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
1. 개요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몰타의 언론인이자 반부패 운동가로, 1964년 몰타 슬리에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87년 '선데이 타임스 오브 몰타'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여, 블로그 'Running Commentary'를 통해 몰타 정부의 부패 의혹을 추적했다. 특히 '파나마 문서' 유출과 관련된 조셉 무스캣 총리, 관방장관, 수석 보좌관의 부패 의혹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2017년 10월, 자택 근처에서 차량 폭탄 테러로 사망했으며, 이 사건은 몰타의 언론 자유와 정치적 투명성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후 유럽 의회는 그녀를 기리는 미디어룸을 명명하고, 여러 언론 관련 상을 수여하며 그녀의 업적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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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이름 | 다프네 안 벨라 |
|---|---|
| 출생일 | 1964년 8월 26일 |
| 출생지 | 슬리마, 몰타 왕관령 |
| 사망일 | 2017년 10월 16일 |
| 사망지 | 비드니야, 몰타 |
| 사망 원인 | 암살 (차량 폭탄 공격) |
| 배우자 | 피터 카루아나 갈리지아 (1985년 결혼) |
| 자녀 | 3명 |
| 웹사이트 | daphnecaruanagalizia.com |
| 직업 | 저널리스트, 블로거 |
|---|---|
| 활동 기간 | 1987년 – 2017년 |
| 모교 | 말타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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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페이퍼스 -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조세 회피, 부패, 인권 침해 등 국제적인 문제를 폭로하는 비영리 탐사보도 네트워크로, 대규모 데이터 분석과 국제적 협업을 통해 파나마 페이퍼스 등 굵직한 사건들을 보도하며 퓰리처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
파나마 페이퍼스 -
모색 폰세카
1977년 설립되어 역외 회사 설립 및 관리를 전문으로 하다가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사건으로 논란이 되어 2018년 폐업한 파나마 로펌이다. -
살해된 작가 -
테오 반 고흐 (영화 감독)
네덜란드의 영화 감독이자 텔레비전 프로듀서, 신문 칼럼니스트인 테오 반 고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인 화상 테오 반 고흐의 증손으로, 사회 문제 비판과 이슬람 비판 활동을 펼치다 2004년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 -
살해된 작가 -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100년 로마에서 태어나 갈리아 전쟁과 로마 내전에서의 승리로 유명한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제1차 삼두정치를 통해 갈리아 총독으로 임명되어 군사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 내전을 일으켰고, 로마를 장악한 후 개혁을 단행했으나 반대파에 의해 암살당하여 로마 공화정의 종말을 가져왔다. -
2017년 살인 사건 -
김정남 (김정일의 아들)
김정남은 김정일의 장남으로, 한때 후계자로 거론되었으나 위조 여권 사건 이후 후계 경쟁에서 멀어졌으며, 김정은의 권력 승계에 반대하다가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되었다. -
2017년 살인 사건 -
2017년 핀즈베리파크 테러
2017년 6월 19일 런던 핀즈베리 파크에서 극우 성향의 백인 남성 대런 오스본이 라마단 기간 중 타라위 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던 무슬림들을 차량으로 공격하여 1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다프네 앤 벨라는 1964년 8월 26일 슬리에마의 타워 로드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사업가 마이클 알프레드 벨라와 그의 아내 로즈 마리 벨라(결혼 전 성은 마모) 사이에서 태어난 네 딸 중 장녀였다. 므디나에 있는 성 도로시 수녀원과 비르키르카라의 세인트 알로이시우스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후 몰타 대학교에 만학도로 입학하여 1997년에 고고학 학사 학위를 우등으로 취득했으며, 인류학을 부전공했다. 1996년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총장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10대 후반에 정치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18세 때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당시 그녀를 체포했던 경찰관 안젤로 파루지아는 훗날 몰타 국회의사당의 몰타 국회의장이 되었다.
