 후 인민평의회 의장직을 수행했다. -
CJ 사람 -
천성관
천성관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검사 시절 주요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검찰 주요 보직을 역임했으나, 검찰총장 후보자 시절 각종 비리 의혹으로 도덕성 논란을 겪으며 사퇴하였다. -
CJ 사람 -
이맹희
이맹희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이자 CJ그룹 명예회장으로, 삼성그룹 후계자 수업을 받았으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후 제일비료 회장을 지냈고, 이건희와 상속 재산 관련 법정 다툼을 벌이다 폐암으로 별세했다. -
상주시 출신 -
이상배 (1939년)
이상배는 행정고시 합격 후 울진군수, 안동시장, 경상북도지사, 환경청장, 서울특별시장 등 주요 행정 관료를 역임하고 제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
상주시 출신 -
김부겸
2. 생애
노환균은 1957년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나 대건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법연수원 14기를 수료하고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육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후, 1988년 서울동부지청 검사로 임용되어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형사6부장, 부산지방검찰청 2차장검사,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등 검찰 내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부산지방검찰청 2차장검사 시절에는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구속영장청구 전 피의자 면담제도'를 활성화하여 영장 기각률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시절에는 현대미포조선 고공농성 사건에 대해 "여러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원만한 해결을 촉구했다. 대검찰청 공안부장 시절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화물연대본부의 불법 시위에 대해 "죽봉으로 경찰관을 공격하는 등 극렬행위를 주도한 자들에 대해 전원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2010년 검찰에서 퇴임한 이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현대미포조선 사외이사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미포조선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하여 서울변호사회가 "겸직 허가가 없었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노환균은 "겸직 허가를 받아 법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2010년 신한금융지주의 경영권 분쟁사태 재수사 과정에서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노환균에게 직권남용 및 부실수사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인해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2.1. 검사 임용 및 초기 경력
노환균은 1957년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나 대건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84년 제14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육군 법무관으로 복무한 후, 1988년 서울동부지청 검사로 임용되었다.
서울동부지청 검사로 재직하던 1989년 12월 23일, 병원을 찾은 환자 1700여 명에게 무면허 진료행위를 한 동화정형외과의원 원무과장과 이를 묵인한 원장을 구속했다. 이후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수원지방검찰청 등에서 검사로 근무했다.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시절에는 대통령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무죄를 선고받은 민자당 이호정 의원에 대한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면서, "금품기부행위에 대한 처벌 대상을 정당이라는 법인에만 한정한 채 행위의 실질적인 주체인 개인을 처벌하지 않은 판결은 금품수수 등 부정선거 방지를 위한 법률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라고 주장했다.
2.2. 주요 사건 수사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시절인 1989년 12월 23일, 병원을 찾은 환자 1700여 명에게 무면허 진료를 한 동화정형외과의원 원무과장과 이를 묵인한 원장을 구속했다.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시절에는 대통령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무죄를 선고받은 민자당 이호정 의원에 대한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면서, "금품기부행위에 대한 처벌 대상을 정당이라는 법인에만 한정한 채 행위의 실질적인 주체인 개인을 처벌하지 않은 판결은 금품수수 등 부정선거 방지를 위한 법률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검찰청 형사6부장으로 있던 2001년 7월에는 "현행 변호사법상 변호사가 아니면서 경매대리를 할 경우 불법"이라며 경매 컨설팅 업체의 불법 행위에 대한 수사 이유를 설명했다. 같은 해 7월 25일에는 고교 야구선수를 대학 체육특기생으로 입학시켜주는 대가로 고교감독으로부터 30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대한야구협회 사무국장을 구속했다. 8월 24일에는 불법 음란물 제작 및 유포 혐의로 2명을 구속했다. 10월 26일에는 영화 배급 비리 혐의로 2명을 구속하고 15명을 입건했다.
