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노 사쿠타로
1. 개요
다니노 사쿠타로는 도쿄 출신의 일본 외교관으로,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60년 외무성에 입성하여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어 연수를 받고 아시아국 국장으로 캄보디아 평화 프로세스를 주도했으며, 1992년 내각관방 내각외정심의실장으로 위안부 문제 관련 고노 담화 작성에 관여했다. 주 인도, 주 중화인민공화국 대사를 역임하고 2001년 퇴임 후에는 와세다 대학 객원교수, 기업 임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아시아의 승룡 - 한 외교관이 본 약진하는 한국』 등이 있으며, 2011년 서보중광장을 수상했다.
-
인도 주재 일본 대사 -
사이키 아키타카
사이키 아키타카는 1976년 외무성에 입성하여 외교관 생활을 시작, 주미 공사, 아시아 대양주국장, 인도 주재 특명전권대사를 거쳐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외무사무차관을 역임한 일본의 외교관이다. -
인도 주재 일본 대사 -
히라마쓰 겐지
히라마쓰 겐지는 교토 대학 법학부 졸업 후 외무성에 입성하여 주인도, 주스페인 특명전권대사와 외무성 동남아시아 제2과장, 종합외교정책국 안전보장정책과장, 아시아 대양주국 동북아시아과장, 외무성 종합외교정책국장 등을 역임한 일본의 외교관이다. -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일본 대사 -
니와 우이치로
-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일본 대사 -
미야모토 유지
미야모토 유지는 '차이나 스쿨' 외교관으로, 중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며 국제 연합 일본 정부 대표부 1등 서기관, 주 중화인민공화국 일본 대사, 주 미얀마 특명전권대사 등을 역임하고 일본일중관계학회 회장, 일중우호회관 회장을 맡아 중일 관계 발전에 기여했으나, 센카쿠 열도 및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 관련 발언과 위자푸 사건 연루 의혹으로 논란이 되었으며 2020년 서보중광장을 수훈했다. -
도쿄도 출신 -
이와야 사자나미
이와야 사자나미는 메이지 시대에 아동 문학을 보급하고 일본 최초의 아동 문학 총서 간행, 전승 설화 리텔링, '옛날이야기 하이쿠 그림' 창조 등을 통해 일본 근대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아동 문학가, 소설가, 시인, 수필가이자 문예 평론가이다. -
도쿄도 출신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2. 인물
도쿄도 출신으로 도쿄 도립 히비야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대학 법학부에 진학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59년에 외교관 채용 시험에 합격했고, 이듬해인 1960년에 도쿄 대학을 졸업한 후 외무성에 들어가 외교관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어 연수를 받은 '차이나 스쿨' 출신이다.
외무성 아시아국장 재직 시절 고노 마사하루 당시 남동아시아 제1과장과 함께 ‘캄보디아 평화 프로세스’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주인도네시아 대사 등을 역임한 야기 마사오는 장인이다. 아내의 외조부는 모리시마 모리토이다(). 후쿠다 야스오와는 초등학교 동급생으로, 다니노는 투수, 후쿠다는 포수로 배터리를 이루는 사이였다.
2.1. 유년 시절
2.2. 외교관 생활
도쿄도 출신으로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60년 외무성에 입성하여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어 연수를 받은 '차이나 스쿨' 출신이다. 외무성 아시아국장 시절 '캄보디아 평화 프로세스'에 고노 마사하루 당시 남동아시아 제1과장과 함께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90년에는 북한에 대한 자민·사회 양당 방북단이 조선로동당과 맺은 "남북 조선 분단 후 45년간의 보상·배상"을 포함한 "3당 공동 선언"에 반발하여 가네마루 신과 대립하기도 했다.