1985년, 그녀는 변호사인 피터 카루아나 갈리지아와 결혼했다. 남편 피터는 존 카루아나의 손자이며, E. L. 갈리지아와 A.A. 카루아나의 증손자이다. 부부는 매튜, 앤드루, 폴 세 아들을 두었다. 첫째 아들 매튜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의 회원이었다. 가족은 1990년에 슬리에마를 떠나 모스타의 부락인 비드니야로 이주했다.
3. 경력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1987년 선데이 타임스 오브 몰타에서 뉴스 기자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1990년부터 1992년, 그리고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정기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1992년에는 몰타 인디펜던트의 부편집인을 맡았고, 이후에도 해당 신문과 The Malta Independent on Sunday의 칼럼니스트로 꾸준히 활동했다. 또한 언론 및 홍보 컨설팅 회사에서도 근무했으며, The Malta Independent on Sunday와 함께 배포되는 월간 라이프스타일 잡지인 Taste와 Flair를 창간하고 편집장을 맡았다. 이 두 잡지는 2014년 7월 Taste&Flair로 통합되었고, 그녀는 사망할 때까지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 Taste&Flair는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 재단에서 발행하고 있다.
2008년 3월,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시사 및 공인에 대한 조사 보도와 논평을 다루는 블로그 "Running Commentary"를 개설했다. 이 블로그는 몰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웹사이트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정기적으로 4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몰타 신문들의 총 발행 부수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였다.
그녀의 활동과 의견 표명은 지속적인 위협으로 이어졌다. 1996년에는 집 현관문에 방화 사건이 있었고, 가족의 개가 목이 잘린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이웃집 차량 방화(오인 공격 가능성)나 집에 불이 나는 사건(2006년)이 발생했다. 블로그 개설 후에는 애완견이 독살되거나 총에 맞아 죽는 일도 있었다. 아들 매튜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전화, 편지, 쪽지, 문자, 이메일, 블로그 댓글 등 다양한 형태의 위협이 거의 매일같이 이어졌다고 밝혔다.
2013년 3월 8일, 2013년 총선 전날 정치적 침묵 기간에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조셉 무스카트를 풍자하는 영상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가 몇 시간 만에 풀려났다. 2010년에는 빌라 가르다망자(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의 신혼집) 보존 문제에 대한 글로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로부터 몰타 최고의 논평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몰타 고위층의 비리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다. 특히 파나마 페이퍼 유출 문건을 분석하여 정부 고위 인사들의 부패 의혹을 폭로하는 데 집중했으며, 이는 몰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자세한 내용은 #파나마 페이퍼스 관련 활동 참조) 또한, 2017년 1월에는 경제부 장관 크리스 카르도나가 독일 출장 중 매춘 업소를 방문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2016년에는 영국 백만장자 폴 골딩의 낙사르 소재 팔라초 나시아로 취득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2017년 중반부터는 새로 선출된 국민당 대표 아드리안 델리아가 과거 소호의 매춘 조직과 연계된 회사의 자금 세탁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여야 정치인들로부터 명예 훼손으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사망하기 직전인 2017년 9월 초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고, 10월에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경찰에 상담했다. 그녀가 살해되기 전 마지막으로 올린 블로그 게시물은 당시 총리 비서실장이었던 키스 솀브리의 법정 증언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으며, "어디를 봐도 사기꾼들뿐이다. 상황이 절박하다."라는 문장으로 끝맺었다.
2017년 10월 16일, 자택 근처에서 자동차에 설치된 폭탄이 터지면서 사망했다. 이 사건은 몰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당시 조셉 무스카트 총리는 "야만적인 행위"라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안 어산지는 범인 검거에 도움이 되는 정보 제공자에게 20000EUR의 현상금을 트위터에 내걸기도 했다.
그녀의 죽음 이후, 파나마 페이퍼스 조사에서 이름이 언급되었던 사업가 요르겐 페넥이 2019년 11월 20일 요트에서 체포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키스 솀브리 총리 비서실장과 콘라드 미치 관광부 장관이 크리스 카르도나와 함께 11월 26일 정부 직에서 사임했다. 솀브리는 체포되었다가 이틀 만에 풀려났고, 이는 수도 발레타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시위대는 무스카트 총리의 사임을 요구했으며, 결국 무스카트 총리는 2020년 1월 사임 의사를 밝혔다.