2002년 1월 28일에는 경륜 승부 조작사범 24명을 구속기소했고, 3월 21일에는 국세청 직원의 뇌물수수 혐의를 수사하여 구속했다. 5월 4일에는 인터넷 영화사이트 전 대표의 횡령 혐의를 수사하여 구속했고, 5월 15일에는 농수산물시장 경매사 등 21명의 낙찰가 조작 혐의를 수사하여 8명을 구속기소하고 1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2.3. 검찰 주요 보직 역임
부산지방검찰청 2차장검사 시절,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구속영장청구 전 피의자 면담제도'를 활성화하여 영장 기각률을 크게 높였다. 노환균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엔 피의자와 가족이 언제든지 검사와의 직접 면담을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부산검찰마라톤동우회 회원으로서 제4회 부산바다하프마라톤대회 남자 5KM 부문에 참가하여 완주했다.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있던 2009년 1월 7일, 신년기자간담회에서 5일째 이어지던 현대미포조선 고공농성에 대해 "지금과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여러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안타깝다"며 "농성 경위에 대한 주장은 법적인 절차를 통해서도 잘 풀릴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날씨가 추운데 농성자들이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검찰청 공안부장 재직 시절, 2009년 5월 1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화물연대본부의 대전지역 불법 폭력시위와 관련하여 "죽봉으로 경찰관을 공격하는 등 극렬행위를 주도한 자들에 대해 전원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법무연수원장 등을 역임했다.
2.4. 퇴임 후 활동
2010년 검찰에서 퇴임한 후 노환균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변호사, 변호사노환균법률사무소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현대미포조선 사외이사, CJ 고문 등을 역임했다. 고려중앙학원 개방이사로 선임되었다.
3. 경력
노환균은 검사로 재직하면서 다양한 사건을 처리하였고, 검사장 및 대검찰청 공안부장 등을 역임했다. 검찰 퇴직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기도 했다.
| 연도 | 직책 |
|---|---|
| 1988년 2월 ~ 2013년 4월 10일 |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검사,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부장검사, 창원지방검찰청 공안부 부장검사, 법무부 검찰국 검찰3과 과장,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형사6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공안1과 과장,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형사2부 부장검사,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 지청장,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부산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수원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부산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공안부 부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법무연수원 원장 |
| 2013년 5월 ~ |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변호사 |
| 자료 없음 | 변호사노환균법률사무소 변호사 |
| 2015년 3월 ~ (일신상의 사유로 사퇴) | 현대미포조선 사외이사 |
| 2016년 2월 23일 ~ | 현대미포조선 사외이사 |
| 자료 없음 | CJ 고문 |
| 2023년 7월 4일 ~ 2027년 7월 3일 |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개방이사 |
3.1. 검찰 경력
| 연도 | 직책 |
|---|---|
| 1988년 2월 ~ 1990년 8월 |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 |
| 1990년 8월 |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검사 |
| 1992년 8월 4일 ~ |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
| 1994년 9월 ~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 1995년 9월 ~ 1997년 2월 |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
| 1997년 3월 ~ 1998년 2월 |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부장검사 |
| 1998년 3월 |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부장검사 |
| 1999년 6월 | 창원지방검찰청 공안부 부장검사 |
| 2000년 2월 ~ 2001년 6월 | 법무부 검찰국 검찰3과 과장 |
| 2001년 6월 ~ 2003년 3월 |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형사6부 부장검사 |
| 2002년 8월 | 대검찰청 공안1과 과장 |
| 2003년 3월 28일 ~ 2003년 8월 21일 |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형사2부 부장검사 |
| 2003년 8월 22일 ~ 2004년 6월 6일 |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 지청장 |
| 2004년 6월 7일 |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
| 2005년 4월 12일 ~ 2006년 2월 | 부산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
| 2006년 2월 ~ 2007년 3월 | 수원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
| 2007년 3월 | 부산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
| 2008년 3월 11일 ~ 2009년 1월 18일 | 제12대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 |
| 2009년 1월 ~ 2009년 8월 | 제29대 대검찰청 공안부 부장 |
| 2009년 7월 18일 ~ 2011년 1월 31일 | 제52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
| 2011년 2월 1일 ~ 2011년 8월 21일 | 제42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
| 2011년 8월 22일 ~ 2013년 4월 10일 | 제37대 법무연수원 원장 |
3.2. 기타 경력
*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변호사
* 변호사노환균법률사무소 변호사
* 현대미포조선 사외이사 (2015년 3월 ~ 일신상의 사유로 사퇴)
* 현대미포조선 사외이사 (2016년 2월 23일 ~)
* CJ 고문
*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개방이사 (2023년 7월 4일 ~ 2027년 7월 3일)
4. 논란 및 비판
(노환균 문서의 '논란 및 비판' 섹션은 원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았으므로, 작성할 내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