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히데도키
1. 개요
다카하시 히데도키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와세다 대학 선수 시절 1938년 천황배 우승을 이끌었으며, 히타치 제작소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동했다. 1957년과 1960년에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1962년 FIFA 월드컵 예선과 1962년 아시안 게임에서 팀을 지휘했다. 히타치 감독으로 JSL 우승과 천황배 우승을 달성했으며, JSL 총무 주사, J리그 초대 기술 위원장을 역임하며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2009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00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 이름 | 다카하시 히데도키 |
|---|---|
| 원어 이름 | 高橋 英辰 |
| 로마자 표기 | Takahashi Hidetoki |
| 출생일 | 1916년 4월 11일 |
| 출생지 |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 |
| 사망일 | 2000년 2월 5일 |
| 사망지 | 도쿄도 메구로구 |
| 포지션 | 공격수 |
| 유소년 클럽 | 가리야 고등학교 |
|---|---|
| 유소년 클럽 연도 | 1937-1940 |
| 유소년 클럽 | 와세다 대학 |
| 클럽 | 히타치 |
| 클럽 연도 | 1941-1958 |
| 감독 연도 | 1955-1956 |
|---|---|
| 감독 클럽 | 와세다 대학 |
| 감독 연도 | 1957 |
| 감독 클럽 | 일본 |
| 감독 연도 | 1959 |
| 감독 클럽 | 일본 U-20 |
| 감독 연도 | 1960-1962 |
| 감독 클럽 | 일본 |
| 감독 연도 | 1970-1976 |
| 감독 클럽 | 히타치 |
| 수상 내역 | 1938년 천황배 우승 (와세다 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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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현 출신 축구 선수 -
가게야마 마사나가
가게야마 마사나가는 1967년생 일본 축구 선수 출신 지도자로, 선수 시절 J리그에서 활약했으며 은퇴 후 일본 및 마카오 국가대표팀 감독, U-20 일본 대표팀 감독 등을 역임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아 현재 JFA 유스 육성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
후쿠시마현 출신 축구 선수 -
고미네 다쿠야
고미네 다쿠야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후쿠시마 유나이티드 FC에서 선수로 활동하다 은퇴 후 프런트로 합류했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2. 선수 경력
다카하시 히데도키는 1916년 4월 11일 후쿠시마에서 태어났다. 가리야 시립 거북성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하여, 아이치현립 가리야 고등학교를 거쳐 와세다 고등학원을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에 입학했다. 아식 축구부 소속으로 1938년 천황배에서 세이 후, 사사노 세키지, 스에오카 구니타카, 가모 쇼고 등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1941년 히타치 제작소 이바라키 축구부에 입단, 같은 해 메이지 신궁 경기 대회 실업단 부문에서 준우승했다. 다카하시는 뛰어난 포지셔닝과 정확한 패스로 공수를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1947년 히타치 본사로 전속되었다. 1955년에는 히타치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모교인 와세다 대학 감독으로 취임했다.
3. 지도자 경력
다카하시는 1955년부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1957년 다케노코시 시게마루의 후임으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어 중국 원정을 이끌었다. 1959년 일본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1959년 AFC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1960년 다시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어 1962년 월드컵 예선과 1962년 아시안 게임에서 팀을 지휘했다. 이후 히타치를 지도했다.
3.1. 초기 경력
1955년, 히타치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모교인 와세다 대학 감독으로 취임했다. 야에가시 시게오, 가와부치 사부로 등을 지도하며 관동 대학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3.2. 일본 대표팀 감독
1957년, 다케노코시 시게마루의 후임으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어 중국 원정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중국 대표팀 등과의 국제 A매치는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대표 감독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1959년, 일본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1959년 AFC 유스 선수권 대회에서 스기야마 류이치 등을 이끌고 3위를 차지했다.
1960년, 다케노코시 시게마루의 뒤를 이어 정식으로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했다. 데트마르 크라머 코치와 함께 1962년 FIFA 월드컵 예선을 치르면서,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위한 강화 활동으로 유럽 원정 등을 실시했다. 그러나 일본 축구계는 침체기에 있었고, 재임 기간 동안의 통산 성적은 8승 5무 33패였다. 일본 축구 협회의 지도자 세대교체 방침에 따라 1962년에 나가누마 겐에게 대표팀 감독직을 넘겨주었다.
3.3. 히타치 감독
1969년, 일본 축구 리그(JSL)에서 부진을 겪던 히타치 제작소 본사 축구부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속도를 중시하는 미쓰비시, 개인기를 중시하는 얀마, 조직력을 중시하는 도요 공업과는 다른 "달리는 축구"를 강조하여, 1972년 JSL 우승과 천황배 제패를 달성했다. 1960년대 말 일본 축구계에는 외국인 선수가 없었지만, 얀마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일본계 브라질인 선수를 영입하여 강화에 성공하자, 다카하시도 히타치에서 스태프를 브라질에 파견하여 기술 도입에 힘썼다. 1975년, 다시 천황배에서 우승하며 히타치 축구부의 황금기를 구축하고 1976년에 퇴임했다.
4. 지도자 은퇴 이후
1977년 히타치를 정년 퇴직한 후, 1978년까지 히타치 감독에서 물러나 제너럴 매니저(GM)를 역임했다. 1979년부터 1985년까지 JSL 총무 주사를 맡아 JSL 사무국을 일본 축구 협회로부터 독립시키는 등, 모리 겐지, 기노모토 고조 등 J리그 설립에 관여할 인재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1986년 FIFA 월드컵을 현지에서 취재하고, 1987년에 저서 『신은 축구 특파원』을 출판했다. 자신의 애칭을 딴 로쿠 축구 클럽을 설립, 사이타마현 남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유소년 육성에 힘썼다. 1987년, JSL 2부의 NTT 간토 축구부 (현 오미야 아르디자)의 기술 고문을 맡았다. 1993년, 일본 프로 축구 리그 (J리그)의 초대 기술 위원장을 맡는 등, 생애에 걸쳐 기술 지도를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