3.1. 파나마 페이퍼스 관련 활동
2016년 2월 22일,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자신의 블로그 '러닝 코멘터리'를 통해 몰타 정부 장관 콘라드 미치가 파나마 및 뉴질랜드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로 인해 미치 장관은 이틀 뒤, 자신의 가족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했다고 주장하는 뉴질랜드 등록 신탁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어 2월 25일에는 조셉 무스카트 총리의 비서실장 키스 솀브리 역시 파나마 회사를 보유한 유사한 뉴질랜드 신탁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6년 4월 파나마 페이퍼 유출을 통해, 미치가 파나마 회사 Hearnville Inc.를 소유하고 있으며, 미치와 솀브리가 또 다른 회사인 Tillgate Inc.를 공동 설립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두 회사는 미치와 솀브리의 뉴질랜드 신탁(Rotorua 및 Haast)과 동일한 수탁자인 Orion Trust New Zealand Limited가 공동 소유한 구조였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미치와 솀브리의 파나마 연루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한 인물이었으며,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폴리티코에 의해 "유럽을 형성하고, 흔들고, 동요시키는 28명의 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폴리티코는 그녀를 "몰타의 투명성 부족과 부패에 맞서 싸우는 한 여성 위키리크스"라고 평가했다.
2017년에는 또 다른 파나마 회사인 Egrant가 조셉 무스카트 총리의 부인인 미셸 무스카트 소유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무스카트 총리는 이 의혹 제기가 자신이 예정보다 1년 가까이 앞당겨 2017년 6월 총선을 실시한 이유라고 주장했으며, 이 선거에서 그의 노동당은 정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조기 선거가 이미 계획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또한 2014년부터 몰타가 외국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시민권 및 여권을 고액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문제와 파나마 페이퍼와의 관련성을 조사하고 다루었다.
4. 위협 및 명예훼손 소송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자신의 보도와 의견 때문에 지속적인 위협에 시달렸다. 1996년에는 집 현관문에 방화가 있었고, 가족이 기르던 개의 목이 잘린 채 현관에 놓이는 끔찍한 일도 발생했다. 몇 년 후에는 이웃의 차가 불에 탔는데, 이는 카루아나 갈리지아를 노린 잘못된 공격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2006년에는 가족들이 집 안에서 잠든 사이 또다시 집에 불이 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카루아나 갈리지아가 블로그 "Running Commentary"를 시작한 이후에는 키우던 테리어 '줄루'가 독살당했고, 콜리 '루퍼스'는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그녀의 아들 매튜 카루아나 갈리지아에 따르면, 이러한 위협은 전화, 편지, 현관에 붙은 쪽지, 문자 메시지, 이메일, 블로그 댓글 등 다양한 형태로 거의 매일같이 이어졌다.
2013년 3월 8일, 2013년 총선을 하루 앞두고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조셉 무스카트를 조롱하는 동영상을 게시하여 선거 전 '정치적 침묵' 규정을 어겼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녀는 몇 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후 풀려났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여러 차례 명예 훼손 소송에 휘말렸다. 2010년에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콘수엘로 세르리 에레라 치안 판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판사의 파트너이자 노동당 정부 컨설턴트인 로버트 무수메치에 의해 형사 고발을 당했으나, 이 사건은 2011년 11월에 기각되었다.
2017년 2월에는 노동당 부대표이자 경제부 장관인 크리스찬 카르도나와 그의 정책 담당관 조셉 제라다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하여, 법적으로 가능한 최대 손해 배상액인 50 상당의 자산을 동결하는 예방적 영장이 발부되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법적 기금이 마련되기도 했다.
