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지마 나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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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지마 나오토는 일본의 육상 선수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세단뛰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대회 멀리뛰기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일본 육상계 발전에 기여했다. 은퇴 후에는 미쓰이 스나가와 광산에서 근무하며, 일본 육상 경기 연맹 상무 이사, 일본 올림픽 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1990년 이와쿠니시 명예 시민이 되었으며, 같은 해 사망했다.

다지마 나오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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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경 촬영
본명다지마 나오토
출생일1912년 8월 15일
출생지오사카부 일본
사망일1990년 12월 4일 (향년 78세)
사망지도쿄 일본
1.71m
몸무게62kg
국적일본
스포츠육상
종목멀리뛰기, 세단뛰기
대학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
코치일본 육상팀 (1956년 멜버른 올림픽), (1964년 도쿄 올림픽)
올림픽 메달
다지마 나오토
금메달1936년 베를린 남자 세단뛰기
동메달1936년 베를린 남자 멀리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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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력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멀리뛰기에서 6위를 기록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세단뛰기에서 16m00의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멀리뛰기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오다 미키오, 난부 츄헤이에 이은 일본 선수 3회 연속 금메달 획득이었다.

현역 은퇴 후 미쓰이 스나가와 광산에 취직하여 샐러리맨이 되는 한편, 일본 육상 경기 연맹 상무 이사, 일본 올림픽 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 육상팀 코치를 맡는 등 후배 지도에 힘쓰며 일본 육상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58년 3월부터 1961년 4월까지는 미쓰이 광산의 서독 수석 연락원으로 부임하기도 했다. 주쿄 대학에서 독일어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2.1. 초기 선수 경력

오사카부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아버지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쿠가군 이와쿠니정(현재의 이와쿠니시)으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이와쿠니 중학교를 거쳐 야마구치 고등학교(야마구치 대학의 전신)를 졸업하고, 교토 제국대학 경제학부(현 교토 대학)를 졸업했다.

형인 다지마 하지메도 세단뛰기 일본 챔피언이었으며, 오다 미키오와 친분이 있어 함께 훈련을 받았다. 다지마 나오토는 이들의 영향으로 세단뛰기를 시작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하여 멀리뛰기에서 6위를 기록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세단뛰기에서 16m00의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멀리뛰기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오다 미키오, 난부 츄헤이에 이은 일본 선수 3회 연속 금메달 획득이었다.

2.2. 1936년 베를린 올림픽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멀리뛰기에서 6위를 기록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세단뛰기에서 16m00의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오다 미키오, 난부 츄헤이에 이은 일본 선수 3회 연속 금메달이었다. 이 경기는 레니 리펜슈탈의 "민족의 제전"에도 수록되어 있다. 같은 대회 멀리뛰기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다지마는 "멀리뛰기가 전문이고 세단뛰기는 여가 활동"이라고 발언했으며, 세단뛰기 금메달보다 멀리뛰기 동메달이 더 기뻤다고 한다. 같은 대회에서 다지마에 이어 2위를 차지한 하라다 마사오는 교토 제국대 출신으로, 다지마는 후년에 하라다와 만났을 때 "폭(멀리뛰기)은 그렇다 쳐도, 세단뛰기에서 (하라다를) 이기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2.3. 베를린 올림픽 이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1936년, 도쿠라 아사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여자 100m·4×100m 릴레이 대표 육상 선수)와 결혼했다. 이는 일본 최초의 올림픽 대표 선수 간의 결혼으로 화제가 되었다.

현역 은퇴 후 미쓰이 스나가와 광산에 취직하여 샐러리맨이 되는 한편, 일본 육상 경기 연맹 상무 이사, 일본 올림픽 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1956년),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일본 육상팀 코치를 맡는 등 후배 지도에 힘쓰며 일본 육상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58년 3월부터 1961년 4월까지, 기술 습득 등을 목적으로 하는 탄광 노동자 독일 파견 사업에서 미쓰이 광산의 서독 수석 연락원으로 부임했다. 현지 신문에서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부임해 왔다고 크게 보도되었다고 한다.

다지마는 교토 제국대 출신의 수재였으며,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주쿄 대학에서는 독일어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3. 가족

다지마 나오토의 아내 아사(구 성: 토쿠라)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육상 선수이다. 나오토와 아사는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배에서 만났다.

장녀는 카즈코(결혼 후 성은 코이케)이다.

아사와 카즈코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컴패니언을 맡았다. 카즈코는 마라톤에서 우승한 아베베 비킬라에게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수여했다.

4. 다지마 나오토의 나무 (올림픽 오크)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들은 시상대에서 유러피언 오크 묘목을 화분째로 받았다(올림픽 오크). 여기에는 독일에서 "더 성장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다지마가 가져온 묘목은 교토 대학 농학부 식물원에 기증되었다。묘목은 여러 번 고사할 뻔했으나, 식물학 전문가의 대책으로 교토 대학 운동장 옆에 이식되었다。이 나무는 20m에 가까운 큰 나무가 되어 오랫동안 사랑받았다。2008년에 해충이 침입하여, 그 해 말에 아쉽게도 벌채되었다. 이 나무의 씨앗에서 자란 묘목은 일본 각지의 다지마와 관련된 장소 등에 분배·식수되어 자라고 있다

올림픽 오크는 세계적으로도 전쟁 등으로 인해 남아있는 것이 적으며, 다지마가 사망했을 당시에는 그 외에 미국의 선수가 가져온 2그루만이 현존했다고 한다

5. 수상

* 자수포장 (1963년)
* 훈3등 서보장 (1987년)
* 국제 올림픽 위원회 올림픽 훈장 은상 (1990년)

6. 저서

* 根性の記録: ぼくだってできる일본어 (고단샤, 1964년)

7. 관련 서적

* 리처드 만델 저, 다지마 나오토 역, 《나치 올림픽》, 베이스볼 매거진사, 1976년 3월 15일 출간
* 고야마 나오모토 (고야마 나오모토·오바 토미오 공저), 《영광의 나무, 베를린 올림픽 세단뛰기 패자, 다지마 나오토》, 2004년 8월 출간, ISBN 97849902175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