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와키 노부토시
1. 개요
다키와키 노부토시는 1851년 다카토 번의 나이토 요리야스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나, 1864년 마쓰다이라 노부후미의 양자가 되어 14세에 가독을 상속받았다. 막부 말기에는 슨푸 경호 임무를 수행하고 도쿠가와 막부 측에 남으려 했으나, 신정부군에 협력하여 도막의 입장을 취했다. 메이지 유신 후에는 가즈사국으로 영지를 옮겨 치수 사업에 힘썼으며, 1871년 폐번치현으로 번주 지위를 잃었다. 이후 오키나와현 어용괘를 거쳐 1884년 자작 작위를 받았으며, 1887년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씨족 | 내등씨 → 다키와키 마쓰다이라 가 |
|---|---|
| 가명 (통칭) | 보길, 조십낭 |
| 관위 | 종5위하, 단고노카미 |
| 생년월일 | 가에이 4년 5월 23일 (1851년6월 22일) |
| 사망일 | 메이지 20년 (1887년8월 10일) |
| 묘소 | 도쿄도다이토구 시타야의 에이신지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메이지 시대 |
| 개명 | 마쓰다이라 노부토시 → 다키와키 노부토시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모치 → 요시노부 → 메이지 천황 |
| 번 | 스루가오지마 번 번주 → 가즈사사쿠라이 번 지사 |
| 아버지 | 내등뢰녕 |
| 어머니 | 불상 |
| 양아버지 | 마쓰다이라 노부토모 |
| 형제 | 내등뢰애, 내등뢰직, 내등뢰존, 신민, 내등충고, 아베 마사토모 정실, 오백자, 내등뢰존 양녀 |
| 배우자 | 마쓰다이라 노부토모의 양녀 (마쓰다이라 노부스스무의 딸), 혼다 다다스케의 딸 |
| 자녀 | 양자: 다키와키 노부나리 |
| 오지마 번 번주 (다키와키 마쓰다이라 가) | 전임: 마쓰다이라 노부후미 임기: 1864년 ~ 1868년 대수: 11 후임: 폐번 및 슨푸 번에 합병 |
|---|---|
| 사쿠라이 번 번주 (다키와키 마쓰다이라 가) | 전임: (하야시 다다타카) 임기: 1868년 ~ 1871년 후임: 폐번치현 |
| 다키와키 마쓰다이라 가 당주 | 전임: 마쓰다이라 노부후미 임기: 1864년 ~ 1887년 대수: 18 후임: 다키와키 노부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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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다카토번 사람 -
이자와 다키오
이자와 다키오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에 걸쳐 활동한 일본의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내무성 관료에서 시작해 여러 지방 지사와 경시총감, 타이완 총독, 도쿄 시장 등을 역임하며 중앙 정치에도 깊숙이 관여하여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인물이다. -
오지마번주 -
마쓰다이라 노부나리
마쓰다이라 노부나리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여러 요직을 거쳐 오지마 번의 초대 번주가 되었으나 3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
오지마번주 -
마쓰다이라 노부타카 (다키와키 마쓰다이라가)
마쓰다이라 노부타카는 에도 시대 단바 국 사사야마 번의 5대 번주로, 번 재정 재건에 힘썼으나 흉작과 재해로 어려움을 겪다 22세에 사망, 그의 뒤를 장남 마쓰다이라 마사노부가 이었다. -
다키와키 마쓰다이라씨 -
조자이번
조자이번은 에도 시대 후기 가즈사 국(지금의 지바현)에 존재했던 번으로, 하야시 씨가 다이묘로서 통치했으며, 보신 전쟁 이후 번주 하야시 타다타카가 구 막부 측에 가담하여 영지를 몰수당했으나, 그의 공적을 기려 남작 작위를 받았다. -
다키와키 마쓰다이라씨 -
마쓰다이라 노부나리
마쓰다이라 노부나리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여러 요직을 거쳐 오지마 번의 초대 번주가 되었으나 3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 생애
시나노국 다카토 번주 나이토 요리야스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났다. 겐지 원년, 선대 번주 노부후미가 사망하자 양자로서 14세에 가독을 상속받았다.