2017년 5월에는 필라투스 은행의 소유주이자 회장인 알리 사드르 하셰미네자드가 은행 명의 및 개인 자격으로 미국 애리조나 법원에 카루아나 갈리지아를 상대로 40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이 소송에 대해 통보받지 못했으며, 소송은 그녀가 사망한 지 몇 시간 만에 취하되었다. 필라투스 은행은 2017년 내내 몰타의 다른 언론사들에게도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위협했지만, 다른 언론사들은 온라인 콘텐츠 수정에 동의하여 실제 소송은 카루아나 갈리지아에게만 진행되었다. 한 언론사는 카루아나 갈리지아가 살해되기 불과 12시간 전에 협박 편지를 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사망 당시 총 48건의 명예훼손 소송에 직면해 있었다.
5.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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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6일,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비디냐에 있는 자택 근처에서 자신이 임대한 푸조 108을 운전하던 중 차량에 설치된 폭탄이 터져 즉사했다. 폭발은 트리크 일-비디냐(Trik il-Bidnija, 비디냐 로드)에서 발생했으며, 차량은 폭발로 인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인근 들판에 흩어졌다.
당시 운전석에 앉아 있던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폭발 충격으로 차량과 함께 80m 떨어진 들판으로 날아갔다. 그녀의 아들 매튜는 현장에서 어머니의 시신 일부를 발견했으며, 페이스북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방에 어머니의 신체 일부가 흩어져 있었다"고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사건은 2016년 초부터 몰타에서 발생한 여섯 번째 차량 폭탄 테러였으며, 이로 인한 네 번째 사망 사건이었다.
카루아나 갈리지아의 자택은 2010년 이후 선거 기간을 제외하고는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경찰 소식통에 따르면, 그녀가 비판적으로 조사하던 조셉 무스카트가 2013년 총리로 집권한 이후 그녀에 대한 보호 조치는 더욱 약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 암살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공개 조사를 시작할 권한은 당시 몰타 총리였던 조셉 무스카트에게 있었다. 그러나 무스카트 총리는 즉시 공개 조사를 시작하지 않았고, 이에 카루아나 갈리지아의 상속인들은 2018년 8월 9일, 법률 자문을 바탕으로 무스카트 총리에게 공개 조사를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5.1. 반응 및 추모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의 암살 이후, 그녀의 가족은 몰타 당국이 "무감사 문화"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조셉 무스캣 총리, 키스 셈브리, 크리스 카르도나, 콘라드 미지, 법무 장관 피터 그레치 및 여러 경찰 청장들이 그녀의 죽음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족은 또한 총리와 대통령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정보 제공자에게 제시한 1의 보상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하며 총리의 사임을 요구했다. 카루아나 갈리지아의 한 자매는 대통령과 총리가 암살 사건을 축소하고 그녀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순교자로 만들려 한다고 비판하며, 국가 통합 호소는 위선적이고 "범죄자 및 부패한 자와는 절대 통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셉 무스캣 총리는 차량 폭탄 공격을 비난하며, 카루아나 갈리지아가 자신을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마리 루이즈 콜레이로 프레카 대통령,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 및 여러 정치인들도 애도를 표하거나 공격을 비난했다. 야당 지도자 아드리안 델리아는 그녀의 죽음을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의 붕괴"이자 "[이 나라의] 제도가 우리를 실망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료 블로거이자 전 국민당 관계자였던 마누엘 델리아는 그녀를 "남아있는 유일한 윤리적 목소리"라고 칭했다.
국제 사회에서도 규탄이 이어졌다.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 장클로드 융커와 유럽 위원회는 이 공격을 강력히 비난했다. 유럽 의회 의장 안토니오 타야니는 이 사건을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저널리스트의 비극적인 예"라고 언급했으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국장 제라드 라일은 암살에 충격을 받았고 몰타의 언론 자유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의 서한을 통해 가족과 몰타 국민을 위해 기도한다고 전했다.
