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노코시 시게마루
1. 개요
다케노코시 시게마루는 1906년 오이타현 우스키시에서 태어난 일본의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이다. 선수 시절에는 도쿄 제국대학 LB와 도쿄 OB 클럽에서 활동하며 1933년 천황배 우승을 이끌었고,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1934년에는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일본의 올림픽 축구 첫 승리를 이끌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1948년에는 일본 축구 협회 이사장에 취임하여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했으며, 1980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2005년에는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이름 | 다케노코시 시게마루 (竹腰 重丸) |
|---|---|
| 출생일 | 1906년 2월 15일 |
| 출생지 | 일본, 오이타현, 우스키시 |
| 사망일 | 1980년 10월 6일 |
| 사망지 | 일본, 도쿄도, 분쿄구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1922–1924: 야마구치 고등학교 1925–1929: 도쿄 제국대학 |
|---|---|
| 프로 클럽 | 1930–????: 도쿄 제국대학 LB ????: 도쿄 OB 클럽 |
| 국가대표팀 | 일본 |
|---|---|
| 국가대표 출전 | 5회 |
| 국가대표 득점 | 1골 |
| 국가대표 기간 | 1925–1930 |
| 감독 | 1934: 일본 1938–1940: 일본 1951–1956: 일본 1958–1959: 일본 |
|---|
| 팀 | 도쿄 OB 클럽 |
|---|---|
| 대회 | 천황배 |
| 우승 | 1933년 |
-
도쿄 대학 동문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
도쿄 대학 동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1980년 사망 -
오히라 마사요시
오히라 마사요시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제6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외무대신 시절 한일 및 중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총리 재임 중 환태평양 연대 구상을 제시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으나 총선 직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
1980년 사망 -
송요찬
송요찬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부사관으로 복무하고 대한민국 국군 소위로 임관하여 4·3 사건 진압을 지휘했으며, 5·16 군사정변 이후 요직을 두루 거쳤으나 정치적 갈등으로 구속된 인물이다.
2. 선수 경력
다케노코시 시게마루는 선수 시절 일왕배 우승(1933년), 극동 선수권 대회 준우승(1927년) 및 공동 우승(1930년)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25년부터 1930년까지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5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2.1. 클럽 경력
다케노코시 시게마루는 1906년 2월 15일 일본 오이타현 우스키시에서 태어났다. 야마구치 고등학교, 도쿄 대학을 졸업하고 1930년 도쿄 대학 LB팀에 입단했다. 1932년 도쿄 OB 클럽으로 이적했으며, 1933년 일왕배 우승을 이끌었다. 데시마 시로, 마쓰마루 테이이치와 함께 도쿄 OB 클럽의 일왕배 우승 주역으로 활동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다케노코시 시게마루는 1925년 5월 20일 대만과의 극동 선수권 대회 경기에서 국제 경기 데뷔전을 치렀다. 도쿄 제국 대학 학생 시절 마닐라에서 열린 1925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참가했다.
이후 1927년 상하이에서 열린 1927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8월 29일 필리핀을 상대로 골을 넣어 일본의 국제 A매치 첫 승리에 기여했다.
1930년 도쿄에서 열린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주장으로 출전하여 일본을 공동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반납했다. 1930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5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3. 지도자 경력
1934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극동 선수권 대회에서 팀을 이끌었다.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코치를 맡았다.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다시 일본 대표팀 감독이 되어 일만화 교환 경기 대회와 기원 2600년 봉축 동아 경기 대회에서 대표팀을 이끌었다.
3.1. 1936년 베를린 올림픽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시게요시 스즈키 감독 아래 코치로 활동했다. 일본은 강호 스웨덴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일본의 첫 올림픽 축구 승리였으며, 이후 일본에서 "베를린의 기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8강에서 1934년 FIFA 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에 0-8로 대패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2016년, 이 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2. 전후 지도자 경력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1년 다케노코시는 일본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아, 195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한국과의 2경기에서 1무 1패를 기록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1954년 아시안 게임에서 팀을 이끌었으나 2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1956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주심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58년 다시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하여 1960년 하계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팀을 이끌었으나,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 직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1948년 일본 축구 협회 이사장에 취임하여 전후 일본 축구 부흥에 힘썼으며, 1974년에는 노즈 겐 협회 회장과 함께 일본 축구 협회의 재단 법인화를 실현했다.
1980년 10월 6일, 도쿄도 분쿄구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2005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3. 1960년 로마 올림픽 예선 탈락
1958년 다케노코시 시게마루는 다시 일본 대표팀 감독에 취임하여 1960년 로마 올림픽 축구 예선에 도전했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에 패하여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 직후 다케노코시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4. 행정가 경력
1948년 일본 축구 협회 이사장에 취임하여, 전후 일본 축구 부흥에 힘썼다.
1951년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여 1954년 FIFA 월드컵 예선, 아시안 게임 등에서 대표팀을 지휘했다. 1956년에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축구 예선을 통과시켜 본 대회에 출전했다.
1958년 다시 일본 대표팀 감독에 취임했다. 1959년 말 1960년 로마 올림픽 축구 예선에 도전했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에 패배하여 출전권을 놓쳤다.
이후 나가누마 겐, 오카노 슌이치로 등 젊은 세대 지도자에게 대표팀을 맡기고, 자신은 오랫동안 일본 축구 협회 이사직을 맡았다. 1974년 노즈 겐 협회 회장과 함께 일본 축구 협회의 재단 법인화를 실현했다.
6. 수상 내역
다케노코시 시게마루는 선수 시절과 감독 시절, 그리고 기타 수상 내역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 선수 ===
=== 기타 ===
| 수상 |
|---|
|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 2005년 헌액 |
| 람수포장 (1967년) |
| 훈3등 서보장 (1976년) |
6.2. 기타
| 수상 |
|---|
|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 2005년 헌액 |
| 람수포장 (1967년) |
| 훈3등 서보장 (197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