게이오 2년 슨푸 경호 기록이 있다. 게이오 3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대정봉환을 하자, 11월 17일 사쿠보 파의 여러 번주들이 작성한 상신서에 연명하여 도쿠가와 측에 설 것을 구 막부에 표명했다.
게이오 4년 대총독 아리스가와노미야 고토세이군의 도카이도 통행에 따라 시마다역부터 후추까지 관군 병식 및 번병 파견 명령을 받았다. 이후 관군에 근황 증서를 제출하고 도막(討幕) 입장을 취했다. 5월 17일, 고후 원병을 위해 한 소대를 출장시켰다.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대신하여 도쿠가와 종가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사토가 스루가 후추에 봉해졌기 때문에 게이오 4년 7월 13일 가즈사국으로 전봉되었다. 주준군 미나미코야스 가네자키에 임시 진야를 설치하고, 후에 메이지 2년 사쿠라이에 진야를 건설했다. 전봉지에서는 치수 공사에 진력했다. 메이지 2년 마쓰다이라에서 다키와키로 개성했다. 메이지 4년 폐번치현에 의해 사쿠라이 번은 폐번되었다.
메이지 12년 오키나와현 어용괘(御用掛)가 되었다. 메이지 17년 7월 8일 자작 작위를 받았다. 메이지 20년 37세로 사망했다. 이후 당주는 노부나리(고지마 번 제8대 번주 마쓰다이라 노부카타의 장남), 노부히로로 이어졌다.
2.1. 가독 상속과 막부 말기의 활동
1851년 시나노국 다카토 번주 나이토 요리야스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난 다키와키 노부토시는 겐지 원년 (1864년)에 선대 번주 노부후미가 사망하자 그의 양자가 되어 14세의 나이로 가독을 상속받았다.
게이오 2년 (1866년) 슨푸 경호 임무를 맡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게이오 3년 (1866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대정봉환을 단행하자, 노부토시는 사쿠보 파의 여러 번주들과 함께 도쿠가와 막부 측에 남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2.2. 메이지 유신과 사쿠라이 번
1868년, 아리스가와노미야 다루히토 친왕이 이끄는 신정부군이 도카이도를 지나갈 때, 노부토시는 신정부군의 명령에 따라 병력을 파견했다. 이후 신정부에 근황 증서를 제출하고 도막(討幕)의 입장을 취했다. 같은 해 5월, 고후 원병을 위해 한 소대를 파견했다.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대신하여 도쿠가와 종가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사토가 슨푸 번에 봉해짐에 따라, 1868년 7월 가즈사국(현 지바현)으로 영지를 옮기게 되었다. 미나미코야스 가네자키에 임시 진야를 설치하고, 1869년에는 사쿠라이에 진야를 건설했다. 노부토시는 새로운 영지에서 치수(治水) 사업에 힘썼다. 1869년, 마쓰다이라 가문에서 다키와키 가문으로 성을 바꾸었다. 1871년, 폐번치현으로 사쿠라이 번이 폐지되면서 번주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2.3. 메이지 시대의 활동과 사망
1879년, 오키나와현 어용괘(御用掛)가 되었다. 1884년 7월 8일, 자작 작위를 받았다. 1887년,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후 다키와키 가문의 당주는 노부나리 (고지마 번 제8대 번주 마쓰다이라 노부카타의 장남), 노부히로로 이어졌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
| 친부 | 나이토 요리야스 |
| 양부 | 마쓰다이라 노부아키라 |
| 정실 | 마쓰다이라 사치 (마쓰다이라 노부스스의 딸, 마쓰다이라 노부아키라의 양녀) |
| 계실 | 혼다 루리 (혼다 다다마스의 딸) |
| 양자 | 다키와키 노부나리 (마쓰다이라 노리카타의 차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