유럽 의회는 2017년 10월 24일 본회의에서 카루아나 갈리지아를 기리기 위해 1분간 묵념했으며, 이 자리에는 그녀의 가족들도 참석했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 의회 건물 내 언론실은 2017년 11월 그녀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고, 마리 루이즈 콜드가 그린 그녀의 초상화가 기자실 밖에 걸렸다. 또한, 몰타의 언론 자유와 언론인 보호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으며, 이후 유럽 의회는 몰타의 법치, 고위급 자금 세탁 사건, 부패를 조사하기 위한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차량 폭탄 테러 소식은 국내외 언론에 널리 보도되었고, 카루아나 갈리지아의 이름은 트위터에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많은 몰타인들은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검은색으로 바꾸며 애도를 표했고, Je suis Charlie 구호를 연상시키는 #JeSuisDaphne 해시태그가 현지에서 유행했다. The Malta Independent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의 블로그를 찾아보는 것은 매일 처음 하는 일이었고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제 공허함만 남았다"고 논평하며, 그녀의 사망 후 며칠간 일간 및 주간 칼럼 지면을 빈 페이지로 발행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10월 16일 밤, 카루아나 갈리지아의 고향인 슬리에마에서 열린 추모 행렬에 참여했으며, 런던의 몰타 고등 판무관 사무소 앞에서도 추모 행사가 열렸다.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는 살인범 검거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20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고, "암살범과 암살 지시자의 성공적인 기소로 이어지는 정보"에 대해 1를 모금하는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도 시작되었다. 몰타 정부 역시 앞서 언급된 1의 국가 보상금을 제안했다.
San Anton School 공동체는 카루아나 갈리지아 가족을 지지하기 위해 발레타 시티 게이트에서 그레이트 시지 기념비까지 평화적인 추모 행렬을 열었다. 2017년 10월 22일에는 시민 사회 네트워크 주도로 발레타에서 정의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으며, 참가자들은 경찰 청장과 법무 장관의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했다. 일부 시위대는 플로리아나의 경찰 본부로 이동하여 경찰 청장의 사임을 촉구하는 연좌 시위를 벌이고 관련 배너를 내걸었다. 이후 법원 앞 그레이트 시지 기념비는 추모와 정의 요구 시위의 중심지가 되었다.
2018년 4월, 가디언, 뉴욕 타임스, 르 몽드, 타임스 오브 몰타 등 18개 뉴스 기관 소속 45명의 언론인들은 카루아나 갈리지아가 진행 중이던 조사를 완료하기 위한 협력 프로젝트인 다프네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또한, GUE/NGL 그룹은 2018년과 2019년에 '언론인, 내부 고발자 및 정보 권리 옹호자 상'을 카루아나 갈리지아를 기려 명명했다. 이 상은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위협받거나 박해받는 개인 또는 단체에게 수여된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파나마 문서 유출과 관련하여 조셉 무스캣 총리의 부인 미셸 무스캣, 관방장관 콘라드 미치, 수석 보좌관 키스 쉔브리 등의 부패 의혹과 몰타의 시민권 판매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적해왔다. 폴리티코는 그녀를 "2017년 가장 유럽에 충격을 준 28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녀는 암살 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경찰에 협박 사실을 신고하기도 했다.
암살 사건 이후, 무스캣 총리의 측근인 키스 쉔브리 수석 보좌관이 2019년 11월 살해 사건 연루 혐의로 체포되었고, 콘라드 미치 관광부 장관과 크리스찬 카르도나 경제부 장관도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정권이 흔들렸다. 결국 무스캣 총리는 사임 압력에 직면하여 2020년 1월 12일 차기 노동당 당수가 선출되는 대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5.2. 수사 경과
폭발 직후 법의학팀과 경찰 수사관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초기 치안 판사 조사는 콘수엘로 세리 에레라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그는 2010-11년에 카루아나 갈리지아를 형사 명예 훼손으로 기소한 전력이 있었다. 카루아나 갈리지아의 가족은 이해 상충을 이유로 세리 에레라 판사의 참여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세리 에레라 판사는 17시간 만에 수사에서 제척되었고, 앤서니 벨라 치안 판사로 교체되었다.
