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유지
1. 개요
미야모토 유지는 일본의 외교관으로, 교토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입성하여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유엔 일본정부대표부 1등 서기관, 주중화인민공화국 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 주미얀마 특명전권대사, 주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 등을 거쳤으며, 2010년 퇴임 후 일본일중관계학회 회장, 외무성 고문, 일중우호회관 부회장 등을 맡았다. 그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권 문제에 대한 제재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으며, 저서로 《이제부터 중국과 어떻게 교류할 것인가》 등이 있다. 2020년에는 서보 중광장을 수상했다.
-
서보중광장 수훈자 -
아키라 이리에
아키라 이리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역사학자로, 외교사에 문화적 관점을 통합하여 국제 관계 연구를 확장하고 미국과 동아시아 관계, 냉전 시대 아시아 등에 대한 연구로 학계에 기여했으며, '역사의 국제화'를 주장하며 국제사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서보중광장 수훈자 -
이즈카 고조
도쿄대학교 공학박사 출신인 이즈카 고조는 측정학자이자 기업 경영인으로 산업기술종합연구소 소장, 쿠보타 사장, 국제측정연맹 회장을 역임하며 측정 기술 개발과 표준화에 기여했으나, 2019년 교통사고를 일으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망했다. -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일본 대사 -
니와 우이치로
-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일본 대사 -
나카에 요스케
나카에 요스케는 1922년 오사카 출생으로 교토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입성하여 프랑스, 브라질, 유엔 등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아시아 국장, 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를 역임한 일본의 외교관이다. -
1946년 출생 -
엘리자베스 슬레이든
엘리자베스 슬레이든은 잉글랜드 배우로, BBC SF 드라마 《닥터 후》에서 사라 제인 스미스 역을 맡아 세 번째, 네 번째 닥터의 컴패니언으로 출연했으며, 이후 스핀오프 드라마 《사라 제인 어드벤처》에서 주연을 맡았다. -
1946년 출생 -
변인선
변인선은 평양 출신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인으로, 인민군 상장까지 진급하여 제7군단 및 제4군단 사령관, 당 중앙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나, 2014년 예편 후 목함 지뢰 도발을 일으켜 2015년 총살형을 당했다.
2. 생애 및 경력
미야모토 유지는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교토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들어가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초기 생애, 외교관 경력, 퇴임 이후의 활동은 각각 하위 섹션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2.1. 초기 생애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 출신으로 후쿠오카 현립 슈유칸 고등학교를 거쳐 교토 대학 법학부에 진학했다. 1968년 대학 재학 중 외교관 채용 시험에 합격했고, 이듬해인 1969년 교토 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에 들어갔다. 야치 쇼타로, 다나카 히토시 등이 외무성 동기이다.
2.2. 외교관 경력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교토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69년 외무성에 들어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유엔 일본정부대표부, 주중화인민공화국 일본대사관 등에서 근무했다. 1980년대에는 외무성에서 소련, 군축, 외무대신 비서관, 정보조사, 중국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1991년에는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1994년 애틀랜타 총영사를 역임했다. 1997년에는 주중화인민공화국 일본대사관 특명전권공사로 발탁되었다.
2001년 외무성 군축 관리 및 과학심의관(대사), 2002년 주미얀마 특명전권대사를 거쳐 2004년 오키나와 담당 대사를 역임했다. 2006년에는 주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로 임명되었으며, 이는 아나미 고레시게와 같은 '차이나 스쿨' 출신으로, 베이징 부임은 세 번째였다.
주중 대사 재임 중, 신화통신사의 전직 외사국장이 국가기밀누설 혐의로 체포되면서 미야모토 대사가 취임 후 약 3의 현금을 직접 전달했다는 증언이 보도되었다. 일본대사관 측은 “재판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2010년 정년 퇴직 후, 일본일중관계학회 회장, 외무성 고문, 일중우호회관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미야모토 유지가 역임한 주요 직책들이다.
| 연도 | 직책 |
|---|---|
| 1968년 | 외무공무원 채용 시험 합격 |
| 1969년 | 교토 대학 법학부 졸업, 외무성 입성 |
| 1978년 | 유엔 일본정부대표부 1등 서기관 |
| 1981년 | 주중화인민공화국 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 |
| 1983년 | 외무성 구아국 소비에트 연방과 수석 사무관 |
| 1985년 | 외무성 유엔국 군축과장 |
| 1987년 | 대신관방 외무대신 비서관 |
| 1989년 | 외무성 정보조사국 기획과장 |
| 1990년 | 외무성 아시아국 중국과장 |
| 1991년 |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연구원 |
| 1992년 | 외무성 연수소 부소장 |
| 1994년 | 애틀랜타 총영사 |
| 1997년 | 주중화인민공화국 일본대사관 특명전권공사 |
| 2001년 | 외무성 군축 관리 및 과학심의관(대사) |
| 2002년 | 주미얀마 특명전권대사 |
| 2004년 | 오키나와 담당 대사(특명 전권 대사) |
| 2006년 | 주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 |
| 2010년 | 정년 퇴임 |
| 2010년 | 일본일중관계학회 회장(현재) |
| 2010년 | 외무성 고문( ~ 2011년 3월) |
| 2011년 | 미야모토 아시아 연구소 대표(현재) |
| 2012년 | 공익재단법인 일중우호회관 부회장(현재) |
2.3. 퇴임 이후
2010년에 정년 퇴직했고, 같은 해 10월 일본일중관계학회 회장, 2010년 12월 외무성 고문을 맡았다. 2012년 5월에는 공익재단법인 일중 우호 회관 부회장이 되었다.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 연도 | 내용 |
|---|---|
| 2011년 7월 | 미야모토 아시아 연구소 대표(현재) |
| 2020년 11월 | 서보 중광장 수훈 |
| 2021년 4월 27일 | 아사히 신문 디지털에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의 인권 문제에 대한 제재는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과 협의를 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
| 2024년 6월 | 공익 재단법인일중우호회관 회장 |
| 기타 |
3. 주요 활동 및 관점
미야모토 유지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센카쿠 열도 중국 어선 충돌 사건에 대해 "중국 측은 일본이 계획적으로 사건을 일으켜 국내법을 처음으로 적용함으로써 실효 지배를 강화하려 한다고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라고 언급했다. 2021년에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권 문제에 대한 제재에 대해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과는 대화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3.1.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
미야모토 유지는 2012년 7월 7일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센카쿠 열도 중국 어선 충돌 사건에 대해 "중국 측은 일본이 계획적으로 사건을 일으켜 국내법을 처음으로 적용함으로써 실효 지배를 강화하려 한다고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라고 언급했다.
2021년 4월 27일, 아사히 신문 인터넷판에서 그는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인권 문제에 대한 제재에 대해 "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과는 대화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4. 저서
* 《이제부터 중국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これから、中国とどう付き合うか일본어)》(니혼케이자이 신문 출판사, 2011년)
* 《격변: 미얀마를 읽고 해석하다(激変 ミャンマーを読み解く일본어)》(도쿄 서적, 2012년)
* 《시진핑의 중국(習近平の中国일본어)》(신초 신쇼, 2015년)
* 《강경한 외교를 반성하는 중국(強硬外交を反省する中国일본어)》(PHP 신서, 2017년)
* 《중일의 실패의 본질》 (주오코론 신서 라클레, 2019년)
* 《2035년의 중국 시진핑 노선은 살아남을 것인가》(신초 신서,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