1993년 3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내각외정심의실장으로서 위안부의 "강제 연행" 문제에 대해 "물리적으로 강제를 가할 뿐만 아니라, 위협하고, 두려워하게 하여 본인의 자유 의사에 반하여 어떤 행위를 하게 한 경우도 포함한다"고 답변했다.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의 원안 작성에 중심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담화 문구 조율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와 한마디 한마디 문구를 조율했다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고 강하게 부정했지만, 2014년 6월에 발표된 고노 담화 검증 결과에서는 실제로 문구 조율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고노 담화의 검증)
이후 주 인도 대사(겸 주 부탄 대사)와 주 중국 대사를 역임했다.
주요 경력
| 연도 | 내용 |
|---|---|
| 1960년 | 외무성 입성 |
| 1961년 - 1964년 | 중국어 연수 |
| 1964년 | 홍콩 총영사관 부영사 |
| 1971년 | 주 소련 대사관 1등 서기관 |
| 1973년 | 주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 1등 서기관 |
| 1975년 | 아시아국(후에 아시아 대양주국) 동남아시아 제2과장 |
| 1978년 | 아시아국 중국과장 |
| 1980년 | 내각총리대신 비서관 |
| 1984년 | 주 한국 대사관 공사 |
| 1987년 | 아시아국 심의관 |
| 1989년 6월 | 아시아국장 |
| 1992년 6월 | 내각관방 내각외정심의실장 |
| 1995년 9월 | 주 인도 대사 (겸 주 부탄 대사) |
| 1998년 4월 | 주 중국 대사 |
| 2001년 4월 | 귀임, 퇴관 |
| 2002년 | 와세다 대학 아시아 태평양 연구과 객원교수 |
3. 주요 경력
다니노 사쿠타로는 1959년 외교관 채용 시험에 합격하여 1960년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들어갔다. 차이나 스쿨 출신 외교관으로, 1990년 북한에 대한 자민·사회 양당 방북단이 조선로동당과 맺은 "3당 공동 선언"에 반발하여 가네마루 신과 대립하기도 했다.
1993년에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의 원안 작성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문구 조율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정했지만, 2014년 고노 담화 검증 결과에서는 실제로 문구 조율이 이루어졌다고 밝혀졌다.(고노 담화의 검증)
3.1. 학력
* 1949년 도쿄 제1사범학교 남자부 부속 초등학교 졸업
* 1952년 도쿄가쿠게이대학 부속 세타가야 중학교 졸업
* 1955년 도립 히비야 고등학교 졸업, 도쿄 대학 문과 1류 진학
* 1960년 도쿄 대학 법학부 졸업
3.2. 직력
* 1959년: 외교관 채용 시험 합격
* 1960년: 도쿄 대학 법학부 졸업, 같은 해 외무성 입성
* 1961년~1964년: 중국어 연수
* 1964년: 주홍콩 일본총영사관 부영사
* 1971년: 주소련 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
* 1973년: 주중화인민공화국 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
* 1975년: 외무성 아시아국(후에 아시아 대양주국) 남동아시아 제2과장
* 1978년: 외무성 아시아국 중국과장
* 1980년: 내각총리대신 비서관
* 1984년: 주대한민국 일본대사관 공사
* 1987년: 외무성 아시아국 심의관
* 1989년 6월: 외무성 아시아국장
* 1992년 6월: 내각관방 내각외정심의실장
* 1995년 9월: 주인도 특명전권대사 (겸 주 부탄 대사)
* 1998년 4월: 주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
* 2001년 4월: 정년 퇴임
* 2002년: 와세다 대학 아시아 태평양 연구과 객원교수
이후 도시바 이사, 일중 우호 회관 부회장, 공익재단법인 국립 교토 국제 회관 이사, 공익재단법인 일본 인도 협회 평의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태스크 포스 회원 등을 역임.
4. 에피소드
다니노 사쿠타로는 인도네시아 대사 등을 역임한 야기 마사오가 의붓아버지이다. 후쿠다 야스오와는 초등학교 동창 사이인데, 야구할 때 자신은 투수, 후쿠다는 포수를 맡아 배터리를 구성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