조셉 무스카트 당시 총리는 미국 연방 수사국(FBI)에 수사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으며, 네덜란드 경찰 법의학 수사팀과 3명의 유로폴 관계자들도 수사에 합류했다. 2017년 12월 4일, 무스카트 총리는 수사와 관련하여 10명이 체포되었으며, 이 중 3명이 차량 폭탄 공격 실행 혐의로 기소되었다고 발표했다. 용의자는 조지 데조르지오, 그의 형 알프레드 데조르지오, 그리고 그들의 친구 빈스 무스카트(전 총리와는 무관)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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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0일, 유명 사업가 요겐 페네치가 그의 요트에서 체포되었다. 페네치는 카루아나 갈리지아가 파나마 페이퍼 관련 조사에서 다뤘던 두바이 소재 회사 '17 Black'의 소유주였으며, 이 회사는 키스 솀브리 총리 비서실장 및 콘라드 미치 장관과 연관되어 있었다. 솀브리와 미치는 11월 26일 크리스 카르도나 경제부 장관과 함께 정부 직에서 사임했다. 솀브리는 체포되었다가 이틀 뒤 풀려났고, 이는 수도 발레타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시위대는 조셉 무스카트 총리가 살인 사건의 "중간자"를 사면할 가능성을 언급한 후 그의 사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2019년 몰타 시위 참조). 페네치는 법정 진술에서 솀브리가 살해의 배후라고 주장했다.
카루아나 갈리지아 살해 사건에 대한 조셉 무스카트 총리의 연루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결국 무스카트 총리는 2019년 12월 1일, 정치 위기 속에서 사임 의사를 밝혔고, 2020년 1월 12일 공식적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2021년 2월 23일, '일-코후(il-Koħħu)'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빈스 무스카트는 살해 혐의를 인정하고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증언 과정에서, 함께 기소된 알프레드 데조르지오가 암살 전 크리스 카르도나 전 장관으로부터 카루아나 갈리지아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카르도나는 이를 '순수한 악의적인 허구'라며 부인했다.
한편, 전직 판사들이 참여한 공개 조사에서는 "몰타 국가는 살해범들이 최소한의 처벌만 받을 것이라고 믿게 만든 만연한 '면책 분위기'(climate of impunity영어)를 조성했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2022년 7월, 조지 데조르지오는 감옥에서 자신이 폭탄을 터뜨렸다고 자백하며 형량을 줄이기 위해 유죄를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10월, 발레타 중앙 법원에서 열린 재판 첫날, 조지 데조르지오와 알프레드 데조르지오는 돌연 입장을 바꿔 고의적 살인, 치명적인 폭발 유발, 불법 폭발물 소지, 범죄 공모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고, 각각 40년형을 선고받았다.
6. 사후 수상 및 영예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는 사후에도 언론 자유와 진실 추구를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여러 상을 받았다. 유럽 의회는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미디어룸의 이름을 그녀를 기리기 위해 명명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언론인, 내부 고발자 및 정보 접근권 옹호자를 위한 상'이 그녀의 이름을 따서 제정되었다. 또한 2018년 국제 투명성 기구는 그녀에게 반부패상을 수여했다.
7. 참고 문헌
* Debono, Joseph A.; Muscat, Caroline (편집). (2017). Invicta: The Life and Work of Daphne Caruana Galizia. Pertinent Press. ISBN 978-1-912142-13-2.
* Bonini, Carlo; Delia, Manuel; Sweeney, John (2019). Murder on the Malta Express: Who Killed Daphne Caruana Galizia?. Malta: Midsea Press.
* Gattaldo (2020). Fearless: The Story of Daphne Caruana Galizia. UK: Otter Barry Books. ISBN 978-1-91307-404-3.
* Galizia, Paul Caruana (2023). A Death in Malta. Hutchinson Heinemann. ISBN 9